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몇 년 만에 보는 신풍원이냐"

군산에 딱 하나 남은 중국집 간판. 그 집 ‘간자장면’ 맛은?

등록 2011.08.12 14:25수정 2011.08.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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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는 화교(華僑)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중식당만 한때는 40곳도 넘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4~5곳 정도가 명맥을 겨우 유지한다. 그중 70년대 초 '간짜장(간자장면)'을 마지막으로 발이 끊겼던 신풍원(新豊園)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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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자장면을 처음 사주었던 급우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던 검정 목간판 ⓒ 조종안


우리 마을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신풍원 부근에서 내린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등굣길이어서 걷기로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지지고 볶던 추억들을 되새겨보고 싶었기 때문. 구 군산역에서 창성동 아리랑고개(콩나물고개), 명산시장, 화교소학교, 명산사거리, 구 군산교도소를 지나 식당에 도착하니 검정 목간판(목판)이 가장 먼저 반겼다.

색이 하얗게 바랜 리본과 붉은 글씨의 '中華料理(중화요리)', 금빛으로 양각된 '新豊園'을 읽는 순간 "야~아 몇 년 만에 보는 '신풍원'이냐!"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간판이었기 때문. 중고등학교 총동창회 때 손을 흔들며 안부를 묻던 급우 이상으로 반가웠다. 

일반 전면 간판과 달리 아침에 걸었다가 저녁에 떼어 보관하는 검정 목판은 화교들이 신줏단지처럼 아꼈으며 옛날 중국음식점의 상징이요 '랜드마크'였다. 그래서인지 그 옛날 배고플 때 군침을 삼키며 맡았던 구수하고 향긋한 간짜장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철부지 아이들도 아빠와 걷다가 양반집 신부의 큰댕기 비슷한 자줏빛 리본이 장식된 검정 목판을 발견하면 "저기가 짜장면집이다!"라고 소리쳤다. 문맹자 노인들도 음식점 이름은 몰라도 자장면집인 것은 알았으니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목판에 얽힌 웃기는 추억도 있다. 학창 시절에는 급우들과 중국집 앞으로 지나가다가 목판에 머리를 부딪치면 짜증을 냈고, 앙갚음으로 들고 도망치며 중국집 주인을 놀리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누가 볼까 무서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아침에 걸어놓았다가 저녁에 들여놓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쥐불놀이하는 정월 대보름날 목판을 도둑맞은 중국집도 여럿 있었다.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이어서 어른이 훔쳐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신풍원 주인은 중군 산동성에서 건너온 여(呂)씨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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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원 주인 여항방 할아버지가 계산대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하얀 피부의 40대 아주머니가 하던 일을 멈추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한다. 계산대에서 신문을 보던 마른 체격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주인인 모양이었다. 

신풍원 주인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이 고향으로 세 살 때부터 일흔셋 되는 올해까지 70년을 군산에서 살고 있다는 여항방(呂恒芳) 할아버지였다. 20년 전부터 아들(46)·며느리(43)와 함께 끌어오고 있다는 여 할아버지는 손이 달릴 때는 배달을 나간다고.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부모가 서해바다를 건너 군산에 정착하여 삼학동 부근에서 채소농사를 지었단다. 여 할아버지는 해방(1945년) 후 몇 년 있다가 군산 화교소학교에 입학하였고, 6회로 졸업하고 중학교는 서울로 진학했다며 회상에 잠겼다. 

지금의 신풍원은 1966년 여동생이 지금의 자리에 가게를 개업할 때 도와주면서 요리기술을 배웠고 몇 년 후 인수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단다. 자녀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둘은 대만에 살고 있고 큰딸은 부부가 군산 삼학동에서 중국음식점(야연)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입구에 내걸린 검정 목판은 군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보기 어려운 귀한 물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니 소중히 보관해야 할 거라고 당부했다. 여 할아버지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다가 알아듣고는 깜짝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 웃었다.

"옆에 형무소 있을 때가 좋았어해"

신풍원은 군산 삼성아파트와 월명아파트 사이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을 '형무소고개'라 불렀다. 조선이 국권을 침탈당하기 직전인 1910년 7월 1일 월명산 아래에 들어선 군산 형무소(교도소)가 1988년까지 그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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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잠시 추억여행을 떠난 듯한 여 할아버지 ⓒ 조종안

여 할아버지는 귀찮게 하는 깡패들도 많았지만, 형무소 있을 때가 그래도 장사하기 제일 좋았다며 허허 웃었다. 부근에 군산상고, 군산고 등 중고등학교가 네 곳이나 있고 교도소 직원들과 교사들이 외상을 먹었기 때문에 월급날이면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고. 그 맛에 자전거 타고 배달 다니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신풍원이 들어서던 1966년에는 인근에 드문드문 들어선 마을 모두가 흙집이나 움막집에 사는 빈민들이 공터를 겨우 일궈 먹는 빈촌이었다. 도로도 좁은 2차선에 비포장이어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흙탕이 되었다. 그러니 교도소 직원과 학교 선생님들이 큰 손님이 될 수밖에.

"한두 사람은 그래도 괜찮어해. 열다섯 명이 와서 우리 집 자장면이랑 탕수육이랑 잔뜩 시켜먹고 한 사람 냉기고 다 도망쳤어. 그걸 어떻게 해···. 시계도 잡히고, 신분증도 잡히고, 옷을 잡히고 가는 사람도 많았어.(웃음) 실컷 먹고 돈 내놓으라고 겁주는 깡패도 있었어해. 그래도 옆에 형무소 있을 때가 젤 좋았어해···." 

여 할아버지는 50년 가까운 장사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표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 어이없어하는 웃음이었지만, 그래도 웃을 때는 부담이 덜했다. 혹시 손님이 맡겼던 시계나 주민증 등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느냐니까 얼마 전 모두 버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90년대 초부터 식당 일을 거들고 있다는 큰며느리는 노인 손님들이 찾아와 옛날 생각이 난다며 간짜장 먹고 도망간 얘기, 방에서 짓궂게 놀던 얘기, 그릇을 가슴에 숨겨서 나간 얘기, '한영사전'을 잡혔다가 어렵게 찾았던 얘기 등을 무용담처럼 해주어서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거들었다.

간자장면은 옛날 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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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한 묵은 김치가 따라 나온 신풍원 간자장면 ⓒ 조종안


신풍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개업했는데, 30원 하는 자장면도 특별한 날이나 사 먹던 시절이었으니 간짜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부잣집 급우가 사주어 맛있게 먹으면서도 그릇의 면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던 '간짜장'. 그 간짜장이 생각나서 한 그릇 주문했다.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며느리를 통해 주방으로 전달되었고, "예~에!" 소리와 함께 돼지고기, 양파, 호박 등을 넣은 춘장 볶는 소리가 들렸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조금 긴장이 되었다. 국자로 프라이팬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한 타악기 연주처럼 들리더니 조금 있으니까 먹음직한 간자장면 상이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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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비벼놓은 간자장면.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어지네요. ⓒ 조종안


볶은 자장을 따로 달라고 해서 내가 직접 비볐다. 중국집 간짜장 특유의 고소한 향이 추억의 향수와 함께 침샘을 자극했다. 맛도 담백하면서 개운했다. 적당히 볶은 불 맛까지 더했고, 면발도 쫄깃해서 옛날 느낌이 살아 있었다. 뒷맛은 개운한 묵은 김치가 해결해주었다.

골백 번 듣고 아무리 맛있게 상상해도 구경하면서 냄새로 맡는 것보다도 못한 것. 그러니 시간 날 때 한 번 들러보시라. 군산 신풍원 간자장면 맛이 어떤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는데, 4500원이란다. 값도 다른 간자장면보다 착한 편이었다.

간자장면을 맛있게 먹고 나오면서 여 할아버지와 며느리에게 맛있게 먹고 간다고 인사하면서 재차 당부했다.

"밖에 걸어놓은 '신풍원' 목간판 소중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군산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물건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신풍원 #간자장면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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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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