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걸그룹 티아라 사태, '왕따와 의지' 이후를 바라보자

[주장] 문제의 본질은 '왕따'도, '연예계'도 아니다...'왕따와 연예계' 동시다

12.08.04 11:03최종업데이트12.08.04 11:03
원고료로 응원

티아라 ⓒ 이정민


작열하는 열기에 대지가 갈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사나흘, 한반도 소문의 거리엔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들이닥쳤다. 태풍명 '왕따와 의지'. 기록적인 강수량을 기록한 대중의 비난과 광풍이 되어 습격한 군중의 분노.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선 제방이 무너지고 '티아라' 홍수가 범람했다.

여전히 먹구름은 상공을 거머쥐고 있지만, 거대하게 공회전하던 물길은 조금씩 배수로를 찾아가는 듯하다. 성토의 초점이 티아라 멤버들에게서 김광수 대표에게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관계를 방치한 근본적 책임은 물론, 그가 감행한 '중대발표'는 그야말로 중대하게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우리는 수마가 물러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왕따설'로 일어난 대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죽과 재해관리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현재의 재난을 통해 미래를 예비하기 위해선 먼저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티아라 사태의 진원은 과연 무엇인가. 그 원인에 맞추어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 도대체 왜 대중은 걸 그룹 멤버들의 사생활에 그토록 맹렬히 감응했던 것일까. 많은 이들은 이 중 '왕따설'에 무게중심을 싣는 듯하다. 민감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연예계에 의해 터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온전한 해결책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문제는 '왕따'가 아니다. 당연히 '연예계'도 아니다. 이 중 어느 하나에 무게중심을 싣는 다면, 열대성 저기압이 들이닥친 과정을 온전히 예방할 수 없다. 양팔 저울의 균형을 수평으로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문제는 가해자의 인성이 아닌 구조다

사실 따돌림이라는 것의 정의는 꽤나 애매한 공백을 동반한다. 그만큼 일상에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그늘을 드리운 것이 '배제와 소외'다. 특히나 어른들의 세계에서 사회성은 일종의 인간성이자 경쟁력이다. 남들이 필수적으로 갖춘 언변과 적응력, 적극성을 갖추지 못했을 때, 따돌림은 '적자생존'이라는 개념 속에서 윤리성을 획득한다.

나는 이 따돌림의 주체들이 특별히 인성이 사악하거나, 비열한 족속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한 힘의 관계로 얽혀있을 때, 혹은 어떤 감정적 기제가 조장 돼 있을 때, 구조적으로 집단의 이너서클(권력을 쥔 핵심층)에 포섭돼야만 안온할 수 있을 때. 바로 그 때, 따돌림은 정당성을 얻고, 폭력의 카테고리에서 밀려난다. 아주 평범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가책 없이 괴물이 되는 것이다.

하정희 한양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올해 1월 "여학생은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해 폭력에 가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즉 '동류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외되지 않기 위해 반 자발적으로 폭력에 가담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티아라 멤버들의 '인성'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해결책인지 알 수 있다.

26일 오후 3시 일본 도쿄 부도칸 공연장에서 일본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티아라 멤버들과 한국 취재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화영, 효민, 큐리, 보람, 소연, 지연, 은정, 아름이 자리했다. ⓒ 코어콘텐츠


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번 사태의 근원을 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올바른 판단이다. 다만 이들의 방향제시에도 한계는 숨어 있다.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김광수 대표란 톨게이트로 진입한 채 언저리를 맴돈다.

아이돌의 위상과 정체성부터 새롭게 생각해야

만약 김광수 대표가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돼 퇴출당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K-POP은 평화를 되찾고, 세계 속의 한국을 알릴까? 기획사들이 소속 가수들의 정신적 복리와 인성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순전히 시스템의 문제다. 특정 기획사 대표의 인성을 규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걸 그룹 시장이란 레드오션에 어떻게든 편승해 수익을 뽑아내려면 자연히 과도한 스케줄을 강요하고, 경쟁력 있는 특정 멤버를 집중적으로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그로인해 상존하는 잠재적 불화와 불만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은닉해야 한다. 사업가에게 중요한건 수익이지, 휴머니즘이 아니다. 이건 특정 기획사 대표의 성품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산업구조상 필연적인 결과다.

이 속에서 언론과 기획사는 '한류 스타'라는 화려한 겉포장의 과실과 책임을 어린 스타들에게 덧씌운다. 이런 풍토 속에선 전체의 영광을 위해 '스타병에 걸려 민폐를 끼치는 막내는 쫓아내야 한다'는 궤변이 암암리에 통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K-POP을 이끄는 아이돌들이 진정한 한류의 중심으로 대접받기 위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비평도 사태의 근원적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걸 그룹 멤버들의 적확한 정체성은 '대한민국을 알리는 K-POP전사들'이 아니라 '직업적 딴따라'일 뿐이며, 그 이전에 여리고 변덕스럽고 적당히 괴팍한 여중고생, 여대생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대중과 언론, 기획사가 연예인들의 위상과 정체성을 다시금 정초해야 한다.

연예인에게 책임과 모범을 요구하며, 한편으론 내밀한 불화를 관음하는 풍조가 지속 되는 한, 참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연예계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곳이라고 왜 따돌림이 없겠는가. 당장 훈육을 전담하는 교사가 지켜보는 학급에서도 바퀴처럼 서식하는 게 따돌림과 폭력이다.

24시간 맹렬히 부대껴야 하는 걸 그룹 멤버 간에 아무런 갈등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사회의 악업이 연예계에서 '현상화' 되었단 걸 비난하기 이전에, 그곳에서도 불상사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제의 본질은 '왕따'도 '연예계'도 아닌, '연예계와 왕따' 둘 모두인 것이다.

비판과 분노를 넘어 성찰과 자성으로

티아라는 25~26일 이틀간 일본 부도칸 공연장에서 일본 투어의 마지막 콘서트를 개최했다. ⓒ 코어콘텐츠미디어


김광수 대표는 티아라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코어콘텐츠 미디어 최대의 수익원은 티아라다. 그가 당분간 사업을 폐기할 작정이 아닌 이상, 이만큼 키워놓은 그룹을 순순히 해체시킬 리 없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학원가에 따돌림이 침투한 현실은 걸 그룹의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티아라 멤버들을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통렬하게 퇴출당하다고 해도, 현실의 왕따는 단 한명도 구제받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말이다. 티아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건 지극히 합당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 퇴출운동을 벌이는 건 비례의 원칙을 넘어선 과잉판결이다.

사태의 토양은 왕따라는 사회적 질환과 연예계의 구조적 시스템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돌팔매질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이 천지개벽의 소동을 통해 기획사들이 얻은 교훈은 뭘까. 인간적 교감이 부재한 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성일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왜 이렇게 확신 하냐고? 당장 김광수 대표를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에덴동산을 불현듯 찾아온 사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우리 사회 관리 집단의 어떤 평균치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일 뿐이다. 기획사 사장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기 위해 병원을 찾기보다, 곪은 상처가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여밀 것이다.

연예 산업의 모서리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양분해 이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현실의 모순이 연예계에서 드러났다는 위선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환부를 언제든 포착해 진단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이입과 사회적 모범의 준수는 이러한 인프라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분노와 질타의 태풍은 되레 실존하는 암세포들이 신체조직 아래 은신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기획사는 아이돌을 공익의 전파자로 격상시키는 허황된 언론플레이를 멈춰야 한다. 언론은 하루는 걸 그룹을 우상으로 포장했다, 하루는 방담코너 속 A양으로 팔아먹는 이중거래를 집어치워야 한다.

환부를 깊숙이 도려내기 위해선 성찰이란 메스가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연루되었던 따돌림에 대한 숙고와 자성 말이다. "당하는 사람에겐 이유가 있다"는 말에 혹 나 역시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내 주변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덕후'와 '찐따'에게 화영이란 예쁘장한 동생에게 보내는 반의 반 만큼이라도 애정을 건넸었는지. 따돌림의 피해자가 따돌림 당해 마땅한 열등한 존재가 아니듯, 따돌림의 가해자 역시 특별히 악랄한 인성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 방관자와 가해자는 나와 당신, 우리 모두였을 수 있다.

14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티아라의 공식 팬클럽 QUEEN'S 창단식에서 지연, 화영, 효민, 아름, 소연, 은정, 큐리, 보람이 사랑한다는 수화표시를 하며 마무리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결국 왕따는 일상의 문제다. 티아라를 퇴출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보단, 먼저 내 곁의 소외된 이들을 찾아보자. 지금 당장 티아라와 코어컨텐츠미디어가 아닌 내 아이와 교실로 눈을 돌리고 개선을 요구하자. 장담컨대 우리를 우울케 하는 '왕따'의 증식을 막기 위해선, 그 편이 몇 십 배는 실천적인 구제책이다. 10대에 데뷔했다 20대 중반 즈음 퇴물이 되는 가요계의 저수량 역시 보수가 필요하다.

기획사의 시스템은 소비자의 요구와 거래 체계 하에서 최대한 수익을 뽑아내기 위한 필연적 결과다. 윤리성을 떠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일 수 있다. 이것만을 질타하는 것도 뿌리를 간과하는 것이다. 그 전에 제대로 된 교육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 기획사를 가리지 않고 투신하는 현실에 눈을 맞춰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 그리고 연예계에서 비극과 희극은 그 순서를 바꿔서 찾아온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온갖 '의지' 패러디가 씁쓸한 웃음을 유발했지만, 다음번엔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여름은 아직 길다. 다가올지 모를 또 다른 태풍에 대비하자.

티아라 왕따 화영 걸그룹 김광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