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강남스타일' 말춤? 꼭짓점 댄스 같은 퍼포먼스"

[인터뷰①] "말춤 역사 알려면 '긴기라기니'를 들어라!"

12.09.19 10:25최종업데이트12.09.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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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야 '말춤' 하면 단박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말춤은 1980년대부터 있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롤러장과 나이트클럽에서는 둥그렇게 서서 한 명씩 가운데 들어가 말춤을 추곤 했다. '춤 좀 춘다' 하는 이들은 플로어 가장자리에서 과시하듯 춤췄다. 말춤의 기본은 요즘 배기바지 같은 '말바지'와 '깃또 신발'(가죽을 방울 모양으로 단 신발)이었다. 브랜드 EXIT의 상의에 빌리진 집게를 벨트로 매줘야 '멋 좀 부릴 줄 아는구나' 인정받았다.

9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맹활약했던 전직 DJ 강건씨가 12일 밤 서울 발산동의 한 음식점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술잔을 나누며 최근 가수 싸이에 의해 유행하고 있는 말춤의 유래와 DJ로 활동하던 당시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강건씨는 현재 마루소리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활동하며 재능있는 가수들을 발굴하고 있다. ⓒ 이정민


22년 동안 나이트 클럽의 인기 DJ였던 음반제작자 강건씨를 만나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말춤과 나이트클럽 문화의 역사에 대해 되짚어봤다. 부모님께 입학금 100만 원을 빌려 대학에 진학했던 강씨는 등록금을 벌고자 음악다방 DJ로 일을 시작해 나이트 클럽 DJ로 거듭났다. 믹싱을 배우가 위해 3개월가량 무보수로 일했던 그는 당시 최고 나이트클럽이었던 서울 종로3가의 국일관에 입성했다. 당시 나이트 클럽의 입장료는 500원. 새터데이와 퀸, 코파카바나 등이 '핫한' 장소였다.  

LP판도 DJ 서열따라 산다? "1초에 한강다리 3개 지나"

"잘나가는 DJ에게는 보조가 있었어. 주차할 곳 앞에서 딱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하고 판가방을 들어야 했지. 판가방이 또 서열(?)의 상징이었는데 잘나가는 DJ는 LP판 크기에 가방을 맞췄어. 딱 열면 판이 올라오게끔 하는데 원판(직수입 싱글판)이 몇 장 들어있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 소공동 쪽에 세일 음악사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DJ 레벨에 따라 원판을 팔았어.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


인터뷰 중 전화거는 시늉을 하는 강건씨(사진 위), 나이트 클럽의 역사를 읊는 강건씨(사진 아래) ⓒ 이정민


서로 다른 템포의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믹싱' 기술은 지난 1986년 처음 도입됐다. 조선호텔 나이트클럽 제너두에서 대만 DJ를 부르면서부터다. 덕분에 음악이 바뀔 때 멈칫하지 않고, 한층 다이내믹해졌다. 당시 나이트클럽에는 미성년자가 100%였다고. 단속이 시작되면 학생증 있는 사람은 왼쪽, 없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나눠섰다. 강씨는 "지금에야 부킹 문화가 웨이터가 여자들을 끌고 가는 게 됐다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가 여자에게 가서 '앉아도 되느냐'고 묻는 수준이었다"면서 "홀 안에서 같이 놀기보다 마음에 들면 밖에서 만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단순히 음악만 트는 DJ가 아니었다. 전화 교환수들이 쓰는 마이크를 개조해서 '말하는' DJ로 캐릭터를 구축한 것. 국내 최초의 와이어리스 마이크인 셈이다. 하루 30분 한 타임씩 12군데에서 일하던 시절, "강건은 1초에 한강 다리를 3개 지난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지방 나이트클럽의 '초청'을 받아 30분에 300만 원을 받고 가기도 했다. 한 타임에 14~15곡을 연달아 틀었던 그는 갑자기 음악을 모두 끄고 "셋"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면 춤추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셋이 짝을 짓곤 했다. 또 유학생들이 자리를 꽉 채운 클럽에서 '삼태기 메들리'를 트는 모험(?)도 감행했다.

1980년대 유행하는 말춤을 직접 선보이는 전직 DJ 강건씨 ⓒ 이정민


"줄리아나 서울이 오픈했을 때만 해도 재벌 2세들은 다 왔거든. 갓 스물 넘은 아이들이 오후 3시면 서로 룸에 들어가겠다고 제비뽑기를 하고, 플로어도 5시면 다 차. 음악이 중간에 끊기거나 선곡이 마음에 안 들면 플로어에서 놀던 사람들이 쏵 빠지는데 그러면 다음날 DJ가 잘리지. 음악 선곡에 민감해서 DJ는 물론이고, 주인도 한 곡 한 곡 바뀔 때마다 손님들 눈치를 봐. 그랬는데 내가 트로트를 틀었으니. '미쳤느냐'는 소리도 들었는데 반응이 진짜 좋은 거야. 다들 나한테 '특이한 놈'이라고 하더라고."

"'강남스타일' 말춤? 꼭짓점 댄스 같은 퍼포먼스"

'밤의 세계'에는 끼 많은 이들이 모이곤 했다. 이태원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가수 박남정이 '스파크 쇼'를 하는가 하면 '각설이 쇼'를 하던 이주노는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했다. DJ로 잘 알려진 신철은 사실 DJ로는 빛을 못 봤던 인물이라고. 신정환과 채리나, 류승범, DJ DOC 김창렬 이하늘, 쿨 이재훈 등도 이 세계에 몸담았다. 클론 강원래는 나이트클럽에서도 방송 댄스 안무를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DJ 출신 음반 제작자도 많았다. '이거 아니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달려들었지만, 지속해서 잘 관리하지 못해 크게 성공하긴 힘들었다.

"나이트 DJ는 연예인 술 문화와 가까웠어. 지금이야 연예인들이 럭셔리하게 살지만, 그때만 해도 연예인은 음지의 사람들이었거든. 이치현과 벗님들, 고 김현식, 송골매 등 잘 나가는 형들과 레벨이 같았어. 같이 술 마시고 음악 얘기하고. 가수들이 DJ들에게 홍보했는걸. LP판을 박스째로 가져와서 '틀어달라'고 하고. 지금 아이돌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것도 일본 나이트클럽 줄리아나 도쿄에서부터 시작된 거야. 춤을 유심히 보면 옛날에 추던 나이트 댄스지."


다시 말춤 이야기로 돌아와서, 강씨는 "말춤의 시초는 롤러장 노래"라고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역시 모든 것을 걷어내면 말춤을 출 수 있는 그루브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일본가수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 등을 예로 든 그는 '강남스타일' 열풍에 대해 "꼭짓점 댄스 같은 전 세계적인 퍼포먼스"라고 털어놨다. 그는 "싸이는 가수이기 이전에 퍼포머이자 디렉터, 래퍼, 엔터테이너"라면서도 "다만 가수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노래는 담백해야 해. 버스커버스커처럼 말이지. 음 몇 개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게 가수의 영역 아닐까? 기타 하나 갖고 노래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가슴을 때릴 수 있잖아. 만들어진 요즘 아이돌도 좋고 다 좋아. 물론 그들도 가수지. 하지만 MT가서 해변에 앉아 전부 MP3 꽂고 바다만 보고 있을 건 아니잖아. 기타치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어. 융합이 안돼. 이건 제작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문제지. 대중도 그걸 받아주지 않으니까, 만들면 망하니까 점점 안 하는 거야. '제주도 푸른 밤' 같은 노래가 나오겠어? 하면 굶어 죽을 텐데."

LP판 찾아 하루종일 먼지 뒤집어쓰던 그때..."기다림의 묘미"

한참을 뒤지다 뽀얀 먼지 속에서 비로소 듣고 싶었던 음반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아는가? 클릭 한 번이면 노래는 물론이요, 뮤직비디오에 방송 영상까지 찾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은 공감하지 못할지 모른다. "컴퓨터로 찾으면 될 텐데 뭐하러 먼지범벅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씨가 추억하는 그 시절은 달랐다. 금지곡을 듣고 싶어서 500원짜리 백판을 사러 청계천에 가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하루종일 찾다 마침내 그 레코드판을 발견했을 때는 "심 봤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했다.

말춤을 추는 강건씨의 모습 ⓒ 이정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은거야. 다 들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스프레이를 뿌려서 융으로 싹 닦은 다음에 턴테이블에 딱 올리고 아껴뒀던 바늘을 끼운 다음에 노래를 틀면 전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는데. 어후. 기다림의 묘미가 바로 이거야. 핑크플로이드 백판을 듣다가 '와 이거야' 하는 생각에 눈물까지 흘렸어. 그런데 요즘은 우리 아들만 해도 음악 한 곡을 끝까지 안 듣더라고. MP3 들을 때도 10초 이상을 안 들어. 다음 노래로 넘어가기 바쁘지. 기다림의 묘미가 없어."

강씨는 "말춤도 좋고 다 좋은데 이렇게 변해가는 대중의 귀에 맞추려고 10초~15초 안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후크송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감정이 라인을 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게 요즘 가요계"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음악은 음악으로 들어야지. 소리가 아니라. 요즘은 그저 '좋은 거' '좋은 소리' 정도로만 생각하거든.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이 창작하고 연주한 것이잖아. 꼭 전문가가 아니라도 '왜 이렇게 연주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DJ 강건 싸이 강남스타일 말춤 나이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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