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보라, 불에 데인 '붉은 바위'

[네 바퀴로 가는 호주 아웃백 19] 킹스캐니언, 카타추타, 울룰루

등록 2011.10.01 12:11수정 2011.10.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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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스프링스에서 보낸 사흘간의 달콤한 휴식은 끝났다. 그간 사진기 수리도 받았고, 부실했던 캠핑 도구도 보강하고 장보기까지 마쳤으니 휴식이라기보단 다른 출발을 준비한 것이라 하겠지만 머무는 자의 심리적 안정감은 분명 더없는 휴식이었다. 지금은 다시 이동해야 하는 때. 대륙을 횡단해 퍼스(Perth)에 닿고,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는  자발적 떠돌이의 운명을 반복할 것이다.

출발 직전 앞유리에 10Cm쯤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냥 놔두면 점점 커질 것이기에 전문 업체에 가 유리를 때웠다. 그러고 보니 차량 내부 손잡이도 떨어지고 험로에서 돌이 튀었는지 차체 여기저기에 고생의 흔적이 보인다. 이걸 구실로 렌트카 회사에 얼마를 뜯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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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캐니언 가는 길 앨리스스프링스에서 킹스캐니언 가는 길은 상당 부분이 비포장도로이다. ⓒ 오창학


그렇지만 막상 길에 오른 이후로 그런 상념은 안중에 없다. 그저 내가 달릴 길로 시야를 채울 뿐. 사유체계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여행이 주는 장점이다. 언제나 그랬듯 새 길에 대한 기대가 익숙한 장소를 떠나는 아쉬움을 쉬 상쇄하고 가슴은 새로운 풍경에 감탄할 준비만 하면 된다. 달릴 연료와 먹을 음식이 있으니 그 이후 일들은 그냥 나중으로 미루면 될 터.

앨리스스프링스에서 킹스캐니언(Kings Canyon)까지는 330Km인데 110Km 구간을 넘어서면서는 비포장이다. 이제 아웃백의 비포장길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차도 떨고 그 안의 사람과 짐까지 모두 떨어야 하는, 일명 '빨래판 도로'가 이어지는 구간은 새롭다.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정신없이 떨고 차체는 모든 나사를 풀어버릴 듯 요동친다. 내장이 들썩거려 발화자의 음성이 자꾸 끊기기도 하고 짐이 덜그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청취마저 어려우니 자연히 대화가 줄어든다. 이래저래 빨래판길은 적응이 안 된다.

아, 일하는 자만 욕먹는 더러운 세상! 

그래도 그 뒤로 포장도로 부럽잖게 매끈하고 널찍한 길이 이어졌다. 모기약 분무기처럼 먼지를 길게 매달고 노면을 체감하며 내달리는 맛은 상쾌하다. 아차. 그렇게 달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급격히 덜덜거리는 걸 보니 펑크다.

벌써 오후 5시 30분. 킹스캐니언을 겨우 27Km 남겨두고 오른쪽 뒷바퀴가 주저앉았다. 이토록 빠르게 바람이 빠졌다면 구멍이 난 게 아니라 찢긴 것일 수도 있다. 찢겼다면 타이어를 다시 사야 하니 경제적 문제도 문제지만 살 곳이 없다는 게 더 문제다. 이미 앨리스스프링스는 떠나왔고 쿠버피디(Coober Pedy)에나 가야 동종의 타이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니 그 사이엔 예비타이어 없이 다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어찌 되었든 당장 타이어를 교체해야 어둡기 전 킹스캐니언에 도착할 것이다. 공구를 꺼내는데 아내의 핀잔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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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펑크 갑자기 타이어가 주저 앉았다. 아웃백에선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 오창학


"운전을 그리하니 빵꾸가 나지!"
"자칭 전문가라며? 일하는 게 왜 이리 늦어!"

내 차가 아닌지라 공구가 낯설어 본의 아니게 작업속도가 더딘데 그것까지 타박이다. 아, 우리 현실은 왜 일하는 자만 욕을 먹게 되어있는 것일까? 그냥 뒷좌석에 앉아 있었더라면, 타이어야 어찌되었든 팔짱을 끼고 있었더라면 구박받을 일도 없을 텐데 말이지. 아니, 그러면 밥만 축내는 위인이라며 아예 소박을 맞으려나?

아내의 잔소리를 장단삼아 흐르는 땀을 생수 삼아 타이어를 교체하니 꼴딱 해가 저물었다. 차를 막 움직이려는 데 풀숲에서 딩고를 발견했다. 만약 이 길에서 심각한 차량결함 때문에 야영을 해야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혹은 도보로 이동하다가 이 밤에 딩고를 만났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딩고를 관찰하는데 녀석이 차 주변을 맴맴 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을 올리라며 아내는 걱정이다. 국내 도보여행 때 묶이지 않은 개들 때문에 위험에 처한 경험이 있어 적이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하물며 개의 형상이지만 야성을 가진 딩고라면 더 걱정이 될 터이다. 그래도 서방이라고 걱정은…. 아님, 운전해줄 머슴이 잘못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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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의 딩고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주행을 시작하자마자 딩고를 만났다. 만약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만난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 오창학


"어머, 저 달 좀 보아!"
"달이 열기구 같아."

차창을 보며 아내와 경숙이 호들갑이다. 어둠과 함께 나타난 건 딩고만이 아니었다. 지평선에서 보름달이 머리를 밀어올리고 있다. 지평선 월출을 보는 셈인데 이렇게 이글거리는 달은 처음 본다. 수풀을 헤집고 나오며 불이라도 붙일 기세다. 살면서 저런 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칭하이성(青海省)의 사막에서 괴기스러울 만치 가깝고 거대한 달에 놀란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이글거리는 강렬함과는 다른 인상이었다. 아예 차를 세우고 달이 눈높이 이상 오를 때까지 넋을 놓고 감상했다.

달빛의 여운과 함께 도착한 킹스캐니언 캠핑그라운드는 그야말로 '개판'이다. 딩고들이 동네 개처럼 돌아다닌다. 프레이저나 심슨사막에서 느꼈던 맹수의 위엄이 다 거세된, 그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아까 딩고를 만났을 때 움찔했던 내 모습이 괜히 우습다. 워낙 유명 관광지라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어둠과 달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늑하다. 조용히 늦은 저녁을 지어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 보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에.

'왕'의 '캐니언'이라더니... 애걔걔

새들의 소리에 잠을 깨고 아침 일찍 킹스캐니언 트래킹을 준비한다. 간밤에 펑크 응급키트로 수리했던 타이어는 구멍 크기가 큰지 조금씩 바람이 샌다. 그래서 아예 업체에 맡겨놓고 킹스캐니언으로 향했다. 킹스캐니언 캠핑장에서 잠을 잤지만 계곡까지는 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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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캐니언의 초입 킹스캐니언 트래킹은 고즈넉한 우리네 산야를 걷는 느낌을 들게 한다. ⓒ 오창학


킹스캐니언의 입구는 고즈넉하다. 압도되는 자연의 장엄함보다 친근함이 먼저 느껴지는 곳이다. 절벽 위 능선 코스(6Km, 3:30 소요)는 좀 길다 싶어 킹스크릭(kings Creek)-전망대 코스(2.6Km, 1:00 소요)를 따라 움직였기에 그런 느낌이 강했을 것이다.

솔직히 첫눈엔 '애걔걔'였다. 명칭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으리라. '캐니언'이란 단어만으로도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하고(킹스캐니언의 별명도 아예 '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다) 게다가 '왕'의 '캐니언'이니 오죽 웅장할까 싶었던 게다. 한마디로 혼자 상상하고 혼자 헛물을 켠 셈이다. 대신 조용하고 고졸한 맛이 있다. 그 맛에 취해 아내는 걷는 내내 신명이 났다. 바위를 뚫고 나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감탄사를 연발하며 마냥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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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캐니언 킹스캐니언의 백미는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을 조망하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절벽 위쪽을 따라 조망하는 코스가 더 장엄한 풍경을 맛보게 한다. ⓒ 오창학


아내는 이곳이 산이지만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했다. 평야지대만 다니다가 얕기는 해도 산이라는 것을 접하니 기분이 좋다 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의 말처럼 오랜만에 접하는 '산'은 아늑하게 다가온다. 늘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대지를 바라보며 달려 왔다. 그런 마음 한 구석엔 어딘가에 안기거나 기대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보다. 많은 사람에 치이는 것도 아니요, 상가로 가득한 진입로가 있는 것도 아닌, 건조지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포근한 계곡을 걷는 맛은 분명 있다.

그런 후 도착한 전망대에서의 풍경은 사람을 압도한다. 범의 입처럼 벌어진 계곡 끝에 세월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퇴적층과 각진 벼랑이 주는 위압감이라니. 높이 300m의 거대한 파스텔 병풍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수백Km를 달려온 수고가 아깝지 않다.

킹스캐니언을 떠나 울룰루(Uluru)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만약 킹스캐니언의 감동을 머리끝까지 느끼지 못한 바가 있다면 마음이 너무 일찍 울룰루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 한 덩어리의 크기가 높이 348m에 둘레 9.4Km라면 누군들 대면하고 싶지 않겠는가. 지구의 배꼽인 양 호주의 중앙에 6억 년이나 존재를 다듬었던 그와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었다. 정속주행을 하고 있지만 실은 마음이 조급하다.

두 시간이 좀 넘게 달렸을 때 뒷좌석에서 경숙이 소리쳤다.

"울루루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왼쪽 먼 곳에 웅장한 바위산의 자태가 보인다. 과연, 장엄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쩐지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달라 보였다. 지도와 대조해 본 후에야 현재 위치는 울룰루와 150Km나(직선 거리로도 100Km)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어쩐지 너무 일찍 도착했다 싶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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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재발견, 마운트코너 울룰루를 향해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울룰루라고 착각할 만한 마운트코너. 울룰루보다 더 크지만 언제나 조연의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비애를 안고 서 있으리라. ⓒ 오창학


울룰루가 아니라 마운트코너(Mt.Conner)다. 저 산을 울룰루로 착각하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잠시 차를 세운 사람들마다 '울룰루' 어쩌고 하는 단어를 내뱉는 것을 보면. 슈퍼스타 울룰루의 명성에 가려 비록 '짝퉁' 취급을 받고 있지만 평지돌출형의 판판한 머리를 가진 저 거대한 산(바위로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은 사실 울룰루보다 높고 크다.

규모로도, 잘생긴 외관으로도, 평지에 우뚝 솟은 자태로도 결코 홀대받을 자연물은 아니건만 마운트코너를 바라고 이곳을 찾는 이는 드물어 보였다. 1등만 기억하는 우리네 세상처럼 마운트코너도 울룰루에 밀려 자신의 자태를 먼 발치로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만이라도 울룰루를 보고 돌아나올 때 꼭 한번 가까이 가보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당신이 태어난 후 내가 없었던 적은 단 1초도 없어"

이윽고 울룰루의 자태가 저만치 보일 때 서쪽 35Km 지점에 있는 카타추타(Kata Tjuta)로  방향을 틀었다. 카타추타에서 태양을 좀 더 기울게 한 후 울룰루를 보고 싶어서였다. 방울방울 공깃돌처럼 솟은 카타추타의 모습이 보였다. 한때는 발견한 이의 이름을 따 올가(Mt. Olgas)라 불렸으나 지금은 '여러 개의 머리'라는 뜻의 아낭구(Anangu) 원주민 말인 '카타추타'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 36개의 큰 바윗덩어리 역시 5억 년 침식작용이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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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추타 원주민 말로 '여러 개의 머리'라는 뜻의 카타추타. 36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은 것은 546m에 달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배경이 된 곳이다. ⓒ 오창학


조망하기 좋은 장소에서 바라볼 땐 그저 정갈한 바위산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람의 계곡(valley of the winds, 일본 만화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지)'을 보려 차를 몰아 다가가니 높이 546m에 이르는 바위의 실체가 웅장하게 다가온다.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듯한 바위의 표피를 가까이서 봤을 때에야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연륜을 느꼈다. 아직 울룰루는 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산의 형상을 한 돌덩이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고 있다. 사막과 광대무변한 자연에서 느끼던 그 경외와 겸손의 감정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해가 강렬한 빛을 눅이기 시작할 때쯤 울룰루로 달려 갔다. 먼발치 풍경으로만 보이던 바위가 시야에 가득 차 올 때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몸이 부르르 떨린다.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저 거대한 벽을, 태양보다 더 붉게 울렁이는 저 빛을.'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리고 몸은 전율하는데 고작 내 혀에 맴도는 어휘가 '어쩌면 좋아'뿐이라니. 맥박을 빠르게 하는 바위가 차창에 가득하니 정신마저 아뜩하다. 일몰관람지점(Sunset Viewing Point)엔 해가 기우는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울룰루의 모습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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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룰루 해가 기우는 때는 울룰루는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며 일렁인다. 높이 340m에 둘레 9.4km가 넘는 한 개의 바위가 주는 감동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함이 있다. ⓒ 오창학


300m가 넘는 6억 살 바위는 붉은 산화철에 뒤덮여 원래의 회색을 가린 채 태양의 힘으로 자신을 채색한다. 때론 미친 붉은색으로 때론 담갈색으로 제 몸을 바꾸며 살아있는 산은,  산이라 부를 저 거대한 바위는, 땅밑으로도 6Km의 하반신을 묻고 장엄한 몸짓으로 일렁였다. 그저 하루 해가 기우는 순간을 영험한 의식으로 승화하는 힘이 느껴졌다. 마치 생애 처음으로 노을을 맞는 사람처럼.

일본작가 카타야마 쿄이치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왜 여주인공 아키의 꿈을 살아서 울룰루에 가는 것으로 설정하였는지, 남주인공 사쿠는 왜 이곳에서 아키의 뼈를 날리려 했는지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누구라도 저 바위 앞에 서면 지난 생을 반추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노인들의 눈빛은 촉촉하게 젖고, 연인들은 제 감정을 어쩔 수 없는 사람처럼 상대를 감싸안는다. 아내보다 두 해를 더 산 나도 그런 감정에 감염되어 소설의 대사를 웅얼거렸다.

"당신이 태어난 후 내가 없었던 적은 단 1초도 없어."

그러나 울룰루의 숭고 앞에서 어찌 공명을 통해서만 뜻을 주고받겠는가. 말은 없으나 이 자리 모든 이의 감정은 하나일 게다. 저편에 불에 데인 바위가 있고 이편엔 그 바위에 데인 감흥의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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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관람지점에서 본 울룰루 일몰 시간엔 많은 사람이 모인다. 바위를 덮은 산화철이 채색을 바꾸는 동안 모두가 감동에 휩싸인다. ⓒ 오창학


가끔은 복제된 현실이 실제보다 더 화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크린 속 배우의 모습이나 빛을 잘 활용한 사진이 그렇듯이 별일 아닌 일상도 의미의 방점을 찍으면 화려한 기억으로 덧입혀진다.

그러나 단언컨대 원본을 능가하는 복제 이미지란 울룰루 앞에선 통용될 수 없다. 실물 앞에서 느끼는 충격과 설렘에 비하면 이곳에 오기 전 접한 아름다운 이미지나 글에서 느꼈던 감동은 싸구려 흑백 복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저 웅장한 장엄과 경외를 3D 화면인들 어찌 담아낼 수 있으랴. 인간으로 태어나 생을 마감하기 전, 꼭 자기 눈으로 실체를 확인해야 할 대상을 꼽으라면 단연 울룰루를 꼽고 싶다.

벼룩이 개의 소유를 놓고 다투다

울룰루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저만치 울룰루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이 보였지만 우린 애초 계획에 넣지 않았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겐 그저 바위산일지 모르지만 울룰루와 함께 오랜 삶을 지속했던 이 땅의 애보리진들은 이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믿는다. 때문에 영혼이 시작되고 거두어지는 이 신성한 바위가 관광객들의 발 아래 놓이길 원치 않는 그들의 바람을 받아들였다. 바위 위의 세상이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소박한 소망을 짓밟지 않는 일 뿐이었으므로.

발견 당시(1873)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수상이었던 헨리 에어즈(Henry Ayers)의 이름을 딴 에어즈락(Ayers Rock)이 더 오래전 이름인 울루루를 대체한 것처럼 이 땅 또한 원주민들의 터전이었음에도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1985년에 애보리진들에게 소유권이 넘어왔고 이름도 원래 이름인 울루루(Uluru)를 되찾았지만 99년간 호주국립공원위원회에 관리권이 이양된 상태여서 달라진 건 없다. 애보리진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등반 자제를 부탁하는 것뿐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부탁을 존중해 주는 것뿐이다.

바위에 손을 대니 체온이 느껴진다. 이제 어둠 속에서조차 그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둘레 9.4Km의 거대한 바위를 만지며, <크로커다일 던디>에서 여자와 던디가 나눈 대사를 떠올렸다. 여자가 묻는다.

"데모해본 적 있어요?"
"그럼요, 술집에서 쫓겨날 때마다."
"난 진지해요. 가령 핵 논쟁이나 군비확장 경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
"내 알 바 아니요."
"당신 문제가 아니라고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건 모든 사람의 문제예요. 모두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요."

던디가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기 누가 듣기나 하겠소?"
"좋아요. 이곳을 예로 들죠. 원주민들의 토지 반환 요구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들은 이 땅을 소유한 게 아니요. 여긴 자신들의 일부죠. 땅은 그들의 어머니예요. 저기 보이는 바위는 6억 년이나 됐소. 우리가 죽어도 저기 있을 거요. 그러니 소유자가 누구고 하는 그런 언쟁은 개에 붙어 사는 벼룩 두 마리가 개가 누구 건지 싸우는 거랑 같아요. 원주민들은 신이 만든 다른 창조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 위를 활보할 권리와 평화롭게 살 권리를 원하는 거죠."

내게 아웃백에 대한 첫경험을 안겨준 영화가 <크로커다일 던디>였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나오기 전까진 노던테리토리의 늪과 자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던디가 여인과 아웃백에 나갔다가 나누었던 이 대화(비록 울룰루를 보며 한 말은 아니었지만)가 오래 가슴에 남았더랬다. 자연에 대한 소유는 개에 붙어사는 벼룩이 개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무엇이 무엇을 소유한단 말인가. 심슨 사막의 포펠 코너에서도 자연을 소유하는 인간의 덧없음을 여실히 느꼈지만 이토록 위대한 자연 앞에 서게 되면 어김없이 그런 감정이 든다. 자연이 가르치는 위대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창조물도 실은 산맥의 한 부분만 남겨진 것이니 땅 위에 유한하지 않은 존재란 없는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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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룰루에서 본 하늘 울룰루에 기대어 해가 가라앉은 후 오로라처럼 물든 하늘을 바라보다. ⓒ 오창학


오랫동안 울룰루에 기대 앉아 있었다. 태양도 마지막 자취를 감추었는데 하늘빛은 오로라처럼 영롱하다. 푸른 어둠을 배색으로 주황의 뭉글뭉글한 솜타래들이 흐른다. 카타추타와 울룰루를 한 번에 본 오늘, 가슴에 깊고 그득한 무엇 하나가 담긴 듯하다. 짙은 어둠이 내린 후에도 여전 푸른 하늘과 여전히 붉은 바위를 느끼며 아쉽게 걸음을 떼었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카타추타로부터 50Km, 울룰루로부터 20Km 떨어진 곳에 율랄라(Yulara) 리조트가 있지만 오늘 밤은 율랄라에서 136Km 떨어진 커틴스프링스(Curtin Springs)까지 가서 자리를 펴기로 했다. 내일 쿠버피디(Coober Pedy)까지 가기 위해선 길을 조금이라도 줄여놓자는 대의명분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그곳의 무료 캠핑그라운드를 이용하자는 셈속이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달랑 왕복 2차선인 라세터 하이웨이(Lasseter Highway)를 달리는데 예의 그 괴기스러운 보름달이 정면에서 부상한다. 허 생원네 나귀 숨소리처럼 우리 차의 낮은 엔진음만 그렁거리는 밤, 도로의 적막을 노란 광채로 덮어주고 있다. 이글거리는 달빛이 차창을 뚫고 들어와 실내로 흩어지는데, 공교롭게도 차 안에는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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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뜨는 보름달 아웃백에선 해처럼 뜨는, 해처럼 밝은 달을 목격하게 된다. 달마저 다른 땅. ⓒ 오창학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줄임)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이 밤, 이토록 적막하고 등대처럼 밝은 달로도 어쩌지 못하는 외로움 가득한 밤에 그의 저음이 낮게 실내 여기저기를 핥고 있었다. 카타추타와 울룰루…. 눈 감을 때까지 잊지 못할 두 봉우리가 가슴에 꽉 차 있는 밤, 그러면서도 어쩐지 너무 높이, 너무 먼 곳까지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이글거리는 달빛 아래 그의 노래를 만난 것이다. 심사에 부합하는 음악이 주는 감동은 경이롭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까? 아내도 경숙도 말을 잃었다.

그런데 김민기의 낮은 음색 사이로 뭔가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맨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최 감독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읊조리고 있다. 묵직한 분위기가 가시고 모두 킥킥댄다. 이 노래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김민기와 대조되는 장기하의 창법이 연상되어 우습다. 그래 밝은 기운으로 가는 거야. '매번 달이 차 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이루어 보는 거야. 엄청난 보름달은 여전히 정면에 있지만 밤길을 달리는 마음은 한결 가볍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새로운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호주 아웃백 #자동차 여행 #대륙횡단 #울룰루 #카타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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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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