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덕후 언더그라운드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님을 추모하며

등록 2010.11.10 13:23수정 2010.11.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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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누군지도 모르는 그 음악인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본다. 왠지 슬프다.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죽어 간다는 것은 싫다. 그의 죽음이 외로운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손의 핏줄을 타고 흐른다. 빨간 빛의 광마우스를 움직여, 기사에 링크된 달빛요정의 인터뷰 동영상을 클릭한다.

이름의 느낌이 묘하다. 달빛요정은 여자, 역전만루홈런은 남자 캐릭터. 묘하면서 중성적이고 발랄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털털한 모습. 턱수염 기른 달빛요정은 자신이 동네의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라 말한다.

내 눈엔 오덕후다. 여자 캐릭터를 좋아하는 아저씨라면 특히 더. 참 친근하게 느껴지는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가 개그맨 김현철을 생각나게 한다. 푸근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결기가 느껴진다. 나의 과문함으로 인해 이런 인상만이 "인디 밴드의 신화" 달빛요정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나는 인문계 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나이는 36. 달빛요정과 비슷하고, 살쪄서 외모도 비슷하다. 야구 좋아한다, 특히 기아. 영어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분위기의 아저씨다. 학생들이 소녀시대 좋아한다고 하면 난 카라가 좋다 한다. 그들은 나를 오덕후라고 부른다. 이게 사람들이 보는 나의 첫인상일 거다. 평범한 그냥 아저씨 교사.

루저들의 진솔한 삶을 노래했다던 그의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정의다.

"음악은 세상을 향한 저의 투정이죠."

자신의 얘길 들어달라는 간절함과 진정성이 대단하다 느껴지는 한 마디다. 비록 들어주지 않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음악을 하겠다는 순수한 음악 청년의 분위기다.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내게 인터뷰 요청이 와서 가르침에 대해 묻는다면? 세상을 향한 나의 투정이라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외모, 평범한 말솜씨, 평범한 지식에도 간절함과 진정성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평범함은 아무래도 10대들에겐 매력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친다 해도 나의 진심이 전달이나 될까하는 생각에 두 달 전에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남교사인 나, 또 울었다...아무렇지도 않니?"(2010.8.22)라는 글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내 가르침이자 투정이었다. 나도 좋은 교사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나의 진심어린 투정.

달빛요정 아저씨는 동안에 번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연주한다. 새끼 같은 악기들을 팔아가며, 음반을 녹음했다 한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루저의 삶을 쓰리게 노래로 만들었다 한다. 낙천적인 마음으로 역전만루홈런을 기다리고 있다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경제적 안정감 탓에 루저라 할 수 없는 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기회와 승진에 유리한 기회를 뒤로하고 가르치려 한다. 대도시로, 특목고로 갈 수 있는 기회에 애써 고개 저으며, 여기 조그만 소도시에서, 저기 먼 면단위 학교에서 가르치려 한다. 나도 낙천적으로 믿고 있다. 지금은 학생들이 나를 외면해도 훌륭한 수업을 할 수 있다고, 감동적인 수업을 할 수 있다고. 교사는 지식 장사꾼이 아니라고.

달빛요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목소리로, 가수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목소리로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한다.

"세상도 날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절룩거리네"의 가사)

나는 그 슬프고 진솔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잘 생기고 멋진 몸매의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이제 대세는 아이돌이니까'라고 변명하면서. 내가 그에게 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덕후인 내가 그에게 세상의 차가운 벽이 되어있었다.

나는 언더그라운드 교사다. 오덕후 소리를 듣지만 나의 교육에 대한 믿음과는 반대로 비주류인 내가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점점 내 수업에 호감도를 잃어가는 것 같고, 자신이 없어진다. 아이들이 하는 조그만 말에도 쉽게 상처 받아 버린다.

저번 주에는 누가 화성인 바이러스에 나왔던 십덕후 닮았다는 말에 눈물을 흘려버렸다. 오덕후는 더럽고, 비호감이라는 얘기에 내가 상처 받아버렸다. 학생들에게 언더그라운드의 감수성과 진정성을 가르쳐주겠다던 생각을 놓아버리고 싶어졌다.

달빛요정은 멋진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하다 전사했다. 학교에는 그런 멋진 언더그라운드 교사들이 있는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쳐가며 수업이라는 멋진 공연을 완성해가는 아티스트들이 있는가?

나의 의무감은 그것이다. 비록 다른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지만 추구하는 대의는 같았다. 우리는 연합군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오덕후 교사로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대한 의식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달빛요정의 인터뷰를 다시 본다.

그의 후배가 썼다는 "형의 노래는 그 자체로 완결편이었어요(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447503.html)"라는 추모 글을 읽어준다. 읽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훌쩍거리기까지 하며, 흉하게 끝까지 다 읽는다. 생각나기 시작한다.

대학생 시절, 노브레인의 "청년 폭도 맹진가"와 윤도현 밴드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멋대로 따라 부르던 애늙은이 예비역 사범대생이. 그게 나다. 오덕후언더그라운드쌤. 팔자걸음에, 옷은 참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던,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차서 여학생들은 우습게 알던, 자존심 강한 그 사람.

이제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졸리다 하면 "절룩거리네"를 들려 줄 거다.

"흐흐흐, 난 오덕후언더그라운드쌤이니까."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 송고하고 한겨레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 송고하고 한겨레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달빛요정 #언더그라운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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