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인내심 잃어가는 '아들 셋'...다툴까봐 조마조마

[아들 셋과 초저가 북미대륙 횡단여행 20]극도로 피곤한 여행, 친구란 무엇인가

등록 2011.08.31 13:32수정 2011.08.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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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너희들 대단하다. 가만 보니까, 세 명이 모두 성격이 제 각각인데다, 개성 또한 상당히 강한 편인데 참 잘들 지내는구나."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뉴욕에 이를 때까지 약 보름 동안 틈나는 대로 나는 차 안에서 애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나름 속셈이 있어 이런 말을 했었다. 하나는 정말 '아들 셋'이 잘 어울려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다리조차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비좁은 차 안에서 하루 10시간씩 보내야 하는데도 불만도, 저희들끼리 이렇다 할 갈등도 없었다.

 

또 하나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불화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내 얕은 꾀이자, 일종의 못박음이기도 했다. '잘 지낸다'고 거듭해 말하면, 저희들끼리 서로 불평거리가 생겨도 그걸 표출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들 셋'은 이런 내 말에 로키 산맥을 넘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죠"하며 거의 매번 화답을 하곤 했다. 셋이 개성이 딴판이라는 사실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성격이 다른 사람들끼리 잘 어울리면 그보다 좋은 조화도 없다. 성격이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지내는 것보다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밥상 위에 이런 저런 다양한 반찬들이 올라와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여행이 계속 될수록 아들 셋의 조화에 미묘한 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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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뉴욕에서 야영장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윤의와 병모. 뉴욕 탐방을 마치고 거의 매일 새벽 기차를 타고 야영장으로 돌아왔는데, 갈수록 피로가 누적되면서 '아들 셋'은 서로에 대한 인내심이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 김창엽

▲ "피곤하다" 뉴욕에서 야영장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윤의와 병모. 뉴욕 탐방을 마치고 거의 매일 새벽 기차를 타고 야영장으로 돌아왔는데, 갈수록 피로가 누적되면서 '아들 셋'은 서로에 대한 인내심이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 김창엽

 

하지만 대평원을 가로 질러, 동부 해안 쪽에 접근하면서 '아들 셋'의 조화에 미묘한 변화가 읽혀졌다. 서서히 피로가 누적되고, 그에 따라 미세한 균열이 그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야 너희들 셋 정말 대단하다." 보스턴을 거쳐 워싱턴을 경유해 뉴욕으로 들어가는 동안, 두 세 차례 예의 계산이 다분히 깔린 말을 띄워봤다.

 

"…"

"…"

 "…"

 

병모와 윤의는 말이 없었다. 배려심이 돋보이는 선일이조차도 응답이 없었다. 제각각 시선을 따로 해 창 밖의 풍경을 보거나, 내 말에 대한 대답을 건너 뛰고, 어색한 상황을 빠져 나가려는 듯 다른 화제를 입에 올렸다.

 

우리들의 대륙 횡단여행은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하는 장거리 여객기에 올라탔을 때보다 최소 서너 배쯤은 힘든 것이었다. 차 안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비행기 이코노미 석보다 좁다. 게다가 서부에서는 살인적인 더위, 동부에서는 온몸을 끈적이게 했던 습도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대개 늦은 밤 장거리 주행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면 곧바로 텐트에서 한데 잠을 잤다. 대평원을 지나 동부 해안을 누볐던 열흘 남짓은 또 매번 비와 싸워야 했다. 짜증이 누적되고, 서서히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시간이 오고 있었다.

 

여건이 악화하면 '묶음'은 해체되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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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 인공적으로 조성된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세계 도시 공원의 표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곳도 밤 시간에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 ⓒ 김창엽

▲ 센트럴 파크 인공적으로 조성된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세계 도시 공원의 표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곳도 밤 시간에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 ⓒ 김창엽

주변 여건이 악화되면 모름지기 묶음이란 해체의 길을 밟게 돼 있다. 공동 보조를 가능케 한 유대의 끈끈이는 마치 물에 젖은 아교처럼 시나브로 힘을 잃고 만다. 가계 수입이 시원찮아 지고, 생활이 쪼들리면 부부는 더욱 강고하게 단합하기보다는 서로를 원망하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구성원들 앞에 선택의 여지가 놓여있다면, 이는 거의 어김없이 균열을 촉진하는 쐐기이자, 불화를 키우는 기름으로 작용한다. 갈등하는 부부가 딴 마음을 품을 만한 다른 남자 혹은 여자를 발견하면 갈라지는 것 더더욱 피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극도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 대륙 횡단의 동쪽 종착지, 뉴욕이 우리 '아들 셋'에게 그와 비슷한 곳이었다.

 

뉴욕은 '아들 셋'에게 서로 다른 유혹으로 다가왔다. 윤의는 애인 만들기 작업에 거의 혈안이 돼 있었다. 병모는 현장 실습을 나간 사회학자처럼 뉴욕을 뼛속까지 해부하려 들었다. 총을 맞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브롱스(Bronx) 등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까지도 섭렵하겠다고 누차 다짐하듯 말했다. 선일이는 뉴욕을 관광 삼아 즐기는 동시에 막 재미가 들린 야영 생활과 균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들 셋'의 뉴욕 도시 게릴라 전을 위한 산속 진지로 삼은 비버폰드 야영장은 점점 동지들의 근거지로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모두 11박 12일을 비버폰드 야영장에서 보낼 생각이었는데, 야영 생활에 어느 정도 정을 붙이는 건 눈치를 보아하니 선일이 뿐이었다. 윤의나 병모는 싸구려라도 맨해튼의 여인숙으로 거처를 옮긴다면 얼씨구나 할 태세였다.

 

술 같이할 마음도 예전같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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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악사 맨해튼은 거리의 악사들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멋진 음악을 연주하는 게 꿈인 윤의는 거리의 악사를 부러워했다. ⓒ 김창엽

▲ 뉴욕의 악사 맨해튼은 거리의 악사들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멋진 음악을 연주하는 게 꿈인 윤의는 거리의 악사를 부러워했다. ⓒ 김창엽

 

그러나 지갑 사정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 셋'은 비버폰드 야영장 근처에서 뉴욕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기차를 타고 계속해 직장인 출근하듯 했고, 또 기차 편으로 심야에 돌아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들 셋'이 동승하는 뉴욕행 기차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동상이몽'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뉴욕 공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아들 셋'의 뉴욕 게릴라 전에서 사실 나는 본 수입보다 더 큰 부수입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나는 도시가 갖고 있는 '파편화'의 마력을 직시하라는 거였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알아차리라는 거였다. 보아하니, 후자는 '아들 셋' 모두 확실히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필경 '인생이란 무엇인가'로 확대 발전될 것이다. 그게 이번 여행의 최대 소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한 흡인력으로 삶을 파편화하는 도시의 숨은 괴력은 일주일 이상의 뉴욕 게릴라전에서도 전혀 알아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는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면, 인생은 고달파진다. 그리고 뜻대로 일이 안 풀리면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매일 거의 새벽까지 이어지는 뉴욕 게릴라전이 분명 힘들기는 할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아들 셋'은 비버폰드 야영장에 들어온 뒤 일주일 사이에 서로 딱 한차례만 술자리를 만들었다. 몸도 피곤하지만, 서로 술을 같이 할 마음 또한 이전 같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한창 피가 끓는 나이인 '아들 셋' 사이의 미묘한 긴장에 촉각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언성을 높이는 싸움만 피할 수 있다면, '대단하다'며 그들 모두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그간의 여행 조건이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기에는 열악했다.   

덧붙이는 글 cafe.daum.net/talkus에도 같은 글이 올라갑니다.
#조짐 #불화 #균열 #뉴욕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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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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