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의 옛그림 설명... 참 살갑고 좋네

[서평]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 최북에 대한 새로운 조명

등록 2012.01.03 17:00수정 2012.01.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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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어떤 이가 산수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칠칠이는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산수화를 그려달라고 한 이가 괴이하게 여기면서 버럭 화를 내자, 그는 붓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종이 바깥이 모두 물이 아니오?'

최북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자기 마음에 들어 흡족한데도 돈을 적게 주기라도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욕설을 해대며 그림을 박박 찢어버렸다. 반면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데도 값을 후하게 쳐주면, 오히려 껄껄거리면서 그 사람을 문 바깥으로 떠밀고 나선 손가락질을 해대며 '그림 값도 모르는 녀석'이라고 웃었다."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에서


칠칠(七七)이 최북은 숱한 기행으로 유명한 화가다. 조선시대 화가들 중 최북만큼 기이한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 또 있을까?  '어느 해 태어나 어디서 주로 살다가 어느 해 혹은  몇 살에 죽었다'와 같은 정식적인 기록은 없고, 괴이하기까지 한 기행이 더욱 많은지라 '과연 정말 실재했던 인물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숱한 기행을 벌인 화가 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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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3원 3재 이야기> ⓒ 일송북

사실 이 일화보다 더욱 유명한 것은 최북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평생 애꾸눈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다.

지체 높은 한 양반이 최북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 했는데 인간 됨됨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그 양반이 눈꼴사나웠던 최북은 그림 그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자 그 양반이 최북을 겁박했다. 이에 최북은 송곳으로 제 눈을 찔러 스스로 애꾸눈이 되었단다. 그 후 그는 대장간에서 얻은 말굽으로 안경을 만들어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외에도 당시 화가들의 두둑한 후원자였던 한 왕족과 바둑을 두다가 그 왕족이 한 수 물러달라고 하자 "한 수 물러줬다간 1년이 지나도 바둑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하여 후원의 덕을 입지 못했다는 일화, 한 양반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해서 갔는데 문지가가 자신을 직장이라 소개하자 '하지도 않은 벼슬을 꾸며댈 바에야 이왕이면 정승이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라며 그대로 뒤돌아 와버렸다는 이야기 등 최북에 대한 일화는 끝이 없다.


"그의 이런 기행을 두고 남공철이나 이규상과 같은 사대부가 보는 눈과 같은 길을 걷는 화가 조희룡이 보는 시각의 사이에는 상당한 상거가 있다. 먼저 남공철은 '최북은 천성이 오만하여 남의 비위를 잘 맞추려 하지 않았다'하였으며, 이규상 역시 '최북의 성품은 날카로운 칼끝이나 불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뜻에 어긋남이 있으면 반드시 욕을 보이곤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망령된 독이어서 결코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남공철이나 이규상과는 달리 중인 출신의 화가 조희룡은 그들처럼 부정적이지 않다. '최북은 사람 됨됨이가 격앙스럽긴 하였으나, 웬만해서는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며, 작은 규범에 스스로 구속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사대부들이 오만한 성깔로 최북을 진단하고 있는데 반해, 조희룡은 되레 굽힐 줄 모르는 자기 소신쯤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숱한 일화들은 이러한 신분적 관점에서 눈높이를 맞추어 읽어내야 만이 진짜 속내를 살펴 볼 수 있다."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에서

우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3원 3재'를 꼽는다. 3원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이고, 3재는 겸재 정선·공재 윤두서·현재 심사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재 대신 관아재 조영석을 꼽기도 하나 정선과 조영석은 스승과 애제자 사이로 둘의 화풍이 비슷해 우리나라 초상화에 뚜렷한 획을 그은 공재 윤두서를 3재에 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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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화첩(보물 제527호) 중 <노상파안=노중상봉> 27.0×22.7㎝ 종이에 수묵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는 이들 '3원 3재'로 일컬어지는 여섯 화가에 칠칠이 최북을 더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7인의 이야기다. 저자는 <명성황후를 찾아서>, <배오개 상인>, <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조선의 읍성을 가다>, <경성상계> 등과 같은 책들을 쓴 소설가 박상하씨.

저자는 워낙 유명한 이름에 비해 그 삶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소설과 에세이 형식을 섞어 들려준다.

흔히 최북을 두고 '왕실의 광대가 되기를 거부한 아웃사이더' 정도로 표현한다. 재주를 아까워하며 주변 사람들이 도화서에라도 들어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것을 권했지만 그는 하루에 몇 말의 술을 마시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기행으로 거침없이 살았단다. 돈과 권력, 명예에 빌붙어 편안하게 사는 대신 그림 사줄 사람들 사이를 술과 함께 떠돌면서. 

대부분의 화가들이 중인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천민 출신인 그 스스로 시대의 기득권자들을 외면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의 거침없는 기행 그 상대 대부분은 양반 혹은 기득권자들이기 일쑤다. 때문일까. 그의 거침없는 기행은 기득권자들에 대한 조롱과 반항처럼 들려 언제나 남다른 즐거움으로 읽힌다.

"하지만 우리에게 <나의문화유산답사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술 사학자 유홍준 선생은 이와 크게 다른 평가를 내라고 있다. '가느다란 필획으로 풀잎을 그리더라도 마치 낚시 바늘이나 노끈처럼(힘이 있는) 형상이 되지 않는 것이 없는, (어느) 화가들의 (일반적인) 의장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는 당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런 평가에 값하는 실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북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 과장되었거나 부풀려졌다는 지적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나의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에서 해박하고 화려한 지적 편린을 뽐냈던 유홍준 선생의 반박은 조목조목 날이 서 있으면서도 침착한 것이었다. 예컨대 '최북의 유작들을 보면 뛰어난 작품은 아주 드물고, 게다가 지루한 느낌마저 드는 평범한 작품이라든가, '최북은 문인화가로서의 기품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그러한 분위기는 있는 위인도 아니었다'랄지, 또한 '최북에게는 그러한 정성도 가량도 작자의식도 없었던 모양이다'라고 덧붙이면서…."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에서

한사람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평가가 일치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북의 경우 그 차이가 유독 큰 것 같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한때 최북에 미쳐 살았던 그 소회를 밝히면서 최북에 대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 청장의 이와같은 평가를 조목조목 언급하고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 청장은 위와 같은 평가에 덧붙였단다. "최북은 스스로가 말했듯이 단지 호생관에 불과한, 다시 말해 붓으로 그려먹고 산다는 것이 화가라는 자부심이 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의 형태가 되고만 셈이다. 호생관 최북의 인생은 예술로써 빛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인으로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엇갈린 평가... 왜 저자는 최북에 집중했을까

그렇다면 최북이란 이름은 기행 때문에 유명한가. 예술이 앞서는 인물인가. 그를 대표하는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왜 쉽게 갈 수 있는 편안한 세월 대신 고단한 세월을 떠돌았을까. 저자의 말마따나(박스 기사 참고)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화가로 일컫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닐까. 책을 읽으며 나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산수화를 얼마나 잘 그렸던지 당시 그를 '최산수화'라고 부르며 열광하는 문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그가 남긴 일화 중 상당수가 당시 먹고 살만한 사람들과 그림을 두고 벌어지는 것임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많이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인간됨을 혹평했던 이규상과 남공철마저 최북의 그림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여기에 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천재화가 '칠칠이' 최북을 '3원3재'에 이어 덧대어 붙이기로 작정했다. 위대한 예술이란 저주받고 추방당한 가난한 영혼으로부터 창조되어진다는,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화가의 독특한 영혼을 그들과 함께 결합시키고 싶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는 '3원3재'가 아니라 마땅히 '3원3재1칠칠이'여야 한다는 나의 오래된 생각을 한사코 옮겨보기로 한 것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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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중 <기방난투> 28.2X35.6cm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 간송미술관


그가 남긴 기행 때문에 필자처럼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지극한 호기심의 대상인 최북에 대해 많은 부분을 썼지만,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는 무엇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7명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책이다. 3원 중 한사람인 신윤복 편 '기생들의 정보기 통과의례' 묘사는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한 기생의 정보기 통과의례(신고식)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전까지 기방에서 정보기 신고식을 치르는 기생의 은밀한 곳까지 함께 봤던 선비들이 우르르 기방 대문간으로 몰려나가 갓까지 망가질 정도로 싸우는 모습과 그 현장을 직접 보고 그린 듯한 신윤복의 <기방난투>에 대한 자연스런 설명. 아마도 이런 식으로 그림을 만난다면 두 번 다시 잊지 못하리라 싶을 정도로 그 묘사가 살갑고 생생하다.

덕분에 언제 어디서 이 그림을 봐도 그림 이름과 화가는 물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 우리 그림 보는 맛이 훨씬 맛깔스러워질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에서 다룬 그림들은 모두. 마치 그림을 그린 당시를 목격하는 듯 그림과 연관시켜 그 화가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들려주는 것,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ㅣ저자:박상하ㅣ일송북 출판사 ㅣ2011.11 ㅣ값:20,000


덧붙이는 글 <조선의 3원 3재 이야기>ㅣ저자:박상하ㅣ일송북 출판사 ㅣ2011.11 ㅣ값:20,000

조선의 3원3재 이야기

박상하 지음,
일송북, 2011

이 책의 다른 기사

'정'이 뱃속에 드는 거라고?

#최북(칠칠이) #호생관(최북) #신윤복 #기방난투 #3원 3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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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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