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 <패러독스 13>

등록 2012.12.04 11:36수정 2012.12.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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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겉표지 ⓒ 재인

'사람들이 사라지고 세상에 나 혼자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극단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종종 볼 수 있다. 픽션 속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스티븐 킹의 <셀>처럼 좀비 같은 존재들이 세상을 점령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로버트 매캐먼의 <스완 송>처럼 핵전쟁으로 인해서 인류가 멸망 직전에 놓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보다는 좀더 좋은 조건에서 혼자 남는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핵전쟁으로 인한 파괴나 좀비 같은 괴물들 없이 그냥 사람들이 사라진 경우다.

주변 환경은 그대로인데 사람들만 없어졌다. 자신을 공격하거나 귀찮게 따라다닐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함께 사라졌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즉석식품을 포함해서 물과 먹을거리가 쌓여 있기 때문에 먹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무단 투숙을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 잠자리 걱정도 필요없다. 전기가 끊기겠지만 전기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의 배터리를 모아서 전자레인지나 컴퓨터 등을 사용할 수도 있다. 휴대용 버너를 이용하면 삼겹살을 구워서 소주도 한잔할 수 있다(물론 혼자서).

종말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


혼자 남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겠지만 어차피 인간은 고독한 존재 아닌가.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어딘가에서 자신처럼 살아남은 매력적인 이성과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9년 작품 <패러독스 13>에서도 사람들이 사라진다. 원인은 블랙홀의 영향으로 지구를 덮치는 거대한 에너지파다.

그 영향 때문에 13초의 시간도약이 발생하고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특정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다. 각국 정부는 이 현상이 발생하는 정확한 시간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혼란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공표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형사 구가 세이야와 그의 동생 후유키는 에너지파가 지구를 덮치는 그 시간에 범인 검거 작전에 나선다. 후유키는 범인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도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얼마 후에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때 그의 눈 앞에는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도쿄 거리가 펼쳐진다.

혼란에 빠진 후유키는 휴대폰으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지만 아무 대답도 없다. 마치 공습을 피해서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사라졌다. 후유키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서 자전거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도쿄의 거리를 달린다. 그런 후유키 앞에 한 모녀가 나타난다. 세상에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 셋뿐인 것처럼.

시간도약이 가진 비밀

에너지파나 시공간의 뒤틀림 현상으로 사람들이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것은 핵전쟁이나 좀비의 출현보다 더 비현실적인 가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종말이 온다면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헤쳐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무리 기다리고 발버둥쳐도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 친구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없다. 예전처럼 온갖 문명의 혜택을 다시 누릴 가능성도 요원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패러독스 13>의 인물들도 그래서 좌절하고 언쟁을 벌인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지만 남은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 술만 마시며 현실을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인물도 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겠지만 이런 작품을 읽다보면 특히 결말이 궁금해진다. 누가 죽고 누가 살게 되는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겠지만, <패러독스 13>은 그런 일이 생길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씀, 이혁재 옮김, 재인 펴냄

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2012


#패러독스13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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