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에 사는 그 청년, 연쇄살인범이에요

[서평] 강풀의 <이웃 사람>(1~3권)

등록 2011.12.23 11:18수정 2011.12.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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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야산에 암매장된 트렁크에서 17세 여고생의 시체가 부패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열흘 전 실종신고가 접수된 원모양임을 밝혀냈습니다, 이로써 실종자 8명 중 3명이 시체로 발견되었고, 실종자가 살해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경찰은 이번 사건을 연쇄살인으로 확정짓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트렁크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원모양은 열흘전 실종신고가 되었으며…. - <이웃 사람>에서

서울 변두리 재건축 인가가 나기 직전의 강산빌라에 사는 여고생 원여선이 실종 10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은 피해자의 아랫집 101동에 사는 젊은 남자 류승혁이다. 그는 열흘 간격으로 사람을 납치해 살해한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신의 팔에 핏빛의 문신을 새기며. 하지만 그는 대담하게도 빌라 상가의 가방 가게에서 시체를 담을 트렁크를 사고, 인근 피자집에서 어김없이 피자를 시키곤 한다.


만화는 처음부터 같은 빌라에 사는, 그것도 피해자 바로 아래층에 사는 류승혁이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와 함께 소녀가 납치되어 살해되던 열흘 전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빌라 사람들은 재건축 문제 때문에 반상회를 해왔다. 며칠 후에 있을 반상회는 류승혁의 집에서 할 차례. 그것을 알리고자 반상회 총무인 수연이 엄마가 류승혁(살인범)에게 전화를 한 그 순간 그는 조금 전에 납치한 여선이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태연하게 통화를 하면서.

이웃의 관심만 있었더라도, 여선이는 살았다

이런 장면, 만화지만 참 섬뜩하다. 그리고 두렵다. 몰라서 그렇지, 나도 내 아이들도 언제 덥칠지 모르는 위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막연하게 아프다. 내가 무심히 흘려보내는 이 순간, 내 주변 누군가가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하게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만화는 이어 그날 범인이 들렀던 피자집과 가방 가게를 비롯하여 경비원 황씨, 여선의 마지막 등교, 류승혁의 퉁명스런 대꾸를 혼자 사는 총각의 까칠함 정도로 흘려보내고 마는 반상회 총무, 주차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모습 등, 여선의 이웃이자 연쇄살인범의 이웃인, 우리들의 이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주변 사람들과 그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살인사건만 나지 않았다면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만큼 지극하게 평범한 일상을, 하지만 수많은 이웃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두었더라면 누군가의 죽음을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었을 그런 결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말이다.

사실 빌라에 사는 사람들 중 단 한사람이라도 101동 젊은 총각에게 관심을 두었다면, 그의 수상한 행동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여선이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살인사건이 난 그 며칠 후 경비원 황씨까지 같은 살인범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아마도 없었으리라.

여선이가 살해당한 후 이웃 사람들이 귀찮다거나,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거나, 자신이 너무 예민한 건지도 모른다는 등과 같은 각자의 사정으로 주춤하는 사이 납치와 살인은 계속된다. 살인마와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지라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웃 사람> 그 대략의 줄거리다. 만화는 여선이가 변사체로 발견된 후 일주일째 매일 집에 오던 그 시각에 집으로 와 새엄마에게 "엄마'라고 선뜻 부르지 못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시작으로 열흘 전, 열흘 후, 첫째날 둘째날 등으로 날짜와 시차를 달리하며 이웃 사람들과 연쇄살인범의 살인 과정 및 그 일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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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전3권) 겉그림 ⓒ 문학세계사


우리는 도처에 위험이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이 에 위험은 더욱 커지고만 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끝내고, 차기작을 준비할 즈음에 유독 텔레비전에는 연쇄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왔었다. '연쇄살인마'란 결국 연쇄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전제여서, 이미 많은 위험들이 수많은 아픔을 겪고 난 후에 붙여지는 단어였다. 항상 후일담으로 기억이 되는 괴담(필자주: 한동안 우리 사회에 회자되었던 유영철 살인 관련 괴담)들을 긍정적인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로, 만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관심이 때로는 쓸데없는 참견이나 오지랖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사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묻힌 바로 그 사람이 중요하다. - <이웃 사람> 저자의 말 중에서

이웃의 살인사건 이후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이웃 사람>을 읽다가 몇 년 전 간접적으로 겪은 살인의 공포가 떠올랐다. 2008년 11월, 내가 사는 집과 1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뒷집 아줌마가 살해당했다. 뒷집 아줌마는 아주 늦은 시각도 아닌 밤 9시를 갓 넘은 시각에, 사람들이 수시로 다니는 길에서 7군데나 칼에 찔렸다.

뒷집 아줌마가 퇴근길에 살해당한 그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놀이터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걸핏하면 낯선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했다. 눈여겨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아이들이 그 아이들로 보였으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겠지만, 언제부턴가 술병과 담배 꽁초가 늘었고 벗어 던진 옷가지가 자주 보이는 등 뭔가 달랐다.

"요즘 애들 잘못 건드리면 되레 큰 코 다쳐. 그냥 눈에 거슬려도 못 본 척 냅둬!"

이 말 참 많이 들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나처럼 참견을 하려다가 이런 이유로 혀를 차며 지나치는 어른들도 있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어쨌든 관심을 거둬야만 했다. 그런데 몇 개 월 후 범인이 잡히면서 알려진 사실인데, 놀이터에 수시로 몰려들던 아이들 중에는 먼 동네에서 온 가출 청소년이 있었고, 그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들 끌어들여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이들은 범행 몇 달 전부터 아줌마가 살해당한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헐리기 직전의 빈집에도 자주 모여들었고, 인근과 수원 일대, 그리고 연신내 등에서 400여차례에 이르는 크고 작은 범행을 저질렀단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두려운 존재가 돼버린 이웃... 씁쓸하다

여하간 한동안 해가 지면, 꼼짝달싹 못할 정도의 공포와 충격으로인해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아이들이 내 가까운 이웃을 몇 만 원 때문에 살해한 것도, 그렇게 많은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그만큼 무관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이웃이 언제부턴가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때 만일 우리들이 한 발자국씩만 더 나아갔더라면….'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만화 속 이웃들처럼 뭔가 낌새가 이상하고 미심쩍은 것이 보여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내 일이 아니라고, 혹은 귀찮다고 무심하게 지나치고 만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만화 속 연쇄살인이나 내가 몇 년 전 간접적으로 겪은 내 이웃의 희생과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 말은 훨씬 의미있게 파고든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새엄마와 마음 나누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살인마의 표적이 되고 만,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엄마를 부르지 못한 여선이의 외로움과 절박함, 그 아픔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웃 사람> (모두 3권)ㅣ강풀ㅣ문학세계사 ㅣ2009ㅣ각권 12000원


덧붙이는 글 <이웃 사람> (모두 3권)ㅣ강풀ㅣ문학세계사 ㅣ2009ㅣ각권 12000원

이웃 사람 1~3권 세트 - 전3권

강풀 글.그림,
재미주의, 2012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강풀 #이웃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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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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