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들까지 고연전을 벌여야 하나?"

[현장] 고대·연대 청소노동자들, 전면파업 2-3일째 맞아

등록 2011.03.31 20:48수정 2011.04.0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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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로 연고전을 하고 있다'며 부끄럽다는 반응도 있다."

3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에서 만난 황유나(24)씨의 말이다. 그동안 홍대를 시작으로 경희대, 그리고 고려대와 연세대가 연대해서 투쟁했던 이화여대까지 협상이 타결됐지만, 정작 고려대와 연세대는 아직도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염두에 둔 얘기다. 

홍익대는 임금을 시급 4450원에 고용승계와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성과를 올렸고 이화여대는 지난 27일 시급 4600원(월급 96만1400원)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다른 학교에서 협상이 진전되는 것과 달리 고려대와 연세대는 아직도 해결책을 못찾고 있다. 이들 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은 각각 3일째와 2일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고려대] 전면 파업 3일째... "우리 해결될 거라 믿고 있어"

"(협상이) 빨리 돼 가지고 해결을 봐야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늙은이들인데 여기에 있으면 병만 걸려. 하지만 지금 손을 놓을 수는 없어 걸어 다니지 못한다면 놓겠지만 학생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그래. 우린 해결이 될 거라고 믿고 있어."

고려대에서 청소용역노동자로 근무하는 김효순씨는 희망을 내비췄다. 함께 연대 투쟁했던 이화여대와 고려대 병원이 지난 25일 용역업체와 협상을 타결한 상황이어서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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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서경지부 고대분회장이 고려대 비상학생총회 무대에서 연대발언을 하고 있다. ⓒ 이선필


지난 29일 전면파업에 돌입한 후 3일째인 31일, 현재 고려대 용역업체인 에프엠테크와 청소노동자측은 최대 쟁점인 시급인상 부분과 상여금 문제를 두고 협상하고 있다. 고려대 본관 앞에서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한 청소노동자는 "시급 문제도 (5180원에서 4600원으로)우리가 많이 양보했으니 오늘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며 기다려보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협상이 난항인 이유와 관련, 이영숙 공공노조 서경지부 고대분회장은 "홍대는 170여 명의 해고문제가 걸려 있었고 그에 따른 여론의 확장도 있었다"며 "고대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올려 달라는 차원이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분회장은 "이미 노조 발전기금, 산재기금 등의 주요 단체협약은 합의된 상태고 이젠 임금과 상여금 문제만 합의하면 된다"며 타결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면서도 "업체 측과 협상이 안 될 경우는 끝까지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우린 절박 합니다"... 노동자 거리행진, 학생들은 비상총회 

이날 오후 1시 청소용역노동자들과 학생 간의 연대 행사가 열렸다. 오후 1시엔 약 250여 명의 노동자들이 고려대 이공계 캠퍼스 정문에 모여 인문계 캠퍼스까지 거리행진을 했으며 오후 2시 인문대 중앙광장에선 총학생회 주최로 비상학생총회가 열렸다. 등록금 문제 해결 등이 담긴 10대 요구안엔 청소노동자들의 권리 보장도 포함돼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이공계 캠퍼스를 걸으며 "등록금은 내리고 생활임금은 올려라"고 외쳤다. 15분 동안 진행된 거리행진에서 이들은 학생들과 거리의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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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시 반 경 고려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학생들과 함께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이선필


행진을 지켜보던 고려대 10학번인 김건호씨은 "최저 임금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고 이런 시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말했다. 반면 전기전자공학과 10학번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임금인상은 찬성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며 "학교와 계약 업체의 관계인데 학교 안에서 투쟁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한편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오후 5시 무렵까지 진행된 비상학생총회는 정족수인 1516명을 훨씬 넘는 2000여 명이 모였다. 이로써 청소용역노동자 권리문제를 비롯한 학생들의 요구안을 가지고 학교 측과 공식적으로 논의할 장이 열린 셈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 '민족 고대'가 아닌 '자본 고대'"

고려대 학생들은 대체로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있었다. 문과대 4학년이라고 자신을 밝힌 김민재씨는 "노동자들이 파업하시면서 교정이 좀 더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희대 사례처럼 문제가 잘 해결되면 좋겠지만 학교 측도 돈을 내는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우리학교가 민족 고대라고 하지만 요즘 보고 있자니 민족 고대가 아닌 자본 고대 같다"고 꼬집었다.

심리학과에 재학 중인 이설현씨는 "학교가 등록금으로 학생을 뽑아먹고 임금문제로 노동자를 뽑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관심하면 했지 (파업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보지 못했다"며 "사태가 좋게 해결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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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열린 비상학생총회 현장. 한 청소노동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 이선필


이번 파업에 연대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공공노조 서경지부 측은 학교측의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권태훈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국장은 "학교 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고 용역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미루는 것은 비겁한 처사"라며 "간접고용이라도 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감독 책임이 학교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고려대 본관 건물 안에 있어야 할 학교 직원들은 집기를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며 아무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총무과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학교측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통화를 피했다.

또한 권 조직국장은 사태 해결이 더딘 이유와 관련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며 "아쉬운 대로 4600원에 합의를 보고 있지만 우선은 각 학교들이 임금 수준부터 맞추는 게 일차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급이 올라야 그에 연동해 다른 부분들도 개선될 수 있지 않느냐"며 "사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은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할 동력을 키우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31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용역업체와 청소용역노동자 간의 협상은 오후 1시에 1차 휴정 후 오후 4시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교섭 난항 겪는 가운데 학생들 자발적 지지 뜻 모여

지난 17일, 연세대와 청소용역 계약을 맺은 다섯 개의 업체(장풍·제일휴먼·대주HR·캡스텍·연학산업) 중 두 곳의 여성 청소용역노동자 휴게실에 종이 한 장이 나붙었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퇴근한 늦은 오후에 용역업체 직원이 붙인 것이었다. 그 종이에는 "불법 행위에 대해 고소·고발 조치를 취할 것이며 노사협상의 결과에 상관없이 이를 취하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 박명석 공공노조 서경지부장은 "남성인 용역업체 직원이 한밤중에 (여성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무단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업체 측이)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진근(58)씨는 3월 중순 자신을 고용한 용역업체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쓰레기더미를 통로에 갖다 둔 것을 CCTV로 확인했다며 이것이 학생들에게 불편을 주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몇 년째 분리수거를 위해 그렇게 해 왔다"고 항변했지만, 용역업체는 "고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냐"며 재차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김씨는 "(다른 것보다) 제일 자존심이 상했다"고 그 날을 회상했다.

파업 이틀째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들, "학교와 용역업체가 먼저 사과해야"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한 5개 용역업체 소속 380여 명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이 파업 이틀째를 맞이했다. 8일과 14일의 부분파업에도 용역업체와의 교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사용자인 연세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며 전면파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연세대 본관 앞에서 만난 청소용역노동자들은 앞서 언급한 사건들과 관련해 이구동성으로 불편한 심경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각자 학교와 용역업체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본관 앞 잔디밭에 앉아 있던 청소용역노동자 김금례(64)씨는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2월 중순에 물청소를 하던 중 미끄러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재 처리가 되어 4월 말까지는 일터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함께 일하는) 엄마들이 고생하는데 내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사회에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한다. 잘난 사람만 있다면 험한 일은 누가 하겠나"라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파업까지 하게 만든 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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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이 본관 건물 앞에 모여있다. ⓒ 이미나


본관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전무영(64)씨는 "최고의 지성인을 길러낸다는 대학에서 어느 정도 우리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은가"라며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학교 당국과 용역업체에 섭섭하다"고 했다. 전씨는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며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54세의 한 여성 청소용역노동자는 "(파업 때문에) 며칠 여자 화장실 청소를 안 했다고 소장과 업체 관계자가 사진을 찍어갔다"며 "우리가 (시급을) 많이 올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200여 원 더 달라는 건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청소용역노동자들과 함께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황유나(24)씨는 "용역업체에서는 (학교로부터)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임금 인상 등을) 결정할 수 없다고, 학교에서는 직접 (청소용역노동자를) 고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황씨는 "(노동자들을) 대화 상대로 생각한다면 (학교와 용역업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했다"며 "(학교와 용역업체의) 공식적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학생들, 다양한 반응 속 자발적으로 건물 출입구에 쪽지 붙이기도

연세대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파업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던 한 남학생은 "용역업체와 노동자 간의 계약인데 (문제를) 학교에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이해하지만 이것이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걱정했다.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에 현장에 직접 와 보고 싶었다는 김민석(21)씨는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김씨는"당장 (학생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건 맞지만 그 분들은 더 오랜 기간 동안 큰 불편을 겪어오지 않았냐"라며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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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게시판에 연세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게시물들이 붙어있다. 게시물들은 인문관뿐만 아닌 다른 건물 곳곳에도 붙어 있었다 ⓒ 이미나


연세대 인문관인 외솔관 출입구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쪽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모두 청소용역노동자들에 지지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그 중 '어느 부끄러운 04학번'은 이렇게 적었다.

"어머님 / 그러나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만 계신 것은 아닙니다. / 당신은 창고 한 켠과, 화장실 구석과, 먼지 / 쌓인 계단 밑에도 계셨습니다."
#고려대 #연세대 #청소용역노동자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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