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드레'가 있는 나라인가?

[주장] OECD 자살률 1위, 자존심 잃은 나라에 국격이 있나

등록 2010.08.19 11:07수정 2010.08.19 13:44
0
원고료로 응원

인격을 순수한 우리말로 '드레'라고 한다. 국어사전은 드레를 '인격적으로 점잖은 무게'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전 어른들이 이 낱말을 사용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저 사람, 드레가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드레가 보통이 아녀" "사람은 드레져야 혀"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드레'라는 말은 '인격'이라는 말보다 뜻이 더 깊었던 것 같다. 인격은 말 그대로 '사람의 품격'을 의미한다. 품위와 교양 등이 포함되는데, 이에 더하여 드레라는 말은 지혜와 융통성과 심성까지 포함하는 뉘앙스를 지니지 않나 싶다.

 

아무튼 이제는 드레라는 순수 우리말 대신 인격이라는 한자말이 두루 쓰이는 형편이니, 인격에 드레를 입혀서 좀 더 포괄적인 말이 되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인격은 외양적인 뉘앙스도 지닌다. 속으로는 별로 드레가 없어도 겉치레만으로도 인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인격은 인품과 동의어일 수 있는데, 인격과 인품이 겉도는 현상도 있는 것이다. 품성은 오죽잖아도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만으로도 얼마든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품성이나 내면보다 우선 외양적으로 격을 갖추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그 외양의 격이 그대로 인격이 되기도 한다.  

 

지식과 교양, 품위와 품성, 지혜와 양심 등등이 다 인격 형성에 관여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긍지와 자존심'이다. 그것이 인격의 핵심이다. 인격에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이 긍지와 자존심을 가능케 한다.

 

물론 자존심도 단순한 형태가 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우월감 따위와 밀접하게 연관하는 자존심이다. 세속적 가치가 떠받들어 주는 자존심 속에 안주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존심의 전부인 줄로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심은 폭넓은 가치관으로부터 나온다. 세상을 보는 예리한 눈, 폭넓은 식견과 철학, 정의에 대한 열망과 사랑 등이 차원 높은 자존심을 유지시켜 준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존심은 '개인'을 초월한다.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의 자존심을 견인하거나 이바지한다.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만 유치하면 '국격'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국격(國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감각이나 어휘창조 능력에 쾌감을 가졌을 법도 하다. 그 말의 신선도와 파급 효과에 꽤 자신감을 가졌을 것도 같다.

 

나는 그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의 인격을 생각해보았다. 인격의 핵심인 긍지와 자존심의 질량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현세적 지위나 권세 따위를 초극하는 진정한 자존심을 지닌 사람들인가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별로 드레가 없어도, 겉치레만으로도 인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국격'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속내야 어떻든, 자존심이야 있건 없건, 대통령이 외국 나들이를 많이 하고, 해외 건설공사 수주를 많이 따내고, G20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를 많이 유치하면 국가위신이 상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격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과거의 유물인 유령 같은 이념을 가지고 아직도 국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는 나라, 개발을 최고 가치로 삼고 일방적으로 대대적인 국토 훼손을 자행하는 나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어떻게든 민족의 평화 공존과 평화 통일을 모색하기보다는 험악할 정도로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을 정치에 이용하는 나라, OECD 가운데 자살률 1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발생 1위(2009년 2181명 사망)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의 국격은 어느 수준일까? 국격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국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 가치인 '긍지'와 '자존심'을 어디에서 찾을지 알 수 없다. 특히 미국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자존심은 전무하다. 멀게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서 부터 가깝게는 전작권 반환 문제, 이란 제재 동참 강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국가자존심을 미국에 송두리째 헌납했다. 미국으로서는 지구상에서 한국처럼 만만한 나라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존심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겉으로는 항시 최대한의 우호를 표하고 혈맹을 강조하지만 속으로는 우리를 깔보고 경멸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하려고 든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은 근성을 지녀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복종할 것이며 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의 1980년대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에서 나온 발언은 이를 방증한다. 무엇보다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은, 우리에게 자존심이 없다는 것을 자신들의 축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자존심을 아는 국민은 괴롭고 슬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9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2010.08.19 11:0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9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인격 #국격 #국가자존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