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쌓아놓고, 졸업생에 10만원 '구걸'

[取중眞담] 근로장학생 동원 '벼룩의 간' 빼먹는 성균관대학

등록 2011.07.18 15:25수정 2011.07.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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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 총무과 근로장학생 ○○○입니다. 졸업생 홍현진 선배님 맞으신가요?"
"저, 지난번에 전화 받았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선배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저, 아직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았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선배님. 다음 번에 돈 많이 버셔서 도와주십시오."
"아니, 삼성은 어쩌고 졸업생한테 이러세요(웃음). 적립금 쌓아놓은 건 또 어쩌고."
"그러게요. 선배님(웃음)."

며칠 전, 02-760으로 시작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난 2009년 여름 졸업한 대학교였습니다. 근로장학생은 학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재학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뭘 이렇게 도와달라는 걸까요? 이야기는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배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텔레마케터' 된 근로장학생  

6월 말, 같은 대학 졸업생이기도 한 입사 동기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너한테도 학교서 전화오겠다. 장학금 내게 돈 달라고. 10만 원 내면 연말에 나라에서 돌려준대."

며칠 후, 정말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앳되게 느껴지는 남학생은 제게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주셨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장학금 10만 원을 내주시면 30만 원 상당의 찻잔을 선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중간에 그냥 끊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남학생의 '민망함'이 그대로 전해져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남학생이 준비해 놓은 멘트를 또박또박, 긴장된 목소리로 모두 읽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저도 아직 학자금 대출금 갚고 있어서요"라고 말하자 남학생은 약간 당황한 듯 한 목소리로 "아, 그러세요. 선배님. 선배님도 힘드시겠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이어 제가 '근로장학생 같은 거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하더군요.


측은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근로장학생이라고는 하지만, 학교에서 재학생들에게 '텔레마케팅'을 시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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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 ⓒ 성균관대학교


무엇보다도 '번지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졸업한 성균관대학교의 2009년 현재 적립금 보유액은 약 1153억 원에 달합니다. 2001년 당시 적립금이 약 663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약 490억 원이 증가했습니다. 적립금 대부분 등록금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적립금 가운데 등록금을 위해 사용되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6월 8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성균관대가 등록금을 남겨 적립금으로 쌓은 액수는 187억 원이 넘는 반면, 적립금에서 등록금으로는 한 푼도 전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곳간'만 계속해서 채우고 있는 거죠.

이러한 가운데 성균관대 올 한 해 평균등록금은 지난해에 비해 3%가 오른 850만8200원이 되었습니다. 한 학기 400만 원이 넘는 돈을 등록금으로 내야하는 거죠. 아참, 학부에 비해 높은 수준인 4.2%가 인상된 성균관대 대학원생들은 "높은 등록금으로 인해 교육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위에 진정을 내기도 했습니다.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한 학기 등록금은 약 475만 원이라고 하네요.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을 재단으로 두고 있지 않느냐고요? 그럼 뭐합니까. 2010 회계연도 교비회계 결산 자료를 보면 성균관대 등록금 의존율은 57.3%입니다.

한 가지 더, 성균관대는 지난 2009년 '토건비용'을 가장 많이 쓴 대학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토지, 건물매입, 건축비 등을 합쳐 579억 원을 썼지만 이 가운데 재단 지원금은 105억 원이었습니다.

'어려운 후배들 위해 장학금 좀 달라'? 벼룩의 간을 빼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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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넷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6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 회동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재학 시절 내내 저는 학점공시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서울 유학생활까지 해야하다보니 성적장학금을 꼭 받아야만 했거든요. 장학금 커트라인이 높은 과의 특성상, 4점(4.5만점)이 넘는 높은 학점을 받았는데도 성적장학금을 놓친 적도 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8학기 등록금 중 절반 정도는 장학금으로, 절반 정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납부했습니다. 그 덕에 졸업할 때 쯤 '빚'이 1000만 원쯤 되더군요. 

생활비를 벌어야 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도 쉴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입학 이후, 한 달 이상 일하지 않고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1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하기 직전까지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니까요.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 좀 달라'는 두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런 걸 보고 있는 놈이 더한다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다른 동기들도 전화를 받았을까.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답이 왔습니다. 

"한 1년 전? 전화 왔던데. 그 뒤로는 02로 오는 거 안 받았어.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내가 도움 받을 처지 ㅠㅠ." 

1000억 넘는 돈은 다 어쩌고...

성균관대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홍보팀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학교 차원에서 "텔레마케팅"(홍보팀 관계자가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을 하는 건 아니고 총동창회에서 학교발전기금 유치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총무과가 협력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전화는 무작위로 걸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기사를 쓰기 전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 저와 통화한 근로장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근로장학생을 위해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곳간'에 있는 1000억 원이 넘는 돈은 어쩌고, '어려운 후배'들 장학금을 '어려운 선배'들한테 내라고 하는 걸까요. 그것도 '어려운 재학생'들 '구걸'까지 시켜서 말이죠. 표현이 좀 심했나요? 제가 느낀 두 번의 전화는 '구걸'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아마 그 친구들도 예전의 저처럼 '남의 돈 버는 게 참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겠죠. 그렇게 일해 봤자,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테고요.

그런데 말이죠. 성균관대학교가 정말 '학교'라면, '텔레마케팅' 이전에 '미친 등록금' 문제 해법부터 고민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그게 '어려운 후배'에게도, '어려운 선배'에게도 정말로 시급한 일 아닐까요.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 #등록금 #장학금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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