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투표나 하라고? 그럴수는 없지!

안양 비산3동에 사는 2030 청년들의 대통령 선거 참여 분투기

등록 2012.12.18 09:52수정 2012.12.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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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대선 관련 소식을 찾아본다. 뉴스를 보며 후보의 동정을 살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보며 낄낄댄다. 하지만 이내 답답함이 몰려온다. 대통령 선거는 주권을 가진 우리들의 축제인데, 왜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냥 닥치고 투표나 해야 하는 거야? 대통령 선거하려고 5년을 기다렸다. 이번이 지나면 또 5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고 스마트폰만 터치하며 있을 수는 없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뭐라도 하자!

친구들을 수소문해 보니 이런 답답함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누가, 2030을 정치적 무관심층이라고 했는가? 모였다.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머리를 모았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투표 독려 운동이다. 참! 고맙게도 투표 독려 운동은 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이 허락해 주셨다, 투표 참여 포스터도 붙이고, 플래카드도 붙이고, 피케팅도 하고 다 하고 싶은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든다. 플래카드 하나 뽑는 데 3만 원, 피켓 하나 폼나게 뽑는 것도 3만 원. 우린 88만 원 세대인데...

5년을 기다렸는데 냄새에 취하는 것쯤이야

우리에겐 매직 냄새에 강한 코와 몇 십 장의 피켓도 만들 수 있는 무쇠 팔이 있다. ⓒ 윤희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프린터에 미안하지만, 포스터는 A4용지로 대량 뽑기로 하고, 플래카드는 발품을 팔아 A4용지로 된 투표 참여 문구를 더 많이 붙이기로 하고, 피켓은 손으로 쓰기로 했다.

대신 우리 마음이 담긴 표어를 만드는 데 정성을 들이고, 마을 구석구석에 누구든 볼 수 있도록 A4용지를 붙이기로 했다. 우리에겐 무한 체력과 두꺼운 얼굴, 무엇보다 너와 내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지 않은가. 의견이 모이자 바로 착수. 옆에선 프린터기가 A4용지를 마구 토해낸다. 집에는 매직 냄새가 진동한다.

"이러다 피케팅 하기도 전에 냄새에 취하는 거 아냐?"

다들 아우성이다. 5년을 기다렸는데 냄새에 취하는 것쯤이야. 이제 체력이 요구되는 시간이다. A4용지를 들고 흩어져서 각자 구역을 정해서 마을 구석구석에 붙였다. 날씨가 추워 테이프가 잘 안 붙는다. 호호 불고 손톱으로 긁어가며 붙였다. 


피자, 귀돌이는 물렀거라. 투표 참여 부대 나가신다. ⓒ 윤희윤


우리가 모여 피켓을 만든 15일은 우리가 사는 경기도 안양 홈팀인 인삼공사와 원주 동부의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농구장으로 갔다. 우릴 먼저 반겨 준 것은 **피자에서 지원 나온 차량이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먹고 싶다. 그런데 줄이 길다. 지금 줄 서면 20분 뒤에나 피자 한 쪽을 먹을 수 있다. 참는다.

또 한쪽에서는 스포츠**와 함께 귀돌이를 나눠준다. 갖고 싶다. 참는다. 피자 한 조각과 귀돌이를 앞으로의 5년과 바꿀 수 없지. 내가 생각해도 거창한 다짐이다. 곧 자리를 잡고 섰다. 여럿이 피켓을 들고 서니 제법 괜찮다. 주위가 시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지만, 우리가 적은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제대로 투표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16일, 투표 참여 독려를 위해 명동에서 피케팅 해

학교 다닐 때 손 들기 벌 많이 받으면 투표 참여 운동 잘 할 수 있다. ⓒ 윤희윤


12월 16일은 일요일. 쉬는 날이지만, 같이 쉴 수는 없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명동'으로 가자 했다. 피케팅은 지하철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큰 친구가 피켓을 들고 섰다.

"투표는 짧고 5년은 길다."

이 친구 자신이 만든 문구가 꽤 맘에 드나 보다. 팔을 안 내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학교 다닐 때 손 많이 들어서 그런지 괜찮네"라고 한다. 명동에 도착했다. 명동에서 피케팅을 하자고 한 것은 '사람이 많으니까'라는 것이 이유였는데... 명동에 가니 진짜 사람이 많다. 을지로입구역부터해서 인파를 헤치고 걸었다. 여럿이 피켓을 들고 가니 눈에 띄나 보다. 사람들이 슬쩍슬쩍 쳐다본다. 

용기를 내서 "이번 주 수요일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꼭 투표하세요"라고 말을 건네 본다. 피켓을 보며 한 명이 "오늘 3차 토론회 있데, 내일인 줄 알았는데... 빨리 집에 가서 봐야지"라고 말한다. '앗싸~' 투표 인원 한 명을 건졌다. 둘이 가는 친구는 "넌 누굴 뽑을 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대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힘이 난다. 피켓은 더 높이 올라간다.

빡선생도 투표할 거다. ⓒ 윤희윤


명동을 구석구석 돌고, 명동역 입구에 섰다. 빡 선생께서 홍보하고 계신다.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 그 명동 한복판에서 소리쳤다. '부끄럽지 않느냐고?' 우리 얼굴은 생각보다 두껍다.

"투표하면 세상이 바뀝니다. 투표에 여러분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꼭 투표하세요!"

이제 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일까지 경기도 안양시 비산3동에 사는 2030 친구들의 투표 독려 분투기는 계속된다.

명동에서 우리는 외쳤다. "투표하면 세상이 바뀝니다." ⓒ 윤희윤


#투표 #참여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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