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논란' 김용민,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김용민을 위한 변] <나꼼수>, SNS, 진중권의 언어혁명

등록 2012.04.09 22:00수정 2012.04.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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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 "나꼼수를 왜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린 것을 많은 사람은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는 우리 정치사에 언어 혁명을 가져왔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 언어 문화는 매우 이중적이었다. 구어체와 문어체가 엄청나게 다르며 공석이냐, 사석이냐에 따라 매우 다른 규범이 적용된다.

<나꼼수>는 이 반동적인 구분을 파괴하였다. 친구 간의 술자리 말투로 진행되는 시사평론을 수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엿들을" 수 있게 하였는데, 항상 공석에서 딱딱하게 다루어왔던 소재들이 사적 유희의 대상으로, 구어체로 다루어지는 카타르시스를 군중에게 제공하였다. 현실계에 더 근접할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상징계에 나타난 것이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정치인도 수십만 명이 듣는 줄 알면서도 <나꼼수>에 출연하기만 하면 격조고, 위신이고 다 집어치우고 F4 말투를 따라가기 바빴고, 이런 현상은 녹음장 밖으로 급격히 확산되어 갔다.

<나꼼수>-SNS, 우리나라 언어 문화에서 같이 다루어져 할 중요 사건

물론 공적 대화와 사적 대화의 규범 차이를 파괴하는 현상은 SNS도 한몫하였다. 오프라인에서도 말을 감성 트윗 날리듯이 하게 된 정치인들을 보라. <나꼼수>와 SNS는 우리나라 언어 문화에서 같이 다루어져 할 중요한 사건이다. 우리나라 지식인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역사 속에 성공한 민중 혁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왕의 목을 벤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성공에 근접했던 민중혁명 '87항쟁'에도 항상 '반쪽의 승리'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서울역 회군이야말로 기존 위계질서가 요구하는 예의를 준수하여,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근성 때문에 혁명이 요구하는 결단성을 자기검열한 대표적 사례다.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을 승인받고자 하는 근성에 실존주의가 결별을 선언했지만, 우리는 아직 덜 실존적인가보다. 한국 역사가 '미완의 혁명'을 반복하는 이유 즉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이유이면서도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의 자기검열된 언어라고 생각한다. 왕의 목을 벤 적이 없는 이유는 아무도 '왕의 목을 베자'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의 목을 벤 김재규도 정작 '왕의 목을 베자'는 말을 하지는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혁명과 전혀 관계없이 혼자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미국 베트남전 시대에 한 병역거부자가 "나에게 강제집총을 시킨다면 나의 첫 과녁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미국대법원은 버젓이 '대통령협박죄'가 있음에도 무죄판결을 내렸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에서 혁명이 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 정도의 민간사찰이 발각되면 대통령이 자진하야할 정도의 민주주의는 이루어 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분노의 분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가 있다. 효순이 미선이가 장갑차에 깔려죽은 상황에서 거의 말초적으로 나오는 반응 'Fucking U.S.A.'가 대표적인 예이다. 2MB18NOMA, 원주시 시보에 이명박XXX를 그려넣은 만화가, G20쥐그림 모두 자신의 행복여탈권을 쥔 권력자에 대한 증오감을 자연스럽게 분출한 사건이다.


김용민의 '막말' 발언, 진정성 있는 명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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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공릉동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김용민 심판이 아닌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돼야 한다"며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남소연


김용민의 여러 발언들 "럼즈펠드, 라이스를 강간하라", "자유의 여신상의 XX에 미사일을 꽂아넣어라" 등등도 아부그라이브의 미군 성폭행 및 미국대외정책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물론 그 표현도 여성을 비하해서는 아니되며 '강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성성에 대한 극단의 공격이다. 강용석의 아나운서 조롱이 똑같이 공인에 대한 조롱이면서도 최효종의 국회의원 조롱과 다른 것은 여성 아나운서의 여성성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용민 발언은 다르다. 가장 쉬운 반론은 럼즈펠드는 남자고, 김용민은 세계권력에 대한 분노를 '씨발 라이스, 씨발 럼스펠드'라는 대신 '라이스와 럼스펠드를 강간하자'로 예의바르게 풀어서 쓴 것뿐이라는 것이지만 그 반론은 째째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용민이 럼즈펠드를 빼고 '라이스를 강간하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황당무계한 과장법이 명제의 진정성을 부인하고 있다. 강용석의 명제는 '실제로 여성 아나운서의 다수가 몸을 팔아 승진한다'는 것이지만, 김용민의 명제는 '실제로 럼스펠드, 라이스를 강간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모든 언사(communicative action)는 항상 언사가 담은 명제가 진실이라는 진정성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용민 명제에는 그런 진정성 주장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씨의 구분에 따르자면 '씨발, 럼스펠드 라이스' 정도의 감정 표명이 된다. '대통령에게 총을 쏘겠다'라는 반전시위자의 말이 적시한 '총살'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공격이며, 범죄이면서도 이 말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역시 '대통령을 총살하는 것이 옳다'라는 진정성 있는 명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사기꾼(Hustler) 대 팔웰(Falwell) 사건에서 래리 플린트가 우리나라로 치면 김수환 추기경 정도 되는 사람이 어머니와 성교를 했다는 허구 스토리를 게재하고도 면책된 이유를 상기해보자. 그렇기 때문에 '라이스를 강간하자'는 '씨발, 라이스' 이상의 여성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대부분 김용민 독설로 지적되는 것들이 다 이런 식이다. 분노의 표출이지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호명하는 사실적시가 아니다.

김용민, 국민의 분노를 과장법을 빌려 대신 표출한 것뿐
나는 진중권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이 진중권을 싫어하는 이유로, 진중권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꼼수> 못지 않게 말버릇이 없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나꼼수>가 나오기 10년 전부터 역시 보통 지식인이 지키는 말의 규범을 모두 일탈하여 말의 형식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고, 우리 사회에서의 은폐된 투쟁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물론 김어준의 <딴지일보>도 그 즈음에 시작되었다. 지금 진중권을 대리하여 우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가 모욕죄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있는데, 김용민도 곧 대리하게 되지 않을까. 이들은 이미 우리 사회를 혁명에 한발 더 다가가도록 한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는 표현의 자유 이야기가 아니다. 즉 김용민이 '대통령을 쏴죽이자'는 말을 했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퇴 여부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닌데 김용민이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을 쏴죽이자'라는 발언을 했다면 사퇴하는 것이 정당할 지 모른다. 그러나 말이 시사평론가지 거의 반 개그맨으로서 활동했던 김용민에게 이제와서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는 국민의 분노를 과장법을 빌어 대신 표출한 것뿐이다.

원색적인 언어로 점철된 김용민 과거는 지금의 <나꼼수> 성공의 토양이었다. 김용민이 이 발언 때문에 사퇴한다는 것은 <나꼼수>가 시작한 언어혁명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결국 김어준이 말한 '젊은이'의 진짜 혁명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언어혁명 없이 진짜 혁명 없다. 

P.S 개그맨 김용민, 과거에 속시원하게 말 잘해줘서 고맙다. 정치인 김용민, 이제 같은 말도 절대로 똑같이 표현하지는 마라.
#김용민 #나꼼수 #진중권 #언어혁명 #후보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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