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色스런 이 사람...한국영화에 '색'을 입히다

[인터뷰①] 상상마당 박진호 색보정 기사를 만나다

12.08.21 14:44최종업데이트12.08.21 14:52
원고료로 응원

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난 박진호 디지털 컬러리스트(색보정 기사)가 자신이 참여했던 영화<도둑들> 타이틀 롤에 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며 색보정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를 볼 때, 엔딩 크레딧까지 유심히 보는 관객이 있다면 감독, 배우, 제작, 촬영, 조명의 이름뿐만 아니라 아마도 'D.I' 부분의 이름을 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D.I가 뭘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분들 있다면 이 인터뷰를 유심히 보길 바란다. D.I는  Digital Intermediate의 약자로 '디지털 후반 작업'의 의미다. 보통 이 D.I 작업을 하는 분들을 가리켜 디아이 기사 혹은 디지털 컬러리스트, 색보정 기사로 부른다.

<오마이스타>에서 최근 충무로 흥행작들의 대부분의 색보정을 했던 상상마당의 박진호 기사를 만났다. 박진호 기사의 손을 거쳐 간 작품만, <고지전><댄싱퀸><범죄와의 전쟁><건축학개론><은교><돈의 맛><후궁 : 제왕의 첩><도둑들>이 있고 앞으로 <내가 살인범이다><회사원><신세계><남쪽으로 튀어><무명인><협상종결자><동창생><관상><분노의 윤리학><화이> 등의 기대작들이 줄줄이 박진호 실장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장편 상업영화의 디지털 색보정을 맡는 사람은 4개 회사에 8명 정도 있다. 지난해 1월 상상마당으로 스카우트된 박진호 실장은 최근 충무로에서 D.I 부분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D.I는 모든 것을 디지털 환경에 맞추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국내에서는 디지털 색보정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컬러리스트, 색보정기사 정도로 부르시면 될 것 같아요.

과거 필름으로 영화가 상영됐을 때는 필름으로 찍었던 영화를 디지털 스캔해서 모든 작업을 디지털화했어요. 이제는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뀌었으니 그런 부분에서 작업은 훨씬 더 간편해졌습니다."

박진호 디지털 컬러리스트(색보정 기사)가 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색보정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디지털로 되어 있는 영상에 박진호 기사는 4억원짜리 디지털 색보정 기기(베이스라이트)를 만지며 영상에 고운 색감을 입힌다. 더 생생하게 살려내기도 더 음침하게 하기도, 밝게도  어둡게도 만든다.

"대체적으로, 저희들이 하는 것은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호러물은 음산하게, 멜로물은 좀더 따뜻하고 온화하게, 전쟁영화는 무채색 계열로 합니다. 저희가 만지는 것은 밝기, 채도 등으로 다양한 색을 가공해냅니다.

장르에 따른 색감의 분위기보다 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전체적인 톤을 맞춰 드리는 거예요. 촬영을 할 때, 투샷도 있고 쓰리샷도 있고 롱샷도 있고 바스트, 클로즈업 등 다양한 촬영방법이 쓰이는데 그런 모든 신들이 연결됐을 때 튀지 않아야 하거든요. 사실 모든 조명을 똑같이 맞춰서 할 수도 없어서 전체적으로 신 내에서 통일성을 유지해드리는 게 가장 우선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색보정 작업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대충 찍어도 색의 마법으로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게 다 되지는 않아요. 특히 계절적인 부분에 있어서 영화 속 계절은 여름인데 촬영을 겨울에 할 경우 색보정으로 초록빛이 나게는 할 수 있지만 잎사귀가 없으면 그 느낌이 나지가 않습니다. 잎사귀가 무성한 장면이 있어야 색보정으로 여름의 초록빛을 씌웠을 때 더 느낌이 살아나거든요.

그래서 초반에 촬영감독님들이 'D.I로 하면 다 돼'라고 하시지만 몇 작품 하시다보면 현장에서 어느 정도 화면에 충실히 담아내야 D.I.를 했을 때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아시거든요. 그래서 촬영 감독님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제어해주십니다."

박진호 디지털 컬러리스트(색보정 기사)가 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이 작업한 결과물을 모니터로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한여름 나무의 녹색잎이 빨갛게 물들어 가을 잎사귀가 되어 있다. ⓒ 이정민


박진호 실장은 D.I로 화면을 만지는 부분이 과거에는 색보정에 국한돼 있었다면 이제는 약간의 C.G 작업까지 그 영역이 확장됐다고 전했다.

"자동차 촬영의 화면 같은 경우, 떨림이 있어요. 그걸 '쉐이킹'이라고 하는데, 그 쉐이킹 부분을 이제 D.I.에서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C.G 팀에서 많이 했는데 C.G 팀은 그 C.G가 속한 분량만 하거든요. D.I는 영화 전반적인 커트를 다 봐야하니 전체적인 연결에 있어서 흔들림의 농도를 파악해서 그림의 크기를 키웠다가 줄였다고 하면서 그림의 울렁거리는 쉐이킹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과거에 색보정만 해서 분위기만 만들었다면 이제 영상에 감정을 넣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색보정 기사로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일까.

"처음에 일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엔딩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갈 때였는데 사실 그런 재미는 1,2년 밖에 안 갑니다. 지금은 제가 만진 영화의 댓글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아침에 오면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박스오피스도 체크합니다.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 체크하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한 작품에 관객들이 많이 들고 반응이 좋으면 너무 뿌듯하고 좋죠."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으로는 감독이나 촬영 감독이 명확하게 콘셉트가 정해지지 않고  오리무중으로 생각에 빠져있을 때라고 했다.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색의 톤이라든지 그런 부분은 추상적이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아 아...그 톤 있잖아요. 그 색 있잖아요..' 하면서 전달이 잘 안 되거나, 감독님이나 촬영감독님이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을 때 커뮤니케이션이 힘들고 어려워요. 그럴 때는 빨리 빨리 여러 예시들을 보여드리고 치고 빠지기를 잘 해야 합니다.(웃음)"

영화<고지전> <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건축학개론> <은교> <돈의 맛> <후궁 : 제왕의 첩> <도둑들> 등의 색보정 작업을 한 박진호 디지털 컬러리스트(색보정 기사). 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내 작업실에서 색보정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정민


색보정 기사, 디지털 컬러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영상 컬러리스트는 국가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영화 C.G를 처음 시작하면서 2D 그래픽을 먼저 했었어요. 그때는 영화의 매 커트마다 작업할 때의 쾌감이 있었지만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D.I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작업을 해야 하니 내 작품이라는 프라이드와 함께 영화에 대한 몰입도와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컬러리스트는 기술직이고 노동집약적이라기보다는 자기 감각을 이용하는 것이라서 정년은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단골도 생기고 1인 컴퍼니도 될 수 있어요. 외국의 디지털 컬러리스트는 프리랜서가 많은데 저는 상상마당에서 월급제로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한 작품들이 많이 이슈가 되면서 인센티브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직업을 갖는 부분에서 공산주의라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합니다. 안정되려면 공무원, 아니면 보통 '사'자로 들어가는 직업 등. 돈을 벌려면 부동산 등등 그런 게 고착화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 창출 그러는데 그게 크게 와 닿지도 않고요. 

그런 획일화된 환경에 비해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일을 하면서 만족할만한 연봉을 받고 사생활도 지켜갈 시간도 있어요. 평생직장의 의미도, 정년 보장도 의미가 없어진 지금 청년들이 제도적으로 틀에 박힌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꿈을 잃어가는 건 너무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나중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오마이프렌드] 박진호 기사의 오른팔-왼팔인 '정혜리와 형준석'

박진호 기사는 자신의 '오마이프렌드'로 상상마당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직원인 정혜리와 형준석을 꼽았다.

"형준석은 스타에스에서 1년도 안 된 신입이었는데 제가 상상마당으로 이직을 하면서 따라온 친구입니다. 혜리씨는 상상마당에 와서 인원이 한 명 더 필요해서 상상마당에서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신입이었어요.

이 두 친구들이 저와 함께 '상상마당 D.I'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작품들을 다 만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영화들을 이 두 사람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에요.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앞으로도 유능한 디지털 컬러리스트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3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난 박진호 디지털 컬러리스트(색보정 기사)가 자신이 참여했던 영화<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은교>포스터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한국영화에 색을 입히는 박진호 컬러리스트 인터뷰 관련 기사===

[인터뷰①]色스런 이 사람...한국영화에 '색'을 입히다
[인터뷰②]박진호 컬러리스트 "영화의 '색'은 선택의 문제"
[인터뷰③]한국영화 불법유출...죄없어도 가장 먼저 조사받는 행운(?)

박진호 상상마당 디지털 컬러리스트 색보정기사 D.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