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랑 타버린 집이 예쁜 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등록 2012.01.08 10:28수정 2012.01.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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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0일 큰형님 집이 다 타버렸습니다. ⓒ 김동수


지난해 10월 10일, 경남 김해로 걸려온 한 통의 급한 전화는 놀랍고 충격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큰 형님 집이 홀랑 타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아니 눈으로 보기 전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눈 앞에 허망하게 타버린 형님 집은 저를 망연자실하게 했습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합니다. 불났다는 수많은 뉴스를 보면서도 '또 불났네'라는 생각만 들뿐이었지만 살붙이 집이 불타버리자 불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 속으로 이끌어가는지 금세 알았습니다.


티끌모아 태산, 불우성금 1000만 원 이상 모여

하지만 형님은 불탄 자신 집보다 저를 더 걱정했습니다. 역시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형님네는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동생이 지은 축사 관사에서 두 달 이상을 지냈습니다. 그 집마저 없었다면 딱히 거처할 곳도 없었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집과 안에 있던 모든 가재도구가 다 타버렸는데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신앙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절대자에게 절대 의존하는 형님 가족을 보면서 하나님 존재를 더욱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분들이 한 몸이 되어 형님 가족을 도왔습니다. 옷가지를 가져다 주는 사람, 양식과 먹을거리를 손에 들고 왔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 푼 두 푼 불우이웃 성금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형님 말로는 500여만 원이라고 합니다.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시골 인심은 아직도 살아있었습니다. 우리 형제들도 한 푼 두 푼 모아보니 500여만원이 넘어 형님이 도움 받은 돈이 1천만원이 넘었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 사실이었습니다. 석 달 동안 타 다버린 집을 치우고, 기초를 놓고, 집을 지었습니다. 어제(7일) 드디어 집들이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도움을 주신 동네 분들을 위해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며 "돼지도 한 마리 잡으라"고 하셔서 돼지도 한 마리 잡았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언덕배기 집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돼지를 삶았습니다. 가마솥에 삶은 돼지 먹어 본 적 있나요. 도시에서 먹는 수육과는 비교를 할 수 없지요. 돼지 삶는 데 큰 아이와 막둥이는 빠지지 않습니다.

돼지 한 마리는 대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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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신 동네 분들을 대접한다며 돼지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큰 아이와 막둥이가 가마솥에 돼지를 삶는다고 나섰습니다. ⓒ 김동수


"아빠 돼지 삶는데 나도 불 지폈어요."
"네가 빠지는 곳이 어디 있니."
"이게 무슨 솥인지 아니?"
"몰라요?"
"가마솥이야. 옛날에는 이런 솥에 밥도 해 먹었다."
"압력밥솥은 없었어요?"
"없었지. 아빠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이 3학년쯤 됐을 거야. 밥도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할머니가 저녁밥을 할 때면 아빠가 불을 지피기도 했어. 갑자가 가마솥 밥이 먹고 싶다. 아무튼 돼지고기 맛있지?"
"예, 맛있어요."
"엄마가 아무리 맛있게 수육을 만들어도 이것만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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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을 맞으면서 가마솥에 삶은 돼지를 사람들이 한 점씩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바람이 찼지만 몇몇이 모여 돼지고기를 한 점씩 합니다. 갑자기 잔칫날 가마솥 옆에 앉아 어른들이 조금 떼어주는 돼지고기를 받아 먹기 위해 빙 둘러 앉았던 옛 추억이 떠 올랐습니다. 그 때는 돼지 고기 먹는 날이 설날과 추석 그리고 잔칫날이 아니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하게 고기를 먹다가 체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12시쯤 되니 동네분들이 형님 집 안에 가득 모였습니다. 이 분들이 떠나가면 또 다른 분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다들 집 잘 지었나고, 칭찬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우값이 폭락했다며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타박입니다. 역시 우리 동네분들 정치 의식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두고 말하는데 들리는 소리는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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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분들이 모여 새집에 들어온 형님네를 축하해주셨습니다 ⓒ 김동수


큰형님 집 마당에 서면 사천만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 전망 좋은 집이지요. 옛날 집은 태풍이 불면 흔들릴 정도로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는데 새집은 기초도 튼튼하게 지어 태풍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사천만을 바라보면 막힌 가슴도 뻥 뚤립니다. 갑자기 형님이 부럽습니다. 나는 언제 이런 집에 살아보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집은 30년도 넘은 재래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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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집 마당에서 바라본 사천만입니다. ⓒ 김동수


타버리 집을 다 들어내고 예쁜 집을 보고 어머니가 무엇보다 좋아하십니다. 큰 아들 집이 홀라당 타버렸을 때 큰 충격을 받으셨는데 이렇게 예쁜집을 다시 보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집이 다 타버렸을 때는 이 일을 우짜노 했는데. 이리 예쁜 집을 보니 이제사 마음이 놓인다."
"집이 따뜻하니까 좋지요."
"하모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만약 불이 밤에 났으면 니 형님과 형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대낮에 불이 나 다치지 않았다 아이가. 그리고 이제 집도 새로 지었으니 얼마나 좋노. 집 지을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와 봤다."
"그래 이제 좋은 집 지었으니 자주 들러 주무시면 더 좋겠네요."
"아서라 나는 니 동생 집이 아니면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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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형님 집입니다. 예쁘고 아담합니다. 형님 집에서는 사천만이 한 눈에 들어와 전망도 최고입니다. ⓒ 김동수


맞습니다. 우리 집에 오셔서 주무시는 일이 없습니다. 오로지 동생네에서 삽니다. 그러니 제수씨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석 달을 보내고 예쁘고, 좋은 집을 가진 큰 형님 가정이 올해는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도 한 푼 두 푼 도움을 주신 동네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큰형님 #집들이 #시골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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