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아 슬픈 쌍둥이 형제의 코믹무협 성장기!

박지리 장편소설 <합체>

등록 2010.09.05 17:27수정 2010.09.0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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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겉표지 ⓒ 사계절

공을 굴리며 관객들을 즐겁게 하던 아빠가 있었다. 엄마는 그를 두고 예능인이라고 말했지만 세상은 키 작은 난쟁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아버지의 유전적인 영향 때문이었을까? 일란성 쌍둥이 오합과 오체는 또래보다 키가 작다. 아주 많이 작다. 난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들의 소망은 단 하나! 키가 크는 것이다. 그래서 오합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 의사가 되어 키 크는 약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체는 어떨까? 분할 뿐이다. 난쟁이라고 놀리는 친구에게 주먹을 날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키 작은 아이는 싸움도 못한다. 체급이 다르니 주먹을 먼저 날렸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체는 동네 약수터에서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계도사'를 만나게 된다. 계도사는 키가 작아 괴로워하는 오체의 고민을 듣더니 비기를 알려준다. 계룡산의 형제동굴에 들어가 33일 동안 수련을 닦으면 되는, 이른바 키 크는 비기다. 그게 정말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피식 웃겠지만 난쟁이 소리 듣는 오체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한밤중에 오체는 오합을 깨워서 서울역으로 향한다. 계룡산으로 수련을 쌓으러 가는 것이다. 그들이 돌아올 때, 그들은 정말 변해있을까?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합체>의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하다. 계도사라는 다분히 무협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계룡산에서 수련한다는 황당한 설정이 나오고 있지만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인다. 왜 그런가. <합체>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지점이나 소설 전반을 이끌고 있는 아이들의 고민이 '키'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키'라는 것처럼 청소년들을 '번뇌'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공부는 과외를 하던 학원을 다니던, 하다못해 코피를 쏟으며 밤새 공부를 하다보면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왕따'는 어떤가? 누군가에게 말해서 해결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환경을 바꿀 수도 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비만'은 어떤가. 독한 마음먹고 다이어트를 할 수도 있다. 비록 좋은 방법이 아닐지라도 청소년들을 번뇌하게 만드는 그것들은 해결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키는 어떤가? 방법이 있을까?

<합체>가 평범해 보이는 건, 그처럼 가장 고민스러운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이 소설의 이야기는 소설로 보이지 않는다. 키가 작아 고민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목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들은 누군가의 경험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자체가 평범한 건 아니다. <합체>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만의 색깔이 돋보인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문학적인 성취감이 만들어낸 빛이다.

키가 작다는 건 무슨 뜻인가. 얼마 전의 '루저'라는 단어가 키와 연결되면서 굉장히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 논란은 이 사회의 많은 것을 보여줬는데 그 중에 하나가 키가 작은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다. 사람들은 왜 키가 작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것이 난쟁이라는, 이 시대의 '패자'라고 여겨지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소설 속의 아이들도 그랬다. 그들은 '난쏘공' 아버지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그것이었을까? 혹시 마음이 작은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인정 못해서 '키'에 연연했던 것은 아닐까?

형제동굴이나 동네 약수터에서 백날 "합!체!"를 외친다고 해서 키가 클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것을 한다. 처음에야 키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은 마음을 키우는 과정이 된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난쟁이라고 놀리는 세상을 마주보게 된다. 키는 그대로지만, 마음이 훌쩍 커버린 것이다. 마음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알고만 있을 뿐, 마음으로는 잊어버리는데 <합체>는 코믹하면서도 경쾌하게, 그러면서도 절실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키 큰 여학생과 가장 키 작은 남학생을 불러 춤을 추라고 시키는, 사람의 가치를 외모로 판단하는 비극적인 시대에 '코믹무협'이라는 희극적인 성장담을 들려주는 <합체>, 유쾌한 이야기에서 만들어내는 그 메시지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지리 지음,
사계절, 2010


#청소년소설 #성장기 #난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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