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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황정민 뒤엔 그가 있었다

[나는 매니저다(20)] 황정민 매니저로 10년, SEM 컴퍼니 김창섭 본부장

11.12.10 10:19최종업데이트11.12.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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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섭 본부장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신인들이 조그만 역할이지만 작품에 들어가서 제 역량을 펼치고 좋은 반응을 얻을 때 가장 보람되죠. 제2의 황정민이 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되고요." ⓒ 민원기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것 같아요. 10년을 함께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어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많이 싸우기도 하고, 작품을 고를 때는 치열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이가 정민이 형보다 어리지만 대본이라는 게 누가 봐도 정답은 없잖아요. 제 관점에서 치열하게 분석해서 형과 이야기를 해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는 정민이 형이 술자리를 좋아하니까 길어지면 빨리 들어가시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해요. 본인이 다음날 스케줄이 있으면 알아서 조절을 하지만 매니저가 커트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죠." 

SEM 컴퍼니 김창섭 본부장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작곡가의 꿈을 키웠다. 그 일환으로 그는 서울예대 실용음악 작곡과에 입학했다. 그랬던 그가 우연히 방송 관련 수업을 듣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후 싸이더스HQ에 입사, 가요나 음반 파트에서 기획 일을 하게 될 줄 알았지만 그는 배우의 매니저로 황정민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해오고 있다.

"황정민, 유명해지기 전에도 항상 치열했던 사람"

김창섭 본부장은 영화 <마지막 늑대> 촬영 당시 황정민의 현장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황정민이 지금처럼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스타로 자리하기 전이었다.

"정민이 형이 <바람난 가족>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잠실에 있는 농수산물 시장에서 얼음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지금은 알아주는 배우가 됐지만 그때는 형도, 저도 힘들었을 때였죠.  

그래서 가끔 형한테 문자를 보내요. '형, 우리 그때 기억을 해 보자'고. 사람인지라 마음이 풀어질 때도 있고, 주위에서 '황정민이 변했네'라고 말들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정민이 형은 유명해지기 전에도 작품을 할 때 늘 치열했고 자신의 의견을 늘 감독에게 활발히 내놓고 의견을 나누고 그랬어요. 유명하지 않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인데 이름이 알려져서 그렇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 건 안타깝죠. 하지만 저희들은 늘 그런 것들을 경계하고 조심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려울 때부터 현장매니저와 배우로 인연을 맺었던 김 본부장과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달콤한 인생> 등의 작품을 통해 2005년 영화제서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동시에 휩쓸며 최고의 해를 맞이한다.

"유명하지 않았을 때부터 일을 했으니까 그렇게 상을 휩쓸었던 것이 너무 좋고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얼떨떨하기도 했죠.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연기만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선 것은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감격스럽고 좋습니다."

▲ 나는 매니저다 SEM 컴퍼니에서 제작한 뮤지컬 <넌센세이션> 포스터와 황정민 주연의 <부당거래> 포스터가 사무실에 나란히 걸려 있다. ⓒ 민원기


▲ 김창섭 본부장 "(황)정민이 형이랑 함께 하면서 '이 사람이 진짜 배우구나'라고 느꼈던 적은 <너는 내 운명>할 때였어요." ⓒ 민원기


소주에 멸치를 먹어도, 황정민과 함께 꿈을 꿨다

황정민 뿐만 아니라 충무로에는 설경구·김명민·정재영·하정우 등 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있다. 그럼에도 김창섭 본부장에게 최고의 배우는 황정민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다른 매니저들도 다 자기 배우가 최고라고 생각할 거에요. 정민이 형과 함께 하면서 '이 사람이 진짜 배우구나'라고 느꼈던 적은 <너는 내 운명>할 때였어요. 어느 날 밤에 조개구이랑 술을 먹는데 형이 저랑 둘이서만 먹자는 거에요. 다른 스태프들이 전화로 계속 오라고 했는데 안 가셨죠. 그래서 '왜 안 가세요?'라고 했더니 '내일 (전)도연이를 그리워하며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지금 도연이와 떠들고 놀 수는 없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또 그 때 20kg 넘게 몸을 불려야 했는데 새벽 2, 3시에 자고 있으면 저를 깨워요. 저녁을 이미 많이 먹었는데도 그 시간에 떡볶이랑 순대를 찾아서 먹더라고요. 살을 억지로 찌우는 상황이라 밤에 아무리 먹어도 아침이 되면 다시 돌아오니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더 먹고 잔 거죠. 진짜 배우구나 싶었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 3, 4개월은 그 캐릭터로 살려고 하는 배우에요."

▲ 김창섭 본부장 황정민 외에 강하늘·박정민·안남희·정재헌 등의 신인배우들을 키우고 있다. 신인배우들의 프로필을 보여주고 있다. ⓒ 민원기


연기파 황정민, 배우 황정민의 장점만 늘어놓다 보니 찬양일색이 되는 듯해서 다른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단점이 없을까?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성격이 되게 급해요. 일이 있어서 9시에 만나기로 하면 8시부터 전화가 와요. 왔냐고(웃음). 또 현장 다닐 때 일이 빨리 빨리 진행돼야 하는 성격이고 다혈질적인 면도 조금 있어요. 그래도 화 낼 것은 내는데 뒤끝이 전혀 없어요. 그 자리에서 잘못된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다음에 다시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런 황정민과 이렇게 10년이나 함께 같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창섭 본부장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가끔 제가 정민이 형을 놀리면 주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굉장히 놀라요. 그런데 형이랑 현장을 다니면서 형수님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붙어 있었거든요. 누구보다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많이 싸우고 그러면서 믿음이 쌓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이 고생을 했으니까 더 끈끈한 것도 있죠. 형 장가가기 전에 조그만 방에 누워서 '난 열심히 할 거야, 그러니 우리 열심히 잘 해보자'고 하셨던 게 아직도 생각나요. 그 때는 소주에 멸치를 먹으면서도 고생스럽다는 생각 대신 함께 꿈을 꾸며 일했던 것 같아요."

"신인들이 작품 속에서 제 역량 펼칠 때 보람돼"

▲ SEM 컴퍼니 김창섭 본부장 김창섭 본부장과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달콤한 인생> 등의 작품을 하면서 2005년 그 해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동시에 휩쓸며 최고의 해를 맞이한다. ⓒ 민원기

이제는 SEM 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김창섭 본부장. 황정민 외에 강하늘·박정민·안남희·정재헌 등의 신인배우들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SEM 컴퍼니는 뮤지컬 제작(<넌센세이션>)을 시작으로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 계획을 갖고 있다. 

"신인들이 조그만 역할이지만 작품에 들어가서 제 역량을 펼치고 좋은 반응을 얻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제2의 황정민이 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되고요. 요즘에는 신인들 때문에 열심히 사람들도 만나러 다니고 오디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부탁도 많이 하고 그래요.

정민이 형은 늘 '나 저 사람 영화는 돈 주고 볼래, 저 사람 영화는 꼭 챙겨 볼 거야' 그런 말을 듣는 배우가 되길 원하세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해야겠죠. 그 외에도 기회가 되면 단편이든 저예산 영화든 소규모로 영화 제작도 함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황정민 김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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