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와 싸우려면 1:1로 붙으라고?

[해외리포트] 무산된 미국 최대의 집단소송

등록 2011.06.22 20:12수정 2011.06.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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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주 보이지 시에 위치한 월마트 매장 전경. ⓒ 이유경


"하나님이 이브보다 아담을 먼저 만들었거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월마트 지점에서 일하는 캐서린 맥도널드가 상관에게 왜 그녀의 남자 동료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지 묻자 나온 대답이었다. 그녀는 "남자 직원들은 그것(보수를 더 많이 받는 것)을 대놓고 자랑한다!"고 말했다.

스테파니 오들도 같은 경험을 얘기했다. 1996년 당시 막 싱글맘이 된 그녀가 상관에게 왜 같은 직급의 남자 동료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지 묻자, "(그는) 아내와 두 명의 자식을 키우고 있으니까"라는 대답을 들었다. 

크리스틴 카왑노스키는 한 남자 매니저가 여자 직원들에게만 소리를 지르고, 자신에게는 "인형처럼 꾸미고" 화장을 잘 한다면 더 좋은 승진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얘기했다.

클레오 페이지는 고객이 남자가 파는 스포츠 용품을 사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얘기를 월마트에서 들어왔다고 얘기했다.

월마트를 향해 집단 소송을 벌인 원고들은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경력도 짧은 남자 직원들이 더 빨리 승진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미 연방 대법원의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20일 판결문에서 이런 여러 일화들이 "1만2500명의 집단 소송원들 중 일부의 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2004년, <여성을 공매(空賣)하기: 월마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기념비적인 싸움(Selling Women Short: The Landmark Battle for Workers' Rights at Wal-Mart)>의 저자로 유명한 리자 페더스톤은 월마트의 인적 자료를 살펴보면, 원고들의 그같은 하소연이 과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여자 직원들은 남자 직원들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더라도 더 적은 보수를 받고, 더 늦게 승진을 하며, 더 빨리 회사를 관두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칼리아 판사는 판결문에서 보수 및 승진의 차이를 나타내는 자료가 많은 원고들이 모두 공통적인 문제, 즉 성차별을 겪었다는 증거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지점에서 나타난 통계자료가 전국적인 차원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월마트 소송이 기각됐음을 알리는 인터넷신문 <허핑턴 포스트>. ⓒ 허핑턴 포스트


원고 160만명... 미 역사상 최대의 인권 집단소송 될뻔

'베티 듀크 대 월마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인권 집단 소송으로, 듀크를 필두로 한 원고측은 지난 2001년 월마트가 보수 및 승진, 그리고 고용 등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왔다고 월마트를 고소했다. 이 소송에서 듀크는 원고측이 월마트의 전-현직 여직원을 대변할 것이라 했고, 따라서 원고의 수는 잠재적으로 약 1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그리고 지난 20일, 미 연방 대법원은 그같은 대규모의 집단 소송이 가능할 수 없다며 사건 자체를 기각한다고 만장일치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또한 집단 소송에 대한 금전적 보상의 방식으로 원고가 'back-pay'(소급분 급여 또는 체불 임금)를 선택한 것도 적합하지 않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원고들이 그간 월마트로부터 받았던 구조적 차별때문에 제대로 받지 못했던 급여를 월마트로부터 다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단, 집단 소송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대법원 판사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었다.

9명 중 5명의 보수성향 판사들을 대변해서 스칼리아 판사는 다수 의견서에서 하나의 고용주를 향해 전국적 단위의 집단 소송이 이뤄지려면, 원고는 그 집단이 전국적 단위에서 어떤 손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재판부는 그러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으며, 특히 미국 50개 주에 걸쳐있는 3400여 개의 월마트 지점에서 160만 명 개인 모두가 동일하게 직장 내에서 성차별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미국 최대의 고용주인 월마트가 차별을 금지한다는 정책을 공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월마트같은 규모와 지역적 분포를 가진 회사에서, 모든 매니저들이 어떤 공통의 방향없이 그들 나름대로의 재량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가 된 이번 소송에서, 원고측의 주장대로 이번 소송이 집단 소송으로 간주된다면, 월마트에게는 매우 부당한 일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월마트는 150만여명의 잠재적 원고들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를 증명하지 못할 때에도 손해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진보 성향의 판사 4명을 대표한 긴스버그 판사는 집단 소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월마트를 고발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수 의견이 너무나 극단적이므로, 그 주장대로라면 앞으로는 거의 어떠한 집단 소송도 가능할 수 없을 것이라 비판했다.

그녀는 또한 원고가 제출한 통계와 원고 개인들이 한 일화들을 통해, "성차별이 월마트의 기업 문화를 뒤덮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긴스버그 판사는 시간당 노동자의 70퍼센트를 여성이 채우고 있고, 관리직의 단 33%만이 여성 직원들에게 돌아갔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이어서 그녀는, "(감독자의 재량을) 제어할 공식적인 기준도 없이, 감독자에게 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재량을 주는 관행은 옳지못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졌다. 매니저들은,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알지 못하는 편견의 제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원고측 증인으로 나온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윌리엄 비엘바이 사회학과 교수는 월마트의 기업문화, 특히 중앙 집중적인 인사 정책과 현장 매니저들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을 허용하는 문화가 보수 및 기타 차별의 원인이 된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긴스버그 판사도 역시 수많은 원고들을 하나로 묶을 만큼의 공통된 이슈가 없는 까닭에, "법원은 시작에서부터 집단 소송의 위치를 불허한다"고 재판 결과를 설명했다. 한편 그녀는 원고측 변호인들이 조금 다른 전략을 취했더라면 원고의 집단 소송이 재판부로부터 승인을 받았었을 수도 있다고 소수 의견서에 적었다.

"대법원 판결에 박수" - "더 많은 집단소송 일어날 것"

월마트는 이날의 승리에 대해, "(법원의) 다수 의견에서 명확히 했듯이, 회사 전체에서 보수 및 승진 정책에 차별이 있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젤 루이즈 부회장의 말을 빌어 평가했다. 그는 또한, "월마트는 우리의 여성 직원들에게 나은 기회를 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미래의 여성 지도자를 양산하는 확실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고 나섰다. 미 상공회의소 소송센터의 로빈 콘라드 부회장은 "기업이 가치없는 소송을 해결하는 일, 아니면 금전적 피해에 직면하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너무나 자주 집단 소송 장치가 왜곡되고 남용돼왔다"며, "법원이 이번 건과 같은 거대규모의 집단 소송을 연방법에 전혀 맞지 않다고 확언해준 것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20일 <뉴욕 타임스>는 이번 판결로 성별 및 인종 등의 차별을 확인하는 대규모의 야심찬 집단 소송은 더욱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 원고측 법정 대리인들은 앞으로 보다 작은 규모의 집단 소송, 아니면 개인 위주나 소규모 단체를 위한 소송을 담당할 것이라 예상했다.

전미여성법센터(National Women's Law Center)의 마르시아 그린버거 공동 회장은 "(법원의 결정이) 작업장, 특히 대규모 회사에서 차별에 직면해있는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며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 원고측을 대변한 변호인 중 하나인 조셉 셀러는 오히려 이번 판결의 결과 더 많은 집단 소송이 지점 차원에서, 또는 지역 단위에서 일어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성별 또는 나이에 대한 차별 행위가 더 쉽게 증명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판결이 원고 뿐 아니라 월마트에도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수많은 소송이 생겨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월마트 소송에서 원고인들을 대표했던 베티 듀크의 모습. ⓒ 뉴욕 타임즈


월마트를 상대로 각자 혼자 싸우라고?

사실 '듀크 대 월마트' 사건은 처음부터 월마트의 조직적인 성차별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 지난 2001년부터 법원은 이 사건이 집단 소송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만을 놓고 재판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대법원 재판이 결정된 지난 3월, < CNN >의 법률 분석가인 제프리 튜빈은 "보수 성향의 판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대법원에서 이 소송이 집단 소송으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예상됐던 터다.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노조의 설립을 허락해 본 적이 없는 월마트. 2001년, 13개의 법적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약 6백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사용한 바 있는 월마트가 만약 이번 재판에서 원고측에게 패배했다면 월마트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물어야 할 뻔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들의 대표였던 베티 듀크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의 피츠버그에서 목회활동을 한다. 그녀는 7년전 페더스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월마트의 여성들은 법원에서 우리들의 날을 맞을 것이며 월마트는 우리의 요구에 답을 해야한다. 그들은 우리를 부당하게 대했지만, 우리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만 했다고."

듀크는 교회 설교시간에 신자들에게 그녀 스스로가 수년 간 겪고있는 '다윗과 골리앗'의 얘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신자들 스스로도 자신이 처한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끌어왔던 지리한 싸움에서 듀크를 비롯한 '월마트의 여성들'은 아직 '우리들의 날'을 맞지 못했고, 미 연방 대법원은 골리앗인 월마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뿐 아니라, 여러 다윗들이 힘을 모아 집단으로 싸우는 것조차도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허용하지 않았다.

월마트에 불만이 있으면, 집단으로 나서지 말고, 개인이 한 명씩 따로 나서라는 뜻인가? 그런데 과연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거액의 돈을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유능한 변호사들이 즐비한 월마트와 노동자 개인의 싸움이?

2001년 이래 하급 법원에서 베티를 비롯한 원고들은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월마트는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항소를 거듭해왔다. 심지어 월마트쪽 변호인들이 회사에 합의를 권유했지만 월마트는 연방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 투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과연, 월마트처럼 싸울 수 있는 개인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때문에 직장내 차별을 입증할 수 있더라도 노동자 개개인이 월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긴 매우 힘들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입증할 수는 없어도 직장내 성차별 때문에 고통을 겪어왔을 여성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을지까지 고려한다면, 이번 재판부의 판결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며, 무엇보다 미국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월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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