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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종교를 뛰어넘은 사랑의 실천, 이태석 신부의 삶

11.02.08 14:22최종업데이트11.0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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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마 톤즈] 2010년 개봉하여 지금까지 40만 관객을 울린 감동의 휴먼 다큐멘터리... 구정 연휴에 TV로도 방영되었다. ⓒ 네이버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기독교의 사랑을 몸으로 직접 실천한 이태석 신부가 2010년 1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정 속의 이태석 신부는 웃고 있었지만, 그를 보내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인 톤즈 사람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다. 

10남매의 9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태석 신부는 앞길이 보장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아프리카 수단의 남부에 있는 톤즈에서 선교사로 사역했다. 2003년 12월 29일 한민족 리포트(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 - 수단 이태석 신부)로도 방영된 그의 삶은 톤즈 사람들에게 단순히 종교를 전하는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톤즈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정을 만들어 준다는 '어린왕자'에서의 말처럼 이태석 신부는 톤즈 사람을 자신이 도와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본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그 곳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브라스 밴드를 조직하여 음악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

휴가를 받아 한국에 온 그는 건강검진을 통해서 대장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그는 그 순간에도 아직 수단으로 돌아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아쉬워 했다고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는 마지막까지 친구들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잠깐 동안 다녀오겠다고 톤즈를 떠났던 이태석 신부는 더 이상 살아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그의 마지막을 담은 영상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톤즈 마을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가슴 아파했다.

비록 마흔 여덟의 짦은 생이었지만, 사람의 삶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그의 사진을 받아든 눈이 안 보이는 한센병 환자가 그 사진을 소중하게 자신의 집에 간직하려는 모습이었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사진의 이태석 신부는 자신을 잘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톨릭의 신부로 수단으로 갔다. 그러나 그의 선교에 대한 기록은 단순히 종교를 전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종교를 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종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그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했던 슈바이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도 똑같은 말을 했다.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떠났다. 내 목숨이 아닌데도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부럽다, 그의 삶이 부럽다. 나로서는 도저히 그런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질투가 난다.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아니 이태석 신부를 수단으로 이끌고 간 기독교의 사랑이 생명력을 잃지 않는 한, 그의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가 사람들의 기억속을 여행하는 한... 톤즈 사람들은 울지 않을 것이다. 톤즈 사람들과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의 미완성된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 U포터뉴스,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태석 울지마 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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