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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정체 들킨 주원, 누가 가면이고 누가 진짜지?

[드라마리뷰] 이강토의 고뇌에서 '배트맨'을 떠올리다

12.07.26 09:48최종업데이트12.07.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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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시탈> 형 이강산의 죽음으로 각시탈을 계승하는 이강토(주원). 형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이강토는 '그림자'에 불과한 각시탈을 계승할 일도 없다. ⓒ KBS


강도가 스타킹을 뒤집어쓰거나 복면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맨얼굴로 돈을 빼앗다가는 목격자, 혹은 CCTV에 덜미를 잡힐 걸 우려해서다. 스타킹 혹은 복면은 강도의 맨얼굴을 가려주기 위한 가면이 된다. 가면은 진짜 정체성을 가려주기 위한 가짜 정체성으로 작용한다.

클라크가 안경을 쓴 신문기자로 위장하는 건 진짜 실체인 슈퍼맨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이고, 피터 파커가 쫄쫄이 복장으로 공중을 활공하는 것 역시 스파이더맨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그림자를 뒤집어쓰게 만든 가족주의

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 속 이강토(주원 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강토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인 '애국지사 히어로'라는 맨얼굴을 가리기 위해 각시탈을 쓴다. 그런데 이강토가 각시탈을 쓰면서부터 두 종류의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원래 이강토는 각시탈이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친일파였다. 칼 융의 정신분석으로 보면, 각시탈을 뒤집어쓰기 전 이강토에게 각시탈이라는 아이콘은 '그림자'다. 일본 제국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패망한 조선의 얼치기 영웅이자 동시에 이강토의 정체성과는 정반대에 자리 잡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던 이강토가 각시탈이라는 그림자를 뒤집어쓴다. 각시탈의 정체가 친형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바보인 줄만 알았던 친형 이강산(신현준 분)의 유고를 받들어 각시탈을 계승하는 이강토는, 이전에는 혐오하던 각시탈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활약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걸림돌, 혹은 악당에 불과하던 각시탈을 쓴다는 건 '가족주의' 덕이다. 만일 이강산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었다면 이강토는 예전 그대로 친일파의 삶을 사는 건 물론이요, 그림자인 각시탈을 쓰고 애국심을 발휘할 타당한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초반에 나타나는 '가족주의'는 이강토가 그토록 혐오하던 그림자를 뒤집어쓰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림자를 뒤집어쓰는 이강토의 아이러니는 '가족주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 <각시탈> 하지만 이강토는 자신이 애국지사라는 걸 숨기고 악독한 친일 앞잡이 사토 히로시 역할을 해야 한다. 가면과 정체성이 뒤바뀌는 셈이다. ⓒ KBS


가면과 정체성이 뒤바뀌다

이강토의 아이러니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각시탈을 쓰면서부터 정체성이 뒤바뀌기 시작하는 역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강토의 몸이 대변하는 정체성은 '사토 히로시'다. 사토 히로시는 결코 조선인에게 환영받는 인물이 아니다. 뼛속까지 친일분자이기 때문이다.

25일 방송에서 오목단(진세연 분)은 과거 자신이 사모하던 첫사랑의 도련님이 다름 아닌 사토 히로시임을 알게 되자 경악한다. 그 옛날 추억 속의 도련님과 지금의 사토 히로시가 같은 인물이 아닐 것이라고 되뇐다. 각시탈이 도련님이면 도련님이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강토가 도련님이 아니라는 현실 부정이 발생한다.

경악에 가득 찬 오목단의 절규는 이강토와 각시탈의 정체성이 어느덧 뒤바뀌어 있다는 걸 반증했다. 이강토에게 있어 각시탈은 어디까지나 애국지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지 자신의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덧 각시탈은 이강토의 진짜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이강토가 친일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진짜 이강토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이강토의 진짜 몸, 사토 히로시는 가면이 되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애국지사라는 이강토의 정체성을 일본인이 아는 날에는 더 이상의 구국 활동은 물 건너갈 뿐만 아니라 목숨마저 위협받는다. 이 때문에라도, 자신이 각시탈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서라도 이강토는 사토 히로시라는 더욱 악독한 일본인 행세를 해야만 한다.

아이러니 아닌가? 가면에 불과하던 각시탈이 이강토의 진면목을 알리는 정체성으로 남고 정작 자신의 몸뚱아리는 사토 히로시라는 가면으로 살아야만 하는, 가면과 정체성의 역전 현상 말이다. 이러한 가면과 정체성이 뒤바뀌는 역설은 비단 이강토만의 고뇌는 아니다.

▲ <다크 나이트 라이즈> 브루스 웨인 회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회장이기보다는 배트맨으로 여긴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브루스 웨인은 기업을 경영하는 건 뒷전에 둔 채 배트맨이라는 자경단에 푹 빠져 있다. 밤에 잠들지 못하고 배트맨으로 돌아다닌 덕에 낮에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브루스 웨인 역시 이강토처럼 정체성과 가면의 역설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각시탈>로 돌아가 보자. 이전에는 이강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던 오목단은 부상당한 각시탈을 벗긴 이강토의 맨얼굴을 보고 나서야 이강토의 참모습이 친일파 앞잡이가 아닌 걸 깨닫는다. 각시탈이라는 가면을 통해서야 이강토가 자신의 첫사랑 도련님임을 자각하게 된다. 각시탈이라는 가면이 이강토라는 정체성을 대변하는 역전현상은 <각시탈>과 <다크 나이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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