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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 전성시대...<유령>VS<각시탈>VS<추적자>

[흥미기획] 복수는 나의 것! 세 드라마의 공통점, 무엇이 있나

12.08.04 16:46최종업데이트12.08.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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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SBS <추적자>에서 강력계 형사 백홍석 역을 맡은 손현주. 홍석은 딸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세상과 맞선다. ⓒ SBS


브라운관이 분노로 가득 찼다. 오늘도 복수, 내일도 복수다. 아침, 저녁도 가리지 앉는다. 오전 9시 45분 tvN <노란 복수초>로 시작한 복수는 오후 10시 5분 SBS <유령> KBS <각시탈>로 이어진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SBS<추적자> 역시 아버지 백홍석의 복수를 주 소재로 했다. 시청자들은 속으로 혹은 입 밖으로 '이 나쁜 XX'를 연발하며 TV 앞에 시선을 고정한다. 짧게는 16부작, 길게는 100부작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복수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꾸 보게 된다. 요리조리 피하는 가해자를 보며 밥 먹다 체할 정도로 화가 나지만 TV를 끄는 일은 없다. 이제나 저제나, 나쁜 놈이 죗값을 치르기를 바랄뿐이다.

'복수'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연기자의 연기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기능해왔다. (이는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들이 가장 사랑하는 창법이 '지르기 창법'인 것과도 비슷하다.) 1999년 <청춘의 덫>부터 2012년 <추적자>까지, 수많은 연기자들이 복수의 칼날을 세워왔다. 그런데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복수의 화신'들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브라운관에 나오는 복수 캐릭터들을 보면 이전의 그것들과는 2%쯤 다르다. 그 2%의 차이를 정리해 본다.

사적 복수 전성시대: "범인은...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잡겠다"

첫 번째 특징은 '사적 복수'다. 공권력으로부터 배신당한 주인공들이 직접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섰다. 법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령>의 한 장면 ⓒ SBS


보통 악인에 대한 복수일 때는 '내'가 하지 못하면 법이 있겠지 한다. 하지만 공권력까지 그들이 매수했다. 그 다음엔 갈 길이 없다. '나' 자체가 마지노선이다. 공권력을 믿을 수 없어, 법으로 복수하는 것이 불가능해 자신만을 믿기로 했다.

<추적자> 백홍석(손현주 분)의 복수 대상은 돈과 권력으로 검찰과 경찰을 모두 매수한 대통령 후보 강동윤(김상중 분)이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홍석의 딸 수정이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재판 과정에서 원조교제에 마약혐의까지 덧씌웠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길가의 벌레들' (강동윤 식 표현)은 모조리 짓밟아 버리는 파렴치한 냉혈한이다.

백홍석은 '진실'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강동윤을 계속 공격하지만, 결과는 늘 황소에게 모기가 달려드는 것과 같다. '황소' 강동윤은 매번 절묘한 타이밍에 '모기' 백홍석에게 치명적인 살충제를 뿌려댄다.

<유령>의 김우현, 아니 박기영(소지섭 분)도 마찬가지다. 검찰-경찰-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진실을 조작한 사건, 신효정 사건의 범인을 밝히기 위해 죽은 우현 대신 사이버경찰청에 들어왔다. 신효정 사건의 범인은 우현을 죽이고 자신을 사지로 내몬 자이기도 하다. 기영은 진범을 잡아 우현이의 복수를 하고 정의를 지키는 것이 목표다.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 KBS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수목드라마 <각시탈>현장공개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강토 역의 배우 주원이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각시탈>은 또 어떤가. 동생 이강토(주원 분)는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며 각시탈을 잡기 위해 날뛰다가 형 이강산(신현준 분)을 제 손으로 죽였다. 어머니마저 일본인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이강토는 자신이 형 대신 각시탈이 되어 가문의 복수를 시작한다. 일제 치하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그 이전에 가문의 원한을 갚기 위한 개인의 복수다.

드라마 속 공권력의 붕괴와 사적복수의 성행은 '무너진 정의'에 대한 갈망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 주인공들을 보면 2년 전 한국에 불었던 '정의 열풍'이 떠오른다. 마이클 센델의 책을 필두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수없이 외쳤던 때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의'는 우리들에게 뜬구름 같은 단어다.

정권말미인 지금 검찰-경찰 연계 비리사건, 권력형 뇌물수수 사건 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경험적으로 직감한다. 보도되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란 것을. 그토록 갈망했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이 '정의'다. 드라마 속 공권력의 붕괴, 동시에 펼치는 사적복수는 시청자들의 피로함을 반영하고 있다.

복수 대상의 거대화: "캐면 캘수록 크다. 이놈의 정체는..."

두 번째 특징은 복수 대상의 거대화다. 복수의 대상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거대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복수의 칼날을 가까이 할수록 그 대상은 주인공을 철저하게 짓밟는다. 그럴 때마다 법은 싸늘하게 주인공을 외면한다.

<추적자>에서 김상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백홍석(손현주 분)의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또 이를 이용하는 대권주자 강동윤 역을 맡았다. ⓒ SBS


<추적자> 백홍석의 총끝은 지지율 70%가 넘는 대통령 후보 강동윤을 향한다. 여기에 재계서열 1위 한오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유령> 김우현의 복수대상은 세강증권 사장에서 세강그룹 회장이 된 조현민(엄기준 분)이다. 복수만을 위해 10여 년간 칼을 갈아온 조현민은 돈으로 검찰과 경찰을 매수했다. <각시탈>은 또 어떤가. 이강토의 복수대상은 넓게 보면 일본제국이다. 스케일로 따지면 앞의 두 드라마를 압도한다.

이처럼 거대한 복수대상은 복수를 하려는 주체, 개인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 열심히 준비해서 주인공이 드디어 '한방' 먹이려는데, 그것은 '쨉'으로 조차 기능하지 못한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계속해서 싹을 쳐낸다. 그 때마다 시청자는 무력해진다. 동시에 분노 게이지는 상승한다.

복수의 이중나선 : "착한 놈만 복수하냐? 나쁜 놈도 복수한다"

24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월화드라마 <추적자>제작발표회에서 강동윤의 대선캠프 비서실장 신혜라 역의 배우 장신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마지막 특징은 하나의 극 안에 두 개 이상의 복수가 얽히고설켰다는 것이다. <추적자>에는 딸을 죽인 자를 향한 백홍석의 복수 이외에 신혜라(장신영 분)의 복수가 있다. 혜라의 그것은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음으로 내몬 한오그룹 및 정의를 지키지 않은 세상에 대한 복수다.

<유령>또한 김우현(박기영)의 복수와 팬텀 조현민의 복수가 공존한다. 팬텀 조현민의 목표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게 한 작은아버지(명계남 분)를 같은 방식으로 파멸시키는 것이다. <각시탈>에서도 착한 일본인의 전형으로 나오던 슌지(박기웅 분)는 형을 죽인 각시탈에게 복수하고자 일본 경찰이 되었다.

이전의 복수드라마에서는 복수를 하는 대상과 당하는 대상이 각각 피해자와 가해자로 양분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극에서는 가해자도 어떤 측면에서 피해자가 된다. 이중 복수는 스토리에 힘을 실어준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공감도 또한 높아진다. 아무리 악행을 일삼는 악인이지만, '악마가 되기까지 저 사람도 사연이 있었구나' 하게 되는 식이다.

27일 오후 경기도 수원 KBS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수목드라마 <각시탈>현장공개 및 기자간담회에서 기무라 슌지 역의 배우 박기웅이 총을 겨누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악마의 범죄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악마의 분노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된다. 복수극의 기본이 시청자의 공감능력을 일깨우는 것이란 측면에서, 여러 군데에 공감할 만한 장치를 만드는 것은 복수극으로서 흥할 요소다.

우리는 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는 복수가 끝나지 않으리란 걸. 하지만 아무리 울화통이 터진다고 해도 우리는 본다. 1999년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를 따라 "당신 부숴버릴거야"를 외쳤다. 1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는 TV를 보며 분노한다.

주인공의 복수는 그때보다 치밀해졌고, 동시에 무력해졌다. 복수극은 13년 동안 진화했다. 그러나 복수극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 '복수할 일'이 없어지지 않는 한.

22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유령>제작발표회에서 사이버수사대의 메인 서버 김우현 역의 배우 소지섭과 세강증권 대표 조현민 역의 배우 엄기준이 커플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비평 변두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령 추적자 각시탈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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