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아들이 진보잡지를 구독신청했습니다

등록 2012.10.16 10:24수정 2012.10.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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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들이 고교 2년생입니다. 어떤 잡지를 추천하시겠습니까! ⓒ 신광태


"아니, 이 잡지가 왜 집에 있지? 당신, 정기 구독 신청했어?"
"그렇게 관심이 없냐? 지난번 아들이 당신에게 말했잖아"


어느 날, 거실 탁자 위에 놓인 A잡지가 눈에 띄기에 집사람에게 물었더니, '가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고 오히려 내게 핀잔을 준다.

그런 일이 있었나! 핑계가 아니라, 정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늙으면 뇌세포가 급속도로 퇴화한다는데 이젠 그 단계까지 갔나보다' 라는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아내는 아들이 고급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녀석이 대학진로 결정을 우리 부부에게 통보했다. 신문방송학과.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정직한 기자가 되고 싶단다.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불문율이 있다. 큰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대학진로에 대한 상담은 하되 결정은 부모가 하지 말자는 거다.


사실 아내는 아들이 법학이나 행정을 전공해 중앙부처의 고급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왜 그런지 짐작은 간다.

"에이 더러워서, 우리 아들 열심히 가르쳐 행정고시 보게 해서 중앙부처 사무관 만들자"라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집사람에게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업설명 때문에 중앙부처를 방문했다. 그런데 담당자를 만나야 설명을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바빠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다는 거다. 그걸 거면 애초에 딱 부러지게 올라오지 말라고 하던지, 미지근한 그의 태도에 무작정 찾아왔던 게 잘못이었다.

'포기하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1층쯤 내려왔을 때,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동료직원들과 노닥이는 그의 옆모습을 발견했다. 모멸감… '내 비록 지금 말단 지방공무원이지만, 더러워서 내 아들은 사무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당시의 내 심정이었다.  

고교 2년생인 아이가 진보 성향의 잡지를 정기구독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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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물었다. ⓒ 신광태


"주간 잡지를 하나 구독해야겠는데, A잡지로 신청해 주면 안 될까?"

분명히 아들 녀석은 그렇게 내게 말했단다.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 것으로 보아 '어린 녀석의 말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그래라'라고 말하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었나보다. 

"그 잡지가 뭐가 문제인데 그래?"
"문제가 아니라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된 기사를 싣는 잡지라는 거지."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아이에게 '그거 구독하지 말고 딴 거 봐라'라고 할 수도 없잖아."

A잡지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다양한 채널을 통한 뉴스를 접할 기회는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구독하는 잡지에 의존하게 될 거다. 그러다 보면 지나치게 편중된 시각을 갖게 된다. 그것이 문제인 거다.

어른들이야 보편적 테두리 안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가능하지만, 청소년들은 일방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신봉할 수 있다.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 그리고 보수라는 것은 뭘까

"지금 고2년생인 아들 녀석이 대학 진로를 '신문방송학과'로 정했답니다. 그래서 주간지 중 'A잡지'를 구독하고 싶다는데, 지금 고2년생인 아이가 볼 때 좀 난해하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의 조언 듣고 싶습니다."

고민 끝에 트위터에 올린 질문 내용이다. 그랬더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부모가 잡지 내용에 대해 해설을 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등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그중에서 "보수성향의 'B잡지'를 하나 더 구독하도록 해 주는 것은 어떠냐"라는 제안에 솔깃해졌다.

"네가 보는 잡지 어렵지 않니?"
"어려운 게 뭐 있어. 다 한글로 쓰여 있는데."
"아빠 생각은 네가 아직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잡지의 종류도 많잖니. 그 성향도 다를 수 있거든. 그래서 또 다른 잡지를 하나 더 보여 주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아빠! 나도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알거든. 내 용돈이 아니라 아빠가 사준다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돼."

쇠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 어린 나이에 시리분별을 못 할 거라는 내 생각은 창피할 정도의 기우였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뚜렷한 색깔도 없이 살아왔다. 스스로 자문을 해도 '내 (공무원인)신분이 그렇고, (식구들을 부양할)가장이란 위치 때문에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다' 는 치졸한 합리화에 급급해 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분명한 자기주장을 말하는 거다.

"아빠가 생각하는 진보는 뭐고, 보수는 뭐야?" 라고 아들이 내게 묻는다면 난 이 아이에게 뭐라고 답해 줄 수 있을까!
#주간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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