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가 '빼빼로 데이'를 외면한 이유는?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⑭]

등록 2011.11.12 19:09수정 2011.11.1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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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지난 11월 11일은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빼빼로 데이'입니다. 해마다 숫자 1자가 네 번 겹치는 이 날, 숫자 1과 닮은 '빼빼로'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나누어 먹는 날입니다. 특히 올해는 1자가 거푸 여섯 번이나 들어 있어서 특별히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부릅니다.

'빼빼로 데이'를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 

'빼빼로 데이'에 좋아하는 사람한테 '빼빼로'를 선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을 위한 날인 줄 압니다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빼빼로 데이'가 수많은 '~데이'와 다른 점이 '~데이' 앞에 붙은 '빼빼로'가 특정 회사의 특정 상품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1년에 한 번씩 돈 안 들이고 전국적으로 광고를 하면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빼빼로 데이'를 연인들보다 수천 배 더 좋아할 사람은 '빼빼로'를 만든 회사 사장님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연인들을 위한 날이 아니라, '빼빼로'를 만든 특정회사를 위한 날입니다. 특히 올해가 '밀레니엄 빼빼로'라고 해서 '빼빼로' 사장님은 더욱 좋아하셨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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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의 유래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유래인데, 아무리 그래도 '빼빼로'는 특정상품 이름이고, '빼빼로'를 많이 먹으면 오히려 날씬해 지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빼빼로 데이'에 대한 진정성을 믿기 어렵습니다. ⓒ 이부영


'빼빼로 데이'가 다가오면 대형매장과 수퍼마켓, 문구점같은 가게에는 '빼빼로'를 산처럼 쌓아놓고 있습니다. '빼빼로'만 있는 게 아니고, 이름이 다른 다양한 '빼빼로'도 많습니다. 심지어 회사이름을 알 수 없는 것도 많더군요.

'빼빼로'를 예쁘게 포장하는 법을 알려주는 블로그도 많습니다. '빼빼로'를 주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처럼 서로 '빼빼로'를 사서 줍니다. 갯수가 사랑의 양을 뜻하는 것처럼 한 통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을 삽니다. 어떤 아이는 '빼빼로'사는 데 십여 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엄마랑 돈 문제로 다투는 아이도 있을 정도입니다.

교실과 수업과 아이들 마음이 난장판이 되는 '빼빼로 데이'!

해마다 '빼빼로 데이'가 돌아오면 학교 교실은 온통 난리가 납니다. 등교하는 아이들 손에는 알록달록한 '빼빼로'가 가득 든 종이가방을 따로 들고 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빼빼로'를 주느라고 학교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은 기본에다가, '빼빼로'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수업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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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가 가득 든 가방 해마다 '빼빼로 데이'가 되면 아이들은 이런 가방을 손에 들고 학교에 옵니다. ⓒ 이부영


교실안팎에 마구 버린 겉봉지는 또 어떻구요. 누구를 줬네안줬네로 실랑이를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난장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련기사 : 교실 난장판 만드는 '빼빼로 데이' )  그래서 저는 해마다 우리 반 아이들만큼은 '빼빼로 데이'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 쯤 아이들이 '빼빼로'로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됐지 뭘 예민하게 그러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빼빼로 ' 살 돈이 없으면 즐길 수 없고, 또 '빼빼로 데이'가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빼빼로'를 많이 팔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기 때문이라고.

'빼빼로 데이'는 좋아하는 사람 몸에 병이 들게 하는 날!

그러나 이것보다 더 반대하는 이유는, '빼빼로'에 들어있는 건강에 좋지 않은 성분 때문입니다. '빼빼로' 뿐 아니라, 과자에 들어있는 첨가물이 아이들이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몸에 좋지 않은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많이 선물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좀 심하게 비유하면, '빼빼로 데이'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몸에 좋지 않은 과자를 많이 먹게 해서 몸에 병이 들게 하는 날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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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양의 '빼빼로'들 아이들이 사 온 빼빼로들 중에는 성분표시 뿐만 아니라, 회사이름이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런 과자는 더 위험합니다. ⓒ 이부영


부모들도 '빼빼로 데이'가 되면 아이들과 건강과 돈 문제로 실랑이를 하게 되는데, 다른 친구들이 다 사니 우리 아이만 안 사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주게 된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어떻게 막아줄 수 없느냐고도 하십니다. 

단 한 가지도 교육적으로나 건강으로나 아이들에게 좋은 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사회의 때 올해 우리 학교에서는 '빼빼로 데이'를 막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전교생 가정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내 위와 같은 이유로 '빼빼로 데이'때 '빼빼로'를 사지도 말고 학교에 가져오지 말도록 부탁했습니다.

11월 11일은 당당하게 세상에 우뚝 서는 법을 배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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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의 날' 포스터 11월 11일은 요란한 ‘빼빼로 데이’의 상술에 가려져서 아무도 몰랐던 '지체부자유자의 날'입니다. ⓒ 이부영


그랬더니 올해 '빼빼로 데이'는 그 어느 해보다 아주 조용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11월 11일은 지체부자유자의 날이라고 합니다. 요란한 '빼빼로 데이'의 상술에 가려져서 아무도 모르는 날인데, 11, '두 발로 세상에 우뚝 선다'는 뜻이라더군요. 서울형 혁신학교 학생인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아이들은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쌩까면서 상업적인 유행에 휩쓸리지않고 당당하게 세상에 우뚝 서는 법을 이렇게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학교 #빼빼로데이 #지체장애인의날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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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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