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만큼 이쁜 그대들

패배는 나의 힘

등록 2010.03.04 13:28수정 2010.03.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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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한국인들의 관심을 이만큼 뜨겁게 받았던 동계올림픽도 없다 싶었습니다.

 

초반의 스피드 스케이팅과 후반의 김연아 효과가 확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마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수상 다음날 이곳 애틀랜타 어느 클리닉에서 맞은 저의 아침도 온통 그 이야기로 밤새 가라앉히지 못한 흥분이 주변에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 보고나서 잠을 못 이루고 출근이 늦었다는 사람, 딸처럼 너무 이뻐서 아침 눈 뜨자마자 또 한번 보았다는 사람, 무엇보다 일본을 꺾은 것이 자랑스럽다는 사람. 물론 저도 불편한 몸으로 자정까지 김연아의 선전을 보고 가슴 뿌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많은 이들이 그렇게도 김연아에 열광하는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말 속에서 찾아낸 그 첫째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이뤄내는 그녀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된 훈련과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긴 그녀는 아름답습니다. 몇 번의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겨낸 그녀의 오늘은 참 당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땅히 받아야 하는 찬사와 대가를 모두 받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게 눈을 맞추고 떼지 못하는 그대가 연기가 끝난 그녀를 보내고 남몰래 내쉬는 한숨에 한 표를 던지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그대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늘에 박수를 보내렵니다.

 

이루고 싶었던 꿈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잠 못이루는 젊은 그대를 사랑합니다. 내가 꿈을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가족과 마주한 식탁에 오를 한근의 돼지고기 삼겹살을 위해 오늘도 어제의 그 직장에서 일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밤새 열병을 앓는 네살박이 아들의 유일한 품인 엄마라는 이름, 결코 김연아와 같을 수 없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대들의 그 두 눈을 김연아에게 고정시켜 준 대가로 어떤 이들은 수십억의 돈을 챙기는 데 자긍심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착한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러고도 조금 남아 있는 사랑을 1등에 가려진 또다른 진정한 승리자들과 곧 이어질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보냅니다.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 한국의 봅슬레이 선수 김광배, <국가대표>란 영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여전히 비인기 종목인 스키 점프의 최흥철과 김현기, 최용직, 그저 스키가 좋아 출전한 서정화, 다섯번째 도전에도 눈물을 머금어야 했던 이규혁, 선전하고도 메달리스트들의 귀국 인터뷰 동안 들러리처럼 내내 서 있어야 했던 곽민정, 도와주지 않는 기후와 엉성한 조직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응원하고 즐겼을 수많은 캐나다 국민들, 국가주의를 넘어 울고 웃으며 선전했던 많은 선수들. 그리고 역시 국가주의를 넘어 진정한 승리자들을 알아보는 많은 관객들에게. 세계 22위 목표인 장애인 올림픽도 세계 5위가 될 날을 기다리며.

 

승리자가 있으면 패배자도 있는 법. 스스로 패배자라고 인정한 이들의 발 밑에는 한 편의 시를.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대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작과 비평)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중앙일보 애틀랜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3.04 13:2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중앙일보 애틀랜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패배는 나의 힘 #동계 올림픽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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