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검정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멍든 가슴, 더 아프게 한 2010년도 2회 고졸 검정고시

등록 2010.08.04 10:10수정 2010.08.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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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2회 고졸 검정고시가 지난 2일 치러졌다

가난으로 학업의 기회를 잃어버렸던 윗세대들, 방황으로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렸으나 학업에 목말라 다시 책을 편 사람들, 조기 졸업하여 대학 가려는 아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응원받으며 꿈을 안고 시험장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한 친구를 응원했다. 집안사정으로 가출하여 중졸로 살아온 친구다. 사회에 나와 보니 고졸도 갈 곳이 많지 않은데 중졸은 갈 곳이 너무 없다며, 먹고 살려면 나쁜 길로 빠질 유혹이 많다고 그게 너무 한이 된다고, 책 한 페이지도 제대로 못보고 'sunday'도 읽지 못하던 그가 이제는 정당한 노동을 하고 바르게 살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공부를 하는 걸 봤다.

기출문제를 풀어보니 점수가 잘나와 이번에 합격하면 폴리텍대학에 꼭 가고 싶다던 꿈을 키우던 그가 지금은 8점이 모자라 울고 있다. 그리고 자기는 해도 안 되는 것 같다는 절망감에 빠져있다. 들어보니 전혀 걱정 안 했던 국사가 생각보다 너무 못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비단 이 친구만이 아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는 국사 난이도에 대한 항의와 재시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검정고시 국사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국사 시험의 난이도는 여태까지 출제되었던 검정고시 기출문제들과는 너무 다른 난이도를 보였다. 같은 해인 올해 1회 기출문제를 80점 맞던 사람이 8점 맞은 경우도 있고, 검정고시 학원을 10년 넘게 운영한 선생님들조차도 예상치 못했다고 하니 이번 시험 난이도에 심각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하나를 소개한다.

제가 이글을 써서 시정이 될 수 있다면 천번 만번이라도 쓰겠습니다.

저는 50대 주부입니다. 늘 학력에 대한 멍에를 가슴에 아니 온몸에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지식에 대해 갈망하다가 공부하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여 간신히 취직도 하였는데 아직 출근 전입니다. 검정고시 때문에 미루었지요. 정말 열심히 죽기 살기로요 합격 못하면 죽는다 생각하고 정말 재미나게 공부했습니다. 나름 자신도 있었고요

그런데 국사 때문에 망쳤습니다. 기본만 나와도 합격인데 36점이라니요 정말 의욕상실입니다 아무래도 학원생들 다 국사가 황당하다하니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 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잖아요. 통신대라도 가서 늦게나마 제 꿈을 이루어 보고 싶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일 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더 기다려야 한답니까. 시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재시험 요청합니다. 살고 싶습니다. 울어서 될 일이라면 석 달 열흘은 울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고, 검정고시 학원에서 가르쳐준 것들이 하나도 안 나왔다고 항의하는 할머니들도 계시다.

검정고시란 어떤 시험인가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노력하여 잃어버린 학업을 다시 찾기 위한시험이다.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기 위한 수능이나, 공무원시험, 임용고시 같은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의 시험과는 본질이 다른 시험이다. 대개 응시생들이 사회적 약자나 다른 길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꿈을 주거나 앗아갈 수도 있고, 마음에 피멍을 들게 할 수 있는 중한 시험이다. 어떤 시험보다 난이도의 안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예고 없이 어렵게 냈나

학원 선생님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난이도의 문제. 학업을 손 놓은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출제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가? 갈수록 올라가는 고학력사회를 반영한 것인가? 많아지는 조기 대학 입학생들을 위한 배려인가? 검정고시 응시생들 중에 60세가 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렇게 갑자기 예고없이 어렵게 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학교에 다닐 기회가 되면 국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 졸업장에 특별성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학업에 목마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멍이 더욱심해지고 바르게 살기 위한 노력이 허무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검정고시 #국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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