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 매수?...곽노현 "이제 질린다"

[곽노현 교육감 2심 결심 공판] 새로 드러난 사실 '1억6천여만 원 시민부조'

등록 2012.04.04 18:11수정 2012.04.04 18:20
0
원고료로 응원
"돈 준 사람들이 받은 사람보다 형량이 가볍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매수할 후보가 이미 없는데, 후보자 사후 매수죄가 성립됩니까?"

지난 3일 서초동 법원에서는 '대한민국 교육의 운명'을 가름할 중요한 재판이 열렸다. 냉정한 가운데에서도 시종 치열하게 전개된 법정공방이었다. 법원 정문 앞에서는 '한국교육의 암세포 곽노현을 즉각 구속하라'는 무시무시한 팻말을 든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모든 수구 세력의 열망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그 반대로 302호 법정(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동오)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시민 가슴 속에는 곽노현 교육감을 반드시 살려내 진보교육을 지켜야 한다는 결의가 가득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상대후보를 매수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벌금 3천만 원을 선고받은 곽 교육감에 대한 2심 결심공판이 열린 날의 풍경이다. 

'3천만 원'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교육감직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 불안한 피고인과 변호인, 방청객은 무죄의 염원으로, 반대편에는 수구 세력의 뜻대로 이번에는 반드시 구속형을 얻어내 즉시 교육감직에서 끌어내고 말겠다는 검찰의 오기가 팽팽히 맞부딪혔다. 법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무죄 염원'과 '구속오기'로 팽팽한 긴장감 감도는 법정

a

후보자 매수 사건으로 구속된 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되어 업무에 복귀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 권우성


검찰은 1심 구형량과 마찬가지로 곽 교육감에게 징역 4년, 박명기 피고인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2억(1심 형량과 같음), 강경선 교수에게 징역 1년(1심 형량 2천만 원)을 확정했다. 직전 피고인신문에서 검찰은,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사퇴 대가로 금전과 직위를 제공하기로 한 양측 선거캠프 사람들 간의 합의를 사전에 알았음에 틀림없다는 전제로 반복질문을 퍼부었다.

결국, 곽 교육감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이젠 질린다"고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지만 검찰은 1심 때와 다른 사실을 아무것도 끌어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2심 공판의 전 과정이 거의 그랬다.


검찰의 이날 논고는 전혀 새로운 논리 전개 없이, 자신들이 '화성인판결'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던 1심 판결에 대한 항의문을 방불케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재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쟁점, 즉 곽 교육감이 후보단일화 합의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 2011년 2월부터 4월까지 박 교수에게 전달된 2억 원과 그 후 박 교수가 서울시 교육청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된 것에 대가성이 있느냐의 여부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이중성을 보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사전에 합의사실을 알았느냐의 인식 여부는 범죄성립 요건이 아니며 대가성 판단 여부, 죄질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라는 1심 재판부의 전제를 존중하면서도, 이날 마지막 논고에서마저도 '더 중요한' 대가성을 입증하려는 노력보다는, 곽 교육감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부차적'인 사안을 입증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검찰의 태도다.

그러면서 내세운 증거라는 것이, 곽 교육감과 40년 지기인 이아무개가 단일화 합의사실을 보고하면서 자세한 합의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얄팍한 추측이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인물의 증언들뿐이었다. 결국, 검찰이 초점을 맞춘 것은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직위 제공'의 혐의입증과 '양형 불균형'이다. 왜, 곽 교육감과 강 교수가 박 교수보다 적은 벌을 받느냐는 투정인 것이다. 

좋은 건 삼키고 싫은 건 내뱉는 '화성인 판결'

과연 단일화 합의내용의 사전인지 여부가 검찰과 1심 재판부의 해석대로 단순히 '양형의 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일까. 이어진 변호인 최후변론에서 박재영 변호사는 사전인지 여부는 곽 교육감에게 씌워진 '후보자 사후매수죄'의 구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논증했다.

박 변호사는 "절도행위가 없는 절도죄가 없고 사기행위가 없는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후보자 매수죄는 매수할 후보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제하고 "2011년 2월부터 4월까지 박 교수는 후보자 지위가 아니었고 그런 박 교수에게 2억 원을 준 것이 후보매수행위일 리 없기 때문에 세 사람에게는 사후매수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박 변호사는 입법자의 실수로 정리되지 못한 '불구 법조항' 공직자선거법 232조 2항 1호(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하는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가 그나마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후보자이었던 자'라는 문구를 제대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변론 요지는 '후보자이었던 자'란 대가를 받고 사퇴하기로 합의하고 사퇴한 사람이 6개월 공소시효기간 동안 유지하는 신분이지, 이번 사건처럼 곽 교육감과 아무런 직접합의없이 사퇴한 사람이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곽 교육감이 박 교수의 후보사퇴 전에 합의내용을 추인한 경우라도 박 교수는 법에서 말하는 "후보자이었던 자"의 지위를 유지한다. 측근인 이아무개가 합의한 협상내용을 곽 교육감이 몰랐더라도 '승계적 공동정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아무개도 합의 당시 "돈을 곽 교육감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에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곽 교육감이 "측근의 잘못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고 해서 범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간과하고 '후보자이었던 자'를 문구대로 좁게 해석한 1심 재판부에 아쉬움을 표했다.

'후보자이었던 자'란 법조문의 유효성

대가성에 대해서도 박 변호사는 "대가성이 있다면 금액의 다과에 상관없이 유죄"라는 전제 아래 곽 교육감이 사태를 파악하기 수개월 전, 돈을 준 9개월 전에 이미 후보를 사퇴한 박 교수에게 어떤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를 물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대가성과 고의성 등 주관적 요소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두 사람의 관계, 금액의 다과 등 객관적인 요소들만 들먹이며 정황상 곽 교육감이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심 재판부 역시, 형사재판에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음에도 피고인들이 '선의의 부조'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을 뼈아프게 지적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은 합의내용을 사전에 몰랐을 뿐 아니라, 선거가 끝난 한참 후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후보자 사퇴 대가가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박 교수를 부조하기 위한 선의로 돈을 주었다는 주장에만 집중해 온 감이 있다. 그것이 세 사람간 관계가 거액을 주고 받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점, 어쨌든 박 교수의 후보사퇴로 곽 교수가 당선이라는 이익을 얻지 않았느냐는 점 등 일반 상식을 기반으로 한 재판부의 완강한 선입견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되고 있는 판이다. 법률해석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 박 변호사의 변론이 주목되는 이유다. 

재판부가 대가성의 한 요소로 파악하고, 검찰이 죄질이 나쁘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2억 원 조성 경위와 전달방법이 은밀했다는 사실도 들어있다. 이에 대해 곽 교육감은 마지막 피고인신문에서 "박 교수에게 돈을 준 것에 위법성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현금을 마련해 전달 한 것은 정보기관 사찰로 이런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공연한 오해를 빚을 것을 우려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곽 교육감도 정보기관의 사찰을 극도로 경계했었다는 것이다.

'사찰 두려움'으로 안 했던 '후보자 매수'

곽 교육감은 "선거 시작 때부터 당선을 확신했던 나는 교육감이 되면 교육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고, 그런 나를 사정기관들이 샅샅이 뒤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캠프사람에게 불법·위법·탈법은 물론 편법도 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었다"면서 최측근을 캠프 내 준법감시인으로 임명했던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교육감에 취임하고서도 휴대폰의 감이 떨어질 때마다 바꿨으며, 아예 가까운 인물들과의 대화 통화 자체를 최대한 삼갔다고 했다.  

또 곽 교육감이 2010년 6월 교육감 선거 때 시민으로부터 1억6천여만 원의 부조를 받은 사실도 이날 처음 밝혀졌다. 이미 자신의 선거빚 정리에 사용해서 없어진 돈이었지만 부인에게 박 교수 건을 상의하자 "잘 됐네. 운이 좋아 (시민에게서) 혜택을 받았는데, 우리가 안 받고 박 교수가 받은 걸로 하면 되겠네!" 해서 큰 위로가 됐다는 고백이었다.

2심을 3개월 안에 끝내야겠다는 재판부의 강력한 의지 덕분에 이날 결심공판은 한밤중인 1시 40분까지 강행됐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하여, 한시간 식사시간, 10분간씩 3~4차례 휴식시간 포함 총 12시간 가까운 강행군이었다. 선고 공판은 4월 17일 오전 10시 30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진실의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진실의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곽노현 #2심 #결심공판 #후보자매수 #선거법위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2. 2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3. 3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4. 4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5. 5 이러다 나라 거덜나는데... 윤 대통령, 11월 대비 안 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