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BIFF] 금기를 욕망한 잔혹동화의 끝은?

[영화리뷰] 플래시 포워드 부문, 알폰소 아코스타 감독의 <균열>

12.10.08 15:24최종업데이트12.10.08 15:24
원고료로 응원

사랑해서는 안 될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 있는가? 예컨대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 혹은 배다른 남매를 남몰래 사랑하게 된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이 경우 금지된 사랑은 십중팔구 인륜을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만 한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 우리는 그들을 근본적으로 사랑할 수 없도록 태어난 것인가? 아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대상이란 오히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나를 학습하고 길들인 결과물에 가깝다.

 

누이 마르셀라의 의문사 뒤 욕망과 광기에 사로잡힌 가족은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 BIFF 홈페이지 갈무리


근친상간을 테마로 한 잔혹동화

 

"공주 없는 왕자는 있을 수 없다. 누이 없는 동생도 마찬가지다."

 

토마스에게 누나 마르셀라는 완벽한 콤비이자 자신을 완성시키는 존재였다. 그러나 완전했던 그의 존재는 마르셀라가 의문사한 뒤 깨지기 시작한다. 누이의 죽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토마스는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마스를 비롯한 네 형제와 어머니는 마음의 휴식을 얻고자 외딴 산골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찾아온 이모 앙헬리카의 등장으로 고요했던 가족은 새로운 갈등으로 치닫는다. 뛰어난 미모와 자유분방함을 지닌 이모에게 토마스는 일련의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토마스의 형 역시 이모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비 오는 밤, 앙헬리카가 어린 쌍둥이 조카들에게 음산한 동화 한 편을 들려주면서 가족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욕망의 이중주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까마귀 왕자가 아픈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유령의 숲에서 마녀를 찾아 처단하는 동화의 내용은 영화 속 가족의 모습과 흡사하다. 왕자가 시련에 굴복해 죽음을 맞이하는지 혹은 어머니를 구해내는지 이모는 이야기의 끝을 매듭짓지 않는다.

 

쌍둥이들이 외딴 시골에서 자신들만의 '동화'를 완성해가는 사이 이모를 향한 토마스의 감정은 점점 강렬해진다. 그러나 술에 취한 그녀를 탐하는 형의 모습을 발견한 토마스는 나서지도 못하고 괴로워만 한다. 급기야 그는 누이 마르셀라를 죽인 범인이 자신의 형이라 의심하며 형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한편, 토마스의 마음을 받아들인 이모 앙헬리카는 쌍둥이 형제에 의해 순수하고도 잔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다.

 

삶을 균열시키는 금지된 것을 향한 욕망

 

평온했던 삶이 균열하기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깨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테마로 한 가족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운명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토마스는 자신의 누이를 또는 이모를 근친이라는 관계의 굴레를 벗어나 하나의 '대상'으로 사랑하면서 친형을 죽이는 파국을 맞는다.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영화는 윤리적이고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알폰소 아코스타 감독은 '동화 판타지'를 차용하면서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갈등과 비극적 운명을 더욱 잔혹하게 드러냈다.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린 쌍둥이 형제가 만들어내는 순수성과 맞물려 현실로 그려진다. 유령의 숲에서 까마귀 왕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쌍둥이 형제의 환상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이모를 마녀로 형상화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다. 그 순수성에서 우리는 섬뜩한 공포를 경험한다.

 

이모를 향한 사랑의 복수로 토마스는 결국 친형을 살해하고 만다. ⓒ BIFF 홈페이지 갈무리

인간의 잔혹함을 드러냄으로써 영화는 윤리적 방식으로 타부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잔혹성이란 실상 대상에 대한 '이기적 사랑'에서 기인한다. 토마스가 인륜을 저버리고 친형을 살해한 행위는 사랑의 대상을 위한 복수였다.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누이를 탐하고 결국 죽게 만든 범인이 토마스의 형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은 사랑의 대상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개인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이모를 잔인한 방식으로 '마녀사냥'한 쌍둥이의 선택도 결국은 어머니를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의 감정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동시에 가장 잔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전반에 걸친 타부와 환상에 가려져 사랑이란 욕망의 이중성에 한 발 더 다가서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의 영화는 누이가 죽음을 맞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신예감독 '알폰소 아코스타'의 <균열>은 부산 영화제의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서 선보인다.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라는 게 놀랍다.

2012.10.08 15:24 ⓒ 2012 OhmyNews
균열 부산영화제 알폰소 아코스타 근친상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