근심걱정이 있다면 잡화점과 상담해봐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록 2013.01.10 13:33수정 2013.01.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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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겉표지 ⓒ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다보면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상상해볼 때가 있다. 물론 잔인한 연쇄살인범과 일대일로 맞서게 되는 그런 위험한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아무튼 좀 난처하면서도 당황하게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혼자만 남게 된다거나(<패러독스 13>), 자신의 형제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편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웬 학생이 나타나서 "나는 미래에서 온 당신의 아들이야"라고 말하거나(<도키오>), 형사이면서 호텔 종업원으로 위장근무를 하게되는 경우(<매스커레이드 호텔>)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 주인공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자신을 망가트리지 않으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헤쳐나갈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좀더 나아가서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겠다.

빈 가게에 숨어든 세 도둑

히가시노 게이고의 2012년 작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이렇게 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등장인물인 세 명의 젊은 백수 쇼타, 고헤이, 아쓰야는 빈집을 털러 나섰다가 변변한 물건도 건지지 못한 채 훔친 승용차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 승용차마저 고장나버리자 이들은 한밤중에 한적한 언덕 위에 있는 빈 잡화점에 숨어든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에 들어서자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이 가게는 분명 오래전에 폐업한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고 사방에 먼지가 쌓여 있다. 잠자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가게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우편함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배원이 우편물을 놓고 갈리는 없다. 그렇다고 경찰이 자신들을 여기까지 추적해온 것도 아닐 것이다. 이들은 호기심과 불안감을 억누르지 못해서 우편함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내본다.

편지지에는 '처음으로 상담 편지를 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 여자 운동선수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편지 말미에는 '좋은 충고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세 명의 젊은이는 혼란에 빠진다. 오래 전에 폐업한 가게에 상담 편지가 들어오다니. 그리고 편지 내용으로 보건대 이것을 쓴 사람은 수십 년 전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뒤틀리면서 과거와 소통하게 된 것이다. 세 명은 충격 속에서도 나름대로 성의 있는 답장을 쓰게 된다. 그 뒤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상담 편지를 받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공간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처음에는 혼란과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여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름대로 상황을 즐길 수도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담 편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읽고 나서 거기에 적절한 답장을 써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과거의 사람이다. 조언자는 과거의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담하기가 더욱 수월하다. 사업아이템이나 투자할 곳을 물색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분야의 사업이 유용해진다고 조언할 수 있다. 하다못해 몇 년 몇 월 며칠의 로또 복권 당첨번호가 무엇인지도 알려줄 수 있다. 그러면 상담자의 인생도 크게 바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언이 과연 상담해온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하고 상담해온 사람이 그 조언을 따르더라도 결과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면 상대방은 나중에 조언한 사람을 원망하거나 증오할 수도 있다.

작품의 등장인물도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말할 자격이 있을까. 고민을 말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고 충고를 하려면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편지라는 수단을 택했을 수도 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말하려면 그만큼 부담이 있는 일이니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그런 상대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다. 작품에서처럼 몇 마디의 조언으로 상대의 인생이 풀린다면 그거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펴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00만 부 기념 특별 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8


#나미야 잡화점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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