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원에 모든 음식 '무한리필', 이런 식당 보셨나요?

[쌍용차, 이제 상복을 벗자②] 수습기자의 '희망식당' 도우미 체험기

등록 2012.05.13 10:52수정 2012.05.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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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2일 비극이 시작됐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갔지만 공권력은 77일 만에 이들을 짓밟았다. 3년이 지난 지금, 쫓겨난 노동자들은 상복을 입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서있다. 22명이 사망했다. <오마이뉴스> 쌍용차 옥쇄파업 3년을 맞이해 사회적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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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하루 기자는 희망식당에서 오전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방 싱크대에서 서서 설거지를 했다. 그릇이 쌓일 때마다 허리가 아파 '멘붕'이 왔지만 꾹 참고 버텼다. ⓒ 강민수


"일머리가 이렇게 없어서야, 계속 일할 수 있겠어요? 이런 식이면 쫓아낼 겁니다."

해고가 목전이다. 설거지가 늦어지자 사장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일일 도우미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이다. 체험 기사도 써야 하는데, 해고되면 기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선배들이 밥 먹으러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 전에 쫓겨난다면 죽도록 '갈굼'을 당할 것이다. 수습기자가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머릿속에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난 6일 서울 동작구 상도역 1번 출구 앞 희망식당 '하루'(이하 희망식당). 스무 평 남짓한 식당에 야외까지 합쳐 테이블이 9개 펴졌다. 메뉴는 보쌈정식이다. 오이피클과 김치, 쌈장, 마늘, 상추와 깻잎, 공깃밥, 된장찌개가 기본 상차림이다. 한 번에 나가는 그릇만 해도 수십 개인데 테이블 회전까지 빠르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제주도산 흑돼지 수육이 먹음직스럽게 썰려 나갈수록, 싱크대 앞에 선 '설거지 노예'의 얼굴에도 유전처럼 기름이 솟구친다.

희망식당의 모든 음식은 '무한리필'이다. 보쌈까지 리필해주다니…. 그래서 설거지는 더 쌓였다. 안주가 필요한 손님에게는 계란말이와 계란찜을, 채식하는 손님에게는 사장이 직접 기른 두릅나물을 내놓는다. 줄줄이 주방으로 들어오는 빈 그릇을 보며 '이렇게 장사하는 데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릇이 쌓일수록 '멘붕(멘탈 붕괴)'도 왔다. '잘리면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식당의 영업 방침을 원망했다.

희망식당은 김정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부인이 하는 실내 포장마차를 빌려 운영된다. 포장마차가 쉬는 일요일 하루를 빌려 영업한다. 지난 3월 11일 시작해 이날까지 아홉 번째 문을 열었다. 밥값은 1인당 5천 원. 하지만 손님이 더 내고 싶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술은 직접 사오는 한 병만 마실 수 있다. 식당의 수입은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기부될 예정이다. 오는 14일, 지하철 6호선 상수역 근처에서 매주 월요일만 영업하는 희망식당 2호점이 문을 연다.

희망식당의 사장은 블로거 '오후에'씨는 손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했다. 하지만 매출이 올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사장은 손님들에게 "싸고 맛있게 먹고 가는 감사한 마음만큼 '해고는 나쁘다'라는 글을 SNS, 블로그, 카페에 올려달라"라고 말했다. 사실 식당 운영을 위해 시장을 보고, 매출을 관리하는 '오후에'씨 진짜 사장이 아니다. 그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희망식당처럼 그때만 사장이 됐다가 평일이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다.

"해고는 나쁘다고 누리집에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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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의 주방장 신동기씨 주방장 신동기씨는 "2010년 겨울,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아찔한 기억을 떠 올렸다. 쌍용자동차 희망텐트에서 한 번에 곰탕 1300인 분을 끓인 능력 때문에 희망식당에서 일하게 됐다. ⓒ 강민수

숨도 쉬기 어렵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뜸해지자 그제야 식당을 둘러보았다. 놀랐다. 정신없이 설거지만 해서 주방장이 누군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의 손길'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덩치 큰 동네 형님이 서 있었다. 그는 소도둑 같은 큼직한 손으로 돼지 덩어리를 먹기 좋게 썰고 그릇에 담았다. 공장에서 기계를 다뤄야 할 손 같았다.

그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신동기(35)씨였다. 2002년 4월 쌍용차 평택공장에 입사했다 2009년 12월 징계 해고됐다. 신씨는 지난해 12월 쌍용차 평택공장 앞 희망텐트에서 곰탕 천 삼백인 분을 끓였다. 희망식당이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신씨에게 주방장 제의가 왔다.

"먹을 게 필요해 같이 만들어 먹다 보니 제가 나서게 됐어요. 나이도 제일 어리고. 허허."

그는 "퇴직 후 고향에 내려가 가든(정원식 음식점)을 여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회사 측은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2646명의 사람들을 정리해고, 무급휴직, 징계 해고했다. 그 명단에 신씨가 포함됐다. 신씨는 평일에는 평택항에서 뱃일을 한다. 화물을 선적하거나 부둣가에서 힘쓰는 일을 한다. 한 마디로 일용직이다. 일하는 날보다 일이 없는 날이 더 많다. 생활비가 없어 초등학생 자녀 3명의 보험까지 해지해야 했다.

신씨는 "2010년 겨울,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아찔한 기억을 떠올렸다. 대신 희망텐트에서 밥을 만들다 이제는 희망식당으로 옮겨왔다. 그에게 희망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 일요일은 남다르다. 신씨는 "다 먹고살려고 일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사람들과 밥을 나누는 일이 이제는 나에겐 뿌듯한 일"이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힘들다고 떼썼던 것만 같아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끝이 없는 설거지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던 '멘붕' 상태에서 벗어나 머리가 맑아졌다. 주방장을 만나고 나니 한 사람이라도 더 밥을 퍼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닦은 그릇이, 내가 담은 밥 한 그릇이 해고노동자에게, 그리고 손님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손님이 더 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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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은 6일 메뉴로 보쌈정식을 정했다. 상추, 깻잎, 김치, 마늘, 쌈장, 보쌈, 된장찌개, 공깃잡, 오이피클까지. 손님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상차림은 더더욱 늘어난다. 여기에 모든 음식은 무한리필이다. ⓒ 희망식당


이날 식당의 일일 호스트로 일한 박인해(23, 경기 성남·대학생)씨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집회에서 같이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제가 나눠 주는 밥을 먹는 데서 동질감을 느꼈다"며 "손님이 더 달라고 하면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박씨는 "해고된 노동자들은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분들인데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며 "희망식당이 없어지는 날까지 응원하겠다"고 파이팅을 외쳤다.

햇살 좋은 5월의 일요일이라 가족 단위 손님이 제법 눈에 띄었다. 딸을 데리고 온 박신형(33, 서울 도봉)씨는 "밥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데 함께 나누어야 할 일자리는 곧 밥이다"며 "해고 노동자가 밥을 나눠주니 아이러니하지만 감동이다"고 말했다. 박씨는 "오늘 잘 먹은 만큼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혼자 식당을 찾은 이영훈(27, 서울 동작)씨는 자취생이라고 한다. 식당 근처에 있는 중앙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저녁 밥 먹을 데를 찾아 희망식당으로 들어온 것. 이씨는 연신 밥을 씹으며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은 취업을 해도 딱히 답 없다는 것 같다"며 "하지만 희망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불안을 잊는다. 미안할 정도로 많은 밥, 맛있는 음식에 감동받았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손님들의 응원까지 듣고 난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그릇이 손에 착 달라붙었다. 요령이 생기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손님이 뜸해지면 조바심까지 났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가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다. 어느덧 밖은 어둑해지고 테이블은 저녁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싱크대도 다시 빈 그릇들로 꽉 찼다.

25kg의 돼지고기와 13kg의 쌀, 희망의 밥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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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식당 하루 희망식당은 6일 하루동안 25Kg의 제주산 돼지고기와 13Kg의 쌀을 15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 강민수


오후 8시쯤, 주방에서 신씨가 "고기가 다 떨어졌다"며 아쉬워했다. '오후에'씨는 "오늘 영업 여기까지"라고 외쳤다. 10시간을 찍은 설거지도 끝을 보였다. 하루 동안 25kg의 제주도산 돼지고기와 13kg의 밥을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나눴다. 이날 매출액은 개점 이후 최고치였다.

'이게 다 기자님이 열심히 설거지한 덕분'이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말씀은 없었다. 다만 사장은 "셔터를 내리라"고 했다. 덜커덩거리는 셔터를 내리자 식당 입구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밥을 구하다가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을 희망으로…'

내일이면 희망식당은 '실내포장마차'로 바뀐다. 하지만 일요일이 되면 다시 해고 노동자가 식당의 문을 연다. 억울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있는 한 누군가는 이 식당을 계속 지킬 것이다. 손님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손님들과 희망을 외칠 것이다. 그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스물두 명이 숨졌고, 재능교육 사태가 1600일 지나 철야기도회를 벌였다. K2코리아의 노동자들은 공장 해외 이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판이다. 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서로 희망을 나누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희망식당은 그렇게 벼랑 끝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고자 한다. '설거지 노예'가 아닌 손님으로 다시 희망식당을 찾아가야겠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쓸 것이다. "해고는 나쁘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희망식당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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