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마키아벨리를, 노무현은 맹자를 따랐다

[서평] 불편한 진실, 마키아벨리 <준주론>

등록 2011.05.27 20:20수정 2011.05.27 20:20
0
원고료로 응원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지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며, 무엇보다도 국민 모두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까지 의무 무상교육을 실시하겠으며, 노후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겠습니다."
"나는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당신에게 줄 수 없소."

맞는 말이다. 이런 사람 대통령 시켜 놓으면 그 나라는 분명 퇴보할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국민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이 있는데, 이를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난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모두 가난해지면 된다. 그리고 대학교까지 의무교육과 노후대책에 대한 국가재정은? 이 또한 해결방법은 부(富)를 쪼개어 빈(貧)해지는 수밖에 없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공산주의가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나의 아들을 거지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나의 자식들을 평등하게 키울 수 있다. 대학교까지 교육시킬 수 있다. 아들 때문에 노후를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으로써 또는 자식으로써의 그리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같은 남자지만, 대통령과 아버지의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동일하다. 가정과 국민의 행복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들이, 즉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민주주의국가다. 여기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공적인 삶에서 도덕 문제를 놓고 열정적이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덕적 신념이 이성과 무관하게 가정교육이나 신앙으로 정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중략)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제쳐두고, 모든 시민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만을 내세워야 한다.<마이클 샌덜 "정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a

마이클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표지 ⓒ 허관


마이클 샌델은 아주 조심스러운 학자다. 그의 명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정의를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루소, 존 로크, 칸트, 흄, 아리스토텔레스 등 지나간 유명한 사람들의 말들을 인용하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면서 독자의 사고를 끝없이 확장시킨다.

그러다가 책 말미에 "정의란 어떤 이는 공리의 행복 극대화를, 어떤 이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어떤 이는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조심스럽게 내세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나 사회, 또는 온 인류의 선"이라 정의한다. 온 인류의 선? 다시 딜레마에 빠진다. 왜 이리 인류의 정의는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고 확실한 개념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진실에 대한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진실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다보면 많이 불편하다. 하지만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화자가 되는 고전이다. 왜 불편할까. 그리고 왜 불편함을 느끼면서 500여 년 동안 읽혀왔을까. 그 이유는 솔직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정신을 이끈 철학자들의 주장은 이성의 범주에서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인간사를 해석하려고 했다. 마이클센델처럼 말이다. 당연히 이성과 현실의 갭 속에 갇힌 평범한 시민은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 각자의 삶이란 그렇지 못하다. 이성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인간도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가려진 인간의 본 모습을 보는 것이 당연히 불편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행동강령을 인간의 이성을 배제한 인간의 본 모습을 역설했기에 불편한 것이다.

a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허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마키아벨리 "군주론" 중에서>

최근 정치인들을 두고 자주 쓰는 "국민의 소리 경청"이니, "민심"이니 하는 말과 거리가 멀다. 민심과 멀기에 민주주의와도 상반되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포장 하지 않고, 익히지 않은 싱싱한 현실적인 통치를 제시하는 책이다.

실제로 군주론이 서양 근대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특히 "철혈정책"으로 독일을 통일하여, 현재의 독일을 만든 비스마르크가 대표적이다. 비스마르크는 한나라의 총리이면서도 읽는 이에게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 <군주론>를 예찬했다.

정의 또는 공동선 또는 인륜 등 언 듯 듣기에는 좋지만, 고심해보면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서 다시금 생각해야하는 말이 아닌, 구체적이고 쉽고 확실한 언어로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그리고 현실의 정치에서도 이와 같이 하고 있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하고 공동선, 정의로 포장했다. 하지만 솔직한 이면을 자세히 보면 미국인의 마음에 마키아벨리가 숨어있다.

현명한 잔인함은 전정한 자비다.(중략)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마키아벨리 "군주론" 중에서>

<군주론>은 불편하다. 거울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솔직한 책이 분명하다. 아름다운 옷과 화장을 다 지운 자신의 육체를 보는 것처럼. 군주 개인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정확하고 사실적인 진실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불편하면서도 지금까지 읽히는 고전이 된 것이다. 일부 지인들은 한 조직의 리더가 될 경우 어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좋은 지침서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

박정희는 마키아벨리를 노무현은 맹자를 따랐다

맹자의 왕도사상은 백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역성혁명론이다. 즉 군주의 신분은 하늘이 내려준 것으로 여기고,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백성은 왕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행동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성선설이다. 예를 들면, 우물가에 놀던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면 무의식중에 구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군주론은 성악설을 바탕으로 한다. 성악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악이라 여기는 사상이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박정희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군사독재, 유신정권 등 군주론에 말했던,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라는 취지아래 추진했던 철권정치를 동경하는 것이다. 왜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발전 일 것이다. 2차 대전 후 원조 받던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급속하게 발전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에 두었을 때, 우리나라 국민은 행복할까. 5월 2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34개 회원국 중 26위로 자신을 별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은 3년 연속 행복지수가 꼴찌였다.

세계경제 10위권 경제대국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문화지체현상으로 본다. 문화지체란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이<사회변동론>에서 주장한 이론이다. 문화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문화변동의 속도도 이 두 가지 영역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한쪽이 상대적으로 뒤쳐져 생겨난 문제를 다룬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물질적인 부분은 발전했는데, 상대적으로 비 물질 적은 부분, 즉 문화 의식 등이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한 사회적 부조화현상이 발생했다. 즉 문화지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물질적인 면은 풍부해 지는 반면, 의식은 여전히 농경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맹자처럼 자발적으로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사회변화가 이루어 졌다면 문화지체현상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보면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식이었다. 국민들이 국가 정책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국민을 이끌면서 국가 정책을 주도해 갔다.  

그러다가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통치자를 선택했다. 노무현의 통치이념은 소통하는 열린 정부를 지향하며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의 4대 국정 원리를 국가 운영의 기본방침으로 정하고 추진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변화에 때론 자율과 방종을 구분 못하고, 원칙은 각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집으로 변하고, 보편적이어야 할 공정의 잣대를 개인 각자 스스로 만들고, 투명한 정치는 집단적 행동인 포퓰리즘에 빠지고, 대화를 하여 타협은커녕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박정희를 그리워했고, 끝내 국민은 박정희와 유사한 현 정부를 선택했다.

끝없이 발전하는 역사의 진보론에 반대하며, 독일의 역사학자 슈펭글러는 역사 순환론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현대의 정치사를 봐도 순환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진보도 한다. 그런데 왜 진보만 하지 못하고 순환할까.

새로운 형태의 정부수립을 주도하는 행위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 인물에 반대하기 때문이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중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과연 정치에 철학이 있을까. 역사 속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인류의 위대한 사상들을 자기들 편하게 이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려의 불교를 숭상하는 정책이었고, 조선의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받드는 정책이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위대한 사상도 정치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낮 수단에 불과했다. 맹자보다 마키아벨리가 더 믿음이 가는 이유다.

정의란 무엇인가 (리커버 특별판)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의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2014


#군주론 #대통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