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처럼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걷다

[이란 여행기70] 테헤란 근교 올리브 농장

등록 2012.05.10 16:20수정 2012.05.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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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하룻밤 자고 닭들에게 난조각을 나눠주고 있는 작은 애.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은 사다페의 남편과 농장 일꾼이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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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사다페가 우리에게 대접한 음식들. 계란 프라이와 올리브피클, 술과 난, 과일 등이었다. 너무 맛잇어서 바닥이 보일때까지 계속 먹었다. ⓒ 김은주


마슐레에서 우리 일행을 초대해 풍성하게 음식을 대접했던 새댁 사다페가 이번에는 테헤란 근교에 있는 자신의 농장으로 초대했습니다. 사다페는 마슐레에도 집이 있고, 테헤란 근교에 농장도 갖고 있었습니다.

토찰산에서 내려와 이란젊은이들의 거리인 타즈리쉬 광장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사다페네 집에 가져갈 선물을 구입했습니다. 이란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에서 케잌을 샀습니다. 케잌을 조심스럽게 들고 지하철을 두 번이 갈아타고 테헤란 외곽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넓은 들판이 보였습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도 눈에 띄었습니다.


사다페와 남편은 역사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란인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그녀는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 모두에게 정말 반가운 지인을 만난 것처럼 다정하게 인사했습니다.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지난번 마슐레에서 딱 한 번 본 사람이지만 그녀가 워낙 친근하게 대하니까 나 또한 정말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다페네 농장은 정말 컸습니다. 영화 '남겨진 나날'에서 주인공 집사가 일하던 그 유명한 저택처럼 높은 담장이 길게 뻗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담장이 오직 저택과 정원을 위한 담장이었다면 사다페네 담장은 밭을 경계 짓기 위해 만든 담장이었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심어진 몇 천 평의 땅은 모두 담장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밭에 담장을 두르는 경우는 없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보니까 사다페네 농장 뿐 아니라 이 지역의 다른 밭들도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커다란 철문을 들어서자 갑자기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 사나운 놈들 같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줄을 끊고 달려와 다리를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로 짖어 대서 나름 살짝 겁도 났는데 다음날 밝았을 때 보니까 철망으로 가려진 우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사나운 개들 옆에 작은 개 집이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개들은 작고 조용한 개들이었으며 줄에 묶어놓지도 않았습니다. 이 녀석들은 지나치게 소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다가가면 얼른 자기 집으로 도망가고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집에서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잔득 겁을 먹고 소심했습니다. 같은 개들인데도 한 무리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또 다른 개들은 너무 소심했습니다.

사다페네 농장엔 작은 집이 세 채 있었습니다. 한 채는 우리처럼 손님을 위한 집이고 다른 한 채는 사다페 부부가 가끔 기거하는 곳이고, 나머지는 농장을 돌보는 아프가니스탄 부부가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부부의 집에는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라 수영장은 빗물을 받아두는 저장고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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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올리브농장에서 냉이를 캐고있는 작은 애. 작은 애는 그날 저녁 자신이 캔 냉이로 째개를 끓였는데, 정말 맛있었다. ⓒ 김은주



손님을 위한 작은 집에 들어갔을 때 이미 손님이 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구경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노동자들과 사다페가 마슐레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함께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은 점잖아 보이고 옷차림도 말끔했습니다. 그러나 이란인들처럼 적극적으로 사교적인 느낌은 없었습니다.

한편 마슐레에서 데려온 사람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인데 사다페 부부는 이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서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왔기에 좀 당황했는지 한동안 풀이 죽어 있다가 마침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낯선 곳이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큰 어른이 그러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는 몸만 어른일 뿐 마음은 아이와 다름없었는데 아마도 사다페 부부는 그의 이런 순수함을 좋아하는 듯 했습니다.

이란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다페네 농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사댜페 남편은 우는 남자를 밖으로 데리고 가서 모닥불을 피우며 놀아주고 사다페는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저녁을 분명 먹고 왔음에도 사다페가 만들어준 계란 프라이도 너무 맛있고, 농장에서 키운 걸로 만든 올리브 절임도 처음 먹어본 맛이지만 먹을 만했습니다. 또 사다페는 자신들은 먹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술도 대접했습니다. 예전에 마슐레에서처럼 사댜페는 정성을 다해 음식들을 내왔습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세를 많이 져도 되는가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작은 애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작은 애는 뭔가 보답하고픈 마음이 절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다가 마침내 보답할 길을 찾아낸 모양입니다.

사다페에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초대에 대한 보답으로 춤과 노래를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담비의 의자춤을 보여주고, 아리랑을 불러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무언가 보답하고파 하는 하나의 순수한 마음이 참 기특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서 농장을 둘러봤습니다. 공기가 참 시원했습니다. 꼭 봄날같이 상쾌했습니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신선했습니다. 그런 바람을 맞으며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올리브나무 사이를 걸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테헤란 #올리브농장 #올리브피클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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