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이 빨가면 암에 걸린다기에...

등록 2011.05.20 20:01수정 2011.05.2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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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이던가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손금으로 암에 걸릴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손금이 작은 섬같은 모양을 하면 암에 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작진은 암 치료를 받았거나 암 투병 중인 환자들의 손금을 보도록 했고 그들의 손바닥에는 섬 모양의 손금이 이었습니다. 제작진 중 한명의 손바닥에도 섬이 있었고 건강검진 결과 만성위궤양 진단을 받았지요. 방치할 경우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진단을 한 의사는 그런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요.

손바닥에 섬 모양의 손금이 있으면 암에 걸리는 체질이라는 주장에 대해 의사들은 전혀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근거없는 말이라고 일축하더군요.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20여년전 새댁시절에 남편의 한달치 월급을 털어 방문판매원에게 건강보조식품을 샀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얼마 후 집에 있는데 누군가 현관을 두드리더군요.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라 문을 열어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너무너무 목이 마르니 물이나 한잔 먹고 가게 해 달라더군요.

모른 체 하기에는 너무 야멸찬 것 같아서 살짝 문을 열고 물 한잔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고맙다며 답례로 건강을 체크해 준다며 손을 잡더군요. 제 손을 잡고 이리저리 만지던 아주머니는 혹시 집안에 암에 걸렸거나 암으로 죽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희 엄마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터라 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새댁의 손바닥을 보니 몸에 열이 많아 나중에 암에 걸리겠다면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그러더라구요. 지금이야 완치율이 높아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음으로 인식되던 때라 덜컥 겁이나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아주머니는 제손을 펴더니 자신의 엄지로 제 손바닥을 꾸욱 누르셨습니다. 손바닥은 순식간에 하얗게 됐다가 금방 붉으스름한 빛을 띠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몸에 열이 많은 때문이고 그 열을 잡아주지 않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며 체질을 바꿔 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체질을 바꿔 주지 않으면 엄마같이 암으로 죽을 수 있다는 말에 겁이 나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암으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런 저를 붙잡고 한참을 뭐라뭐라 하시던 아주머니는 무슨 책자를 내미시며 이 약을 먹으면 체질이 바뀌어서 암에 걸리지 않는다며 꼭 사야한다고 권하셨습니다.

그 약의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남편의 한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제게 그런 큰 돈이 있을 턱도 없었고,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혼이 날 것 같아 망설이니 아주머니 왈 "살고 죽는 일에 남편 눈치 볼 것이냐"며 "지로로 할부도 가능하고 2년간 나눠내면 부담도 없을 것이고 숨겨 놓고 먹으면 남편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도 어린데 엄마가 없으면 되겠냐시더라구요.

그 말에 지름신이 강림하시더군요. 그래서 확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금방 약 한상자를 가져오시더라구요. 표면에 꿀벌과 벌집 모양의 사진이 있는 상자였습니다. 들여다보니 프로폴리스라는 글자가 눈에 확 띄더군요. 그 상자의 모양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머니가 프로폴리스에 대해 여왕벌이 먹는 로얄제리의 성분 어쩌구 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가 안을 보여주신다며 상자를 뜯고 하루라도 빨리 먹어야 한다며 한 알 먹여주시는 바람에 반품을 할 수도 없게 되었지요.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새댁이어도 뜯은 상품은 반품할 수 없다는 것은 압니다.  

남편에게는 차마 내 몸보신을 위해 남편의 한달치 월급을 털어 약을 샀다는 말을 하지 못해 침대 밑에 숨겨 두고 야금야금 먹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어느날 덜컥 들키고 말았지요. 남편에게 혼이 날까봐 두려운 마음에 "이거 안 먹으면 암에 걸려서 죽는데..."라며 엉엉 울어버렸죠. 남편, 아무 말도 않더군요.

그리고 얼마 정도 지났을까요? 텔레비젼에서 건강보조식품이 의약품으로 둔갑돼 원가보다 훨씬 부풀려진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며 대표적인 식품으로 프로폴리스가 함유된 건강식품을 꼽더군요. 건강보조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라는 말도요. 건강보조식품도 유행이 있잖아요. 당시에는 프로폴리스가 유행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탁 막히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내 무지를 탓 할 수 밖에. 그 이후 그 약은 남편과 같이 나눠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비싼 수업료를 치룬 덕에 그 이후 상어의 간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스쿠알렌이며 게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키토산 등의 건강보조식품 먹기 열풍이 유행처럼 번질때 저는 그 열풍을 피해 갈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가끔 요즘 유행하는 오메가3 등등의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보면 슬며시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참 누르면 하얗게 되었다가 다시 붉으스름해지는 손바닥은 어떻게 됐냐구요? 지금도 그래요. 그리고 그런 사람 많더라구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암 #건강보조식품 #스쿠알렌 #프로폴리스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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