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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극에 이런 사연이?...그들은 라이벌이었다

한 번에 정리하는 한국 사극의 흐름...<국토만리>부터 <뿌리깊은 나무>까지

12.10.07 10:51최종업데이트12.10.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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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극 열풍이 거세다. 연초 <해를 품은 달>을 시작으로 <무신> <신의> <아랑사또전> <대왕의 꿈> <마의> 등 다양한 장르의 사극이 쏟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사극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대체 한국 사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국 사극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일까.

[초기] 야사·고전 중심에서 본격적 왕조사로 이야기 확대

한국 최초의 TV사극은 1963년 박진만이 극본을 쓰고 김재형이 연출한 KBS <국토만리>였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 진 이 드라마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재형은 <국토만리>를 통해 방송가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입증시키기에 이르렀고, 스타 PD로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김재형과 <국토만리>의 등장은 한국 사극이 첫 걸음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각 방송사들은 '의미도 있는데다가 돈도 되는' 사극을 너나 할 것 없이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만들어진 것이 <마의 태자> <민며느리>와 같은 작품들이다. 이 당시 사극은 왕조사보다는 야사나 고전 중심으로 시청자의 민족정서에 소구하는 데 집중했다. 이런 특성은 1970~80년대에도 그대로 면면히 이어져 <전설의 고향>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밑바탕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1960년대 중후반부가 되며 관료적 권위주의 분위기였던 KBS, 상업성과 발랄함의 TBC, 그 둘의 중간적 특성을 보인 MBC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극을 제작하며 '사극 열풍'에 더욱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이때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정명아씨><숙부인전><월산부인><수양대군><대원군><임꺽정><여인천하><세종대왕><원효대사><선덕여왕><김옥균>과 같은 작품들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 사극의 소재는 야사나 고전 뿐 아니라 본격적인 왕조사로 확대됐다. 그리고 보다 큰 스케일의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70~80년대] 김재형 PD의 '라이벌' 된 이병훈 PD의 등장

한국 사극사의 두 거장 PD, 김재형(좌)과 이병훈(우). 김재형 PD는 2011년 타계했으며, 이병훈 PD는 현재 MBC <마의>를 연출 중이다. ⓒ SBS/MBC


일대 방송가에 불어 닥친 사극 붐 속에서 사극 작가들 역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신봉승과 임충이다. 신봉승과 임충은 당시 가장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로 활약하며 높은 몸값을 자랑했다. 신봉승과 임충은 1960년대 등장하여 향후 30년간 한국 사극의 큰 줄기를 좌지우지하는 파괴력을 자랑한다.

사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간 배우도 많았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배우 윤여정. 1971년 MBC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할을 했던 윤여정은 폭발적인 드라마 시청률과 함께 대중에게 가장 '핫'한 여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물론 악역을 맡았던 까닭에 광고에서 잘리고 시청자들에게 타박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시기를 "전성기라고 한다면 그 때가 내 전성기" 라고 말하곤 한다.

1980년대 컬러 TV의 도입은 한국 사극의 또 다른 '변혁'을 예고한다. 이 당시 혜성과 같이 브라운관에 등장하며 한국 사극에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김재형의 '영원한 라이벌' 이병훈 PD였다. 그는 최고의 사극작가인 신봉승과 손을 잡고 장장 8년여가 넘는 시간동안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를 연출하며 방송가를 발칵 뒤집어 놨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던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는 이병훈의 뚝심과 굳은 의지로 인해 탄생한 걸작 중 걸작이었다. 8년간 방송되며 시청률은 부침이 있었지만, 그는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는 조선 500년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흔들림 없이 연출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 시리즈로 이병훈은 당대 최고의 스타 PD였던 김재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극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재밌는 사실은 이때의 이병훈이 <조선왕조 500년>과 같은 왕조사 뿐 아니라 <암행어사> 같은 민중 사극으로도 능력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병훈과 김종학이 손을 잡고 만든 <암행어사>는 매회 완결되는 구조의 에피소드를 선보이며 3년여 간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전까진 멜로드라마의 스타였던 배우 이정길이 암행어사로 등장했고, 방자로 분한 배우 임현식은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특유의 코믹연기를 자랑했던 임현식은 <암행어사>를 시작으로 <마의>가 방송 중인 2012년까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병훈 사극의 마스코트로 활약한다.

[90년대] 웰메이드 사극 바람 타고 사회적 열풍 일으킨 <용의 눈물>

1990년대를 풍미했던 사극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S <용의 눈물>, SBS <장희빈>, SBS <임꺽정>, KBS <장녹수> ⓒ KBS, SBS


1980년대 가장 눈에 띈 작품이 이병훈의 <암행어사>와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였다면, 1990년대는 김재형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 중 김재형 연출, 신봉승 극본의 KBS <한명회>(1994)는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대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한명회' 역할로 열연했던 배우 이덕화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그 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세조 역의 배우 서인석, 인수대비 역의 배우 김영란 역시 주목을 받았다.

1995년도에는 KBS <장녹수>, SBS <장희빈> 등 궁중사극도 쏟아져 나왔다. 특히 정하연이 극본을 쓰고 배우 유동근·박지영·반효정 등이 열연했던 KBS <장녹수>와 임충이 극본을 쓰고 배우 임호·정선경·김원희가 출연했던 <장희빈>은 모두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극불패' 공식을 굳건히 지켜냈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다뤘던 하희라 주연의 <찬란한 여명>이나, 광해의 총애를 받은 궁녀 김개시의 인생을 그린 이영애 주연의 <서궁>은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1994년 <한명회>로 이름값을 한껏 높였다가 1995년 <서궁>의 흥행실패로 체면을 구겼던 김재형은 만 1년여 간의 절치부심 끝에 1996년 <용의 눈물>을 들고 나오며 한국 사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 사극은 <용의 눈물>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할 정도로 이 드라마의 흥행은 사극이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극명히 증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부터 왕자의 난, 태종 즉위, 양녕 폐위, 세종의 즉위까지 조선 초기의 방대한 역사를 숨 막힐 듯 그려냈던 <용의 눈물>의 최고 시청률은 무려 49.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이하 동일)로 역대 사극이 기록한 시청률들을 모두 갈아치운 기록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무난히 소화했던 배우 유동근은 그 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원경왕후 역할을 소름끼치게 표현한 배우 최명길은 연기파 중견배우로서 확실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게 된다.

1996년 김재형이 <용의 눈물>로 신드롬을 일으킬 때, SBS는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정흥채를 내세운 <임꺽정>을 제작해 숱한 화제를 모았다. 현대물 같은 스피디한 진행으로 시선을 끌었던 <임꺽정>은 상업방송인 SBS의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 보인 기획물이었다.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SBS 기획사극은 1998년 김석훈 주연의 <홍길동>으로 이어져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린다.

[90년대 말] 사극의 위기, <왕과 비> <허준>으로 가뿐히 넘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MBC <허준> ⓒ MBC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잘 나가던 사극은 1998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IMF 시대와 함께 거센 후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각 방송사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사극 제작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이 시기에 계획되어 있었던 수많은 사극들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꽤 괜찮은 사극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왕과 비>다.

<용의 눈물> 후속으로 제작된 <왕과 비>는 KBS가 제작비를 절감한다는 이유로 <용의 눈물>의 오프닝 음악을 그대로 쓰게 하는 등 방송사의 지원을 크게 받지 못한 채 출범했다. 그러나 '인수대비'로 열연한 배우 채시라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올라간 시청률은 최고 시청률 44.4%를 기록했고, "한국 사극은 살아있다"는 기분 좋은 반응을 얻기에 이르렀다. 채시라는 이 작품을 통해 신성우와의 파혼 스캔들을 확실히 극복하며,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1996년 <용의 눈물>, 1998년 <왕과 비>에 이어 1999년에는 그 유명한 <허준>이 등장한다.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을 원작으로 최완규가 극본을 맡고 이병훈이 연출을 맡은 MBC <허준>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으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허준>이 방영되던 당시 원작소설 <동의보감>은 불티나게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전국의 한의원은 사상 유례가 없는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최고 시청률 63.7%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고의 민중사극이자 '국민사극' 칭호를 받은 이 작품은 이병훈 감독이 10년 만에 일선에 복귀해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로 왕조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그는 10년 만에 <허준>으로 민중사극의 새 지평을 열며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 연출가로서 그 이름을 굳건히 하게 된다. 또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전광렬은 그 해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초] 김재형 Vs. 이병훈, 피할 수 없었던 두 차례의 대결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대장금> ⓒ MBC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사극의 역사는 더욱 다채롭게 발전한다. 2000년 주목을 받은 건 김영철·최수종 주연의 KBS <태조 왕건>이었다. <태조 왕건>은 그간의 조선사 중심에서 탈피해 고려사를 주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고 최고시청률 역시 60.2%를 기록해 국민 사극의 반열에 올랐다.

장장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방송된 이 드라마는 2000년에는 궁예 역의 배우 김영철에게, 2001년에는 왕건 역의 배우 최수종에게 연기대상을 안기는 기염을 토했다. 한 드라마에서 두 명의 연기대상 수상자가 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된 셈이다.

<태조 왕건>이 위세를 떨친 2000년을 지나 2001~2002년에는 일대 사극 부흥기가 다시 시작된다. 이 사극 열풍의 선봉에는 역시 김재형과 이병훈이 있었다. KBS를 떠나 SBS에 둥지를 튼 김재형은 정난정과 문정왕후의 일대기를 다룬 <여인천하>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병훈 역시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상도>를 만들어 20% 초중반을 상회하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 <여인천하>와 <상도>는 같은 시간대 방송되어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시청률 대전'에서 1차적으로 승리한 이는 김재형이었다.

<여인천하>와 <상도>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2002년에는 정하연 극본, 이미연 주연의 KBS <명성황후>도 만들어져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한 때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던 <명성황후>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남기는 등 숱한 화제를 낳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타이틀 롤을 맡았던 배우 이미연이 연장방송에 반대하며 도중하차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2년 <여인천하>와 <상도>로 격돌했던 김재형과 이병훈은 2003년 <왕의 여자>와 <대장금>으로 다시 한 번 부딪힌다. 한국 사극의 자존심과 같은 두 거장의 두 번째 격돌은 의외로 이병훈이 초반 기선제압에 손쉽게 성공하면서 싱겁게 승패가 갈렸다. 김영현 극본, 이병훈 연출, 이영애 주연의 <대장금>은 아기자기한 RPG식 전개로 이병훈 사극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극찬을 들었고 최고시청률 역시 57.8%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 작품은 국내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로 수출되어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이란에서는 시청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영애는 <대장금> 하나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여배우로 대접받게 됐고, 이병훈 역시 연출가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리는 영예를 안았다. <대장금>은 아직까지 한류 최고의 킬러 콘텐츠이자 수출 역군으로 대접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아직도 사극의 진화는 계속된다

2009년 방영된 MBC <선덕여왕> ⓒ MBC


<대장금>의 성공 이후, 한국 사극은 여러 장르적 변화를 꾀하며 또 한 번 변신을 꾀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최수종, 채시라 주연의 <해신>이었고 최수종은 이 작품을 통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2006년에는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송일국 주연의 <주몽>이 인기를 모았고, 2007에는 이병훈의 또 다른 히트작 <이산>이, 2009년에는 김영현 극본, 고현정·이요원 주연의 <선덕여왕>이 50%에 가까운 시청률로 큰 사랑을 받았다. 상도 뒤따랐다. 2006년 송일국은 <주몽>으로, 2009년 고현정은 <선덕여왕>으로 각각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장혁·오지호 주연의 <추노>가 퓨전사극의 새 장을 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추노>는 한국 사극이 얼마나 세련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세련미 속에서 얼마나 높은 흥미와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지 극명히 보여준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장혁은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주목할 만한 사극은 <뿌리깊은 나무>였다. 이정명 소설 <뿌리깊은 나무>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의 명콤비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집필을 맡고 배우 한석규가 출연해 숱한 화제를 모았다. 한글 창제를 소재로 탄탄한 추리극을 만들어 낸 <뿌리깊은 나무>는 2011년 최고의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주연 한석규는 그 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한국 사극은 50여년의 역사 동안 수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시청자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왔다. 사극이 담고 있는 이념과 사상, 유구한 역사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사상과 이념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시대를 담기 위해 노력했고,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박수를 보낸다. 또, 그 길을 앞으로 또 걸어갈 모든 이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사극 이병훈 김재형 용의 눈물 대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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