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네틱스 정리해고자 전원 복직, "어찌된 일이래?"

"해고 무효" 판정 받은 영풍그룹, 조합원에 복직 통보

등록 2012.12.13 15:00수정 2012.1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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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의 시그네틱스 해고조합원들이 전원 복직한다. ⓒ 엄미야


지난 12일 방울 모자에 벙어리 장갑,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무장을 한,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으로 모여들었다. 민주노총의 정리해고 선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녀?"

그녀들은 방금 회사로부터 "복직하라"는 통보서를 받은 28명의 시그네틱스 해고조합원들이었다. 2011년 7월 정리해고 이후 1년 반 만인 지난 11월 23일, 서울지방법원은 "해고가 무효"라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회사가 순순히 복직을 시켜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돈이 많은 기업이니 나중에 돈으로 정리하는 한이 있어도 민주노조를 다시 현장에 들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법까지 가겠지. 나중에 보험금 탄다는 심정으로 조바심 내지 말자고,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1심 판결 이후 서둘러 복직을 명령했다.

정리해고 1년 반만의 복직, 조합원들 '환호'

회사가 보낸 복직 통보서. ⓒ 엄미야

"5년 전에 회사가 한 번 해고무효소송 패소를 겪어봤잖아요. 그때 해고기간 임금에 이자까지 목돈 나간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대법까지 갈까, 복직시킬까, 실은 반신반의했어요."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와 닿지 않기는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다.


"2001년 해고시키고 대법 이기니까 어거지로, 급하게 만든 안산공장에 복직시켰다가 또 어이없게 두 번째 해고되고 나니 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 게 사실이죠."

실제로 현장에 들어가서 일을 해봐야지 실감이 날까, 아직은 회사의 진의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은 생산공정 전체가 여덟 개의 사내하도급으로 이루어져있고, 안산공장은 퓨렉스와 유앤씨, 두 개의 사내하도급 업체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그네틱스는 처음 이들 하도급 업체를 자신들과 상관없는 별도 법인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번 복직명령서에서는 명확하게 시그네틱스 안산사업부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그네틱스 28명의 노동자들의 해고는 2000년부터 진행된 그룹 차원의 생산공정 전체의 사내하도급화 정책의 마지막 실행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전원 복직으로 영풍그룹의 정책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정규직 0% 영풍그룹의 정책에 '빨간불'

그리고 정리해고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말고도 우리가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복직에 환호해야 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이번 판결문을 보면, "안산공장(시그네틱스의 사내하도급업체 퓨렉스와 유앤씨)이 파주공장(본사)과 인적 설비 내지 재무 및 회계가 분리되어 있었다거나 경영여건을 달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비슷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 임금이 본사인 시그네틱스에서 지급되어 왔다는 점, 인사교류까지도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는 모업체인 시그네틱스와 사내하도급 업체인 퓨렉스, 유앤씨를 비롯한 10여 개 업체들이 독립적, 다시 말해 적법한 도급 관계가 아님을 시사하는 부분으로 불법파견의 소지도 있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시그네틱스의 승소와 복직을 계기로 그간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소업체에 일반화되어 있던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기간 동안 "정리해고 철폐! 원직복직 쟁취!" 만큼이나 외쳤던 구호가 있다. 바로 "불법적인 사내하도급, 소사장제를 철폐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 해고를 당한 그녀들은 영풍그룹의 '정규직 제로공장'의 신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신들이 세 번, 네 번의 해고를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복직명령서를 받아든 28명 조합원들의 무덤덤한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다행스럽다.

시그네틱스, 영풍그룹의 위장, 불법하도급 실태는 외부로 더 많이 알려져야 하고, 이 역할은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의 것이다. 당연히 그녀들은 자신들의 복직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1998년 파견법이 만들어진 이후 만연한,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보여지는 현장의 간접고용 문제를 다시 정위치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첫 단추를 그녀들이 끼운 셈이다. 이것이 바로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의 영풍그룹에 대한 제 2라운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같은 기사는 금속노조 기관지 <금속노동자>에도 중복하여 개재되었습니다.
#시그네틱스 #정리해고 #사내하도급 #영풍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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