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아도 좋아, 우리 풋볼팀만 이긴다면

[해외리포트] 한국과 닮은 피츠버그 이야기 ③

등록 2010.01.09 15:53수정 2010.01.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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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시내 중심가. 오른쪽으로 피츠버그 대학 의료센터(UPMC) 건물이 보입니다. ⓒ flickr.com


안녕하십니까? 지난 번 기사 두 편에서 피츠버그의 거대자본에 의한 산업화와 그 결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기사를 읽고 피츠버그에 살고 계시거나 이사를 올 예정인 독자 몇 분이 피츠버그에 극적인 흥망의 역사가 있었던 줄 몰랐다거나, 그렇게 환경오염이 심한 도시냐고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현재도 피츠버그는 미국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중 하나로 꼽히지만 적어도 옛날과는 비교도 안되게 나아졌고 쾌적하고 살기에 좋은 동네들도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피츠버그의 경제적인 흥망이나 그에 반비례한 환경의 피폐와 회복은 모순되게도 모두 자본주의 논리에서 나왔습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피츠버그의 거대 제철공장들은 새로운 장비와 생산기법에 투자하는 대신 단기적인 이윤창출에만 집착했고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제철노동자들도 근본적인 산업구조를 바꾸기보다는 임금 몇 푼을 더 받는 데만 골몰했습니다. 노사관계는 서로를 불신하는 적대관계로 일관했고 서로 협의하고 공조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서로 싸우는 데 정력을 낭비했습니다. 노동자나 공장주나 할 것 없이 미래를 내다보고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고 오늘의 이득을 계산하기 바빴던 것입니다. 경영학과 교수인 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보통 미국기업에서 3개월 앞을 내다보는 기획은 장기계획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결국 피츠버그의 철강산업이 망하면서 노사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일방적인 유기로 끝났습니다.

피츠버그의 재창조... 철강산업에서 두뇌산업으로

철강산업이 쇠퇴하자 기업주들은 다른 도시로 이주하여 다른 산업에 투자했습니다. 실직한 노동자들은 일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피츠버그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민 2세대나 3세대로서 미국 내의 다른 지역에 살아보았거나 친척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피츠버그에서 평생 살아왔기에 정도 들었고 또 별다른 대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업자로 가득했던 피츠버그는 서서히 지식산업, 즉 교육과 의료 위주로 전환하게 됩니다. 현재 피츠버그 시의 최대 고용주는 피츠버그 대학병원과 피츠버그 대학입니다. 피츠버그의 18세에서 65세 사이의 노동인구가 19만 8천명인데 피츠버그 대학과 병원이 고용하고 있는 인구는 4만 8천명입니다.


비록 많은 고위행정직 공무원들은 과거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철강산업 이후 새로 부상한 산업지도자들은 피츠버그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어서 교육받은 근로자들을 고용하며, 환경을 덜 파괴하고,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좀 더 수렴할 수 있는 산업체제를 지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피츠버그를 재건한 세력은 전통적인 지도자층이 (산업 지도자들이든 노동계 지도자들이든 간에) 아니라, 전통적인 가치관과 관행이 무너지면서 새로 부상한 교육 및 의료계 인사들과 신세대 정치인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피츠버그는 과거에 비해 인구와 총생산액은 적지만 주민들에게는 훨씬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산업구조를 조정하는 한 편으로 피츠버그라는 도시와 피츠버그 시민의 정체성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여기에 큰 주축이 된 것이 피츠버그에 적을 둔 스포츠 팀들, 특히 미식축구팀인 '스틸러즈'였습니다.

미국인들을 열광시키는 미식축구 경기 장면.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광적인 스포츠 열기와 미국 문화

피츠버그 시민들에게 피츠버그를 상징하는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폭넓게 사랑받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스틸러즈라고 많이 대답할 것입니다. 미국인들, 특히 남자들에게 스포츠란 보통 인생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피츠버그 시민들의 미식축구에 대한 열정은 오락의 수준을 넘어 거의 광신적입니다. 

극심한 경제적 불황기를 겪을 때 특히 미식축구팀은 피츠버그 시민들을 결속시키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데 정신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오래 산 어떤 회사원은 제게 "온갖 경제 지수는 한없이 하락하고, 주변에 실업자들이 늘어만 갈 때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준 것은 스틸러즈가 수퍼볼을 땄던 일이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미식축구를 거의 보지 않지만 스틸러즈 경기가 열리는 날은 우리 강아지 코코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나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산책 나온 가족들과 개들로 가득했던 공원이 갑자기 텅 비어 있는 날은 거의 반드시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집이나 술집 등에서 텔레비전을 보느라 밖에 나돌아 다니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경기 며칠 전부터 길이나 성당에도 스틸러즈 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강아지들도 스틸러즈 옷을 입고 나옵니다.

미국에서 스포츠는 재미를 주는 여가활동 이상이어서,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환상을 주며, 열정을 발산하고 소속감과 정체감을 표현할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저를 포함한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의 팬들은 "레드삭스 국민"이라 할 정도로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를 이루며 거의 정신병적으로 헌신적인 광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 미국의 프로 스포츠는 과거의 제철 산업이나 마찬가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의 직장생활만을 통제했지만 이제는 여가생활과 일상의 즐거움조차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관람위주의 스포츠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에 대량 생산이 시작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음식, 주거, 인간의 노동이 갈수록 팔고 사는 상품이 되어왔듯이, 직업적인 운동선수들이 종사하는 스포츠가 생겨나면서 인간과 운동의 관계도 변했습니다.

운동복이나 신발의 판매와 같은 부차적인 수익은 차치하고라도, 운동 경기 입장권 판매, 구매권(고가의 입장권에 붙는 일종의 프리미엄) 발매, 텔레비전 중계, 스폰서 광고 등으로 프로 스포츠가 끌어내는 수익은 엄청난 것입니다. 미국의 직업적인 스포츠 팀은 수백 개가 넘으므로 프로 스포츠의 총수익을 계산하기는 아주 어렵지만,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 하키 등 네 종목만 합쳐도 3백억 달러 ($30,000,000,00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관련 상품 판매액까지 합치면 미국의 프로 스포츠가 연간 벌어들이는 돈은 하위 100개국 중 어느 나라의 국민 총생산보다도 많으며, 세계 상위 85위에서 90위 사이인 북한, 예멘, 우르과이 등의 2008년 국민총생산 보다 많습니다.

사회적 통제수단으로서의 스포츠

스포츠가 거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구경거리가 되면서 사람들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구경하는 관람객이자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재미로 하던 스포츠가, 이제는 이기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잉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길들이는 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스포츠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은 물론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에서도 수많은 서커스와 피를 흘리는 스포츠로 시민들의 불만을 달래고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마치 자기가 이긴 듯한 착각과 환상을 가지므로 스포츠는 사람들의 관심과 에너지를 관리하고 소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일반 미국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부나 의회는 거리가 멀고 일개 시민의 의견에 관심이 없지마는, 지역스포츠 팀은 지역사회에 늘 관심을 두고 있으며 주민들의 후원을 호소하고 참여를 독려하며 주민들과 가까이 있다고 느낍니다.

피츠버그의 보통 시민을 아무나 붙잡고 관할 하원의원 이름을 물어보거나 수학공식이나, 역사, 지리에 대해 물어보면 (철학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마세요) 아마 거의 아는 것이 없든지 아무 관심도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새 스틸러즈가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든가 쿼터백이나 라인백커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당장에 지식이 솟아나는 샘으로 돌변할 것입니다.

사실 스포츠가 이다지도 중요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현대 사회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킵니다. 이에 비해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줍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정치문제를 논하거나, 사회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꾸려 노력하거나, 거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편이 훨씬 더 쉽고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응원에 나선 스틸러즈 광팬들. ⓒ flickr.com


한 가지 예를 들면, 약 10년 전 클리블랜드의 공립학교의 대부분이 낡고 헐어서 전체의 3분의 1가량은 건물을 철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중 절반이 중학교 3학년 수준의 학력검사에서 불합격할 정도로 교육의 질이 낮은 등 공교육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을 때, 클리블랜드 시정부에서 공교육에 천만 달러를 지원하는 예산안을 투표에 부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클리블랜드 시민들은 이 예산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두 해 이후, 시정부가 2억 5천만 달러를 들여 미식축구 경기장을 새로 건설하는 예산안을 투표에 부쳤을 때는 문제없이 가결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식민지 곳곳에서도 스포츠는 식민지 주민을 관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식민지의 노동자들을 갑자기 잠재적인 운동선수로 보기 시작했고 적극적으로 운동선수들을 길러냈습니다. 식민지 주민들은 동족인 운동선수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했으며, 결과적으로 스포츠는 피식민 사회가 문화적으로 제국의 체제에 편입되는 통로를 제공했습니다. 식민통치라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약간의 보상 또는 회유책이 되었던 셈입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여러 식민지에서 스포츠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제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스포츠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오락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감성과 열정을 부추김으로써 사회적 통제의 기제로 사용됩니다. 일제 때 손기정 선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지만 분명 일제의 원래 의도는 한국인들을 일본제국에 참여시키고 한국인들이 일본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800년대에 피츠버그를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안전하고 건전한" 활동인 스포츠를 보급하려 애썼습니다. 오락과 관심의 분산, 그리고 비정치적인 영역에 막연한 적(다른 도시의 스포츠 팀)을 만들어 사람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뭉쳐 노동조합 같은 것을 만드는 것보다 그들에게는 훨씬 더 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폭력적이면서 가장 사랑받는 미식축구

피츠버그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스포츠는 미식축구입니다. 스포츠를 관람 또는 시청하는 미국인들 중에 43%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으로 미식축구를 꼽았습니다. (2위인 농구는 12%였고 7위인 축구는 2%에 불과했습니다.) 현존하는 스포츠 종목 중 가장 폭력적인 것 중의 하나로 꼽히는 미식축구가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좀 심란한 일입니다.

미국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스포츠가 미식축구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각기 11명씩인 두 팀의 선수들 22명이 번갈아서 한 편이 점수를 얻기 위해 돌진하는 동안 다른 한 편은 방어하는 게임입니다. 

경기시간의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점수를 얻기 위해 (또는 반대편의 승점을 막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들어갑니다. 저는 미식축구가 씨름과 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벼르고 벼르고 또 벼르다가 아주 잠시 동안 선수 두 명이 맞붙어 맹렬히 겨루고 나서 또 한참 동안 기다리는 것이 씨름이니까요. 차이점은 미식축구는 기껏해야 10초 정도 겨루고 나서 30초에서 1분 정도는 팀끼리 머리를 맞대고 다음 동작을 계획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식축구는 과도하게 폭력적이어서 프로 선수의 평균 활동 기간이 3년 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도 부상의 정도가 심해서 이 기간 이상은 도저히 경기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선수로서 일찍 은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보통 평생 동안 온갖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미국 남자의 평균수명이 75세 정도인데 미식축구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55세입니다.

선수들의 몸무게는 90kg에서 150kg정도이며 평균키는 188cm입니다. 이런 근육질에 커다란 덩치를 한 남자들이 한 게임당 약 80번씩 힘을 다해 뛰다가 정면 충돌을 하기에, 한 시즌 동안에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여러 번씩 뇌진탕을 겪는데 그러고도 계속 출장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선수들마저도 37%가 부상을 입습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들 중 거의 전부가 뇌진탕을 되풀이하여 겪은 흔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세월이 흐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치매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5억8100만 달러를 들여 완공한 스틸러즈의 홈구장 하인즈 스타디움.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스틸러즈를 끔찍히 아끼는 피츠버그 사람들

피츠버그 시민들에게 스틸러즈, 펭귄즈(아이스하키팀), 파이러츠(야구팀)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자 자존심에 아주 중심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수십년 간 피츠버그 시민들은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도시에서 살아왔습니다. 공기는 끔찍하게 오염되었고, 공교육의 질은 낮았고, 문화적으로 특출한 것도 없었으며, 대다수 서민들이 저임금에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며 남루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여기에 스포츠를 추가해봅시다. 스포츠팀이 있으므로 피츠버그 시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별다른 희망도 대책도 없는 인생이었어도 피츠버그의 팀들은 집단적인 영광과 명예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제 시민들은 뭔가 자랑할 것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 부터는 스틸러즈가 챔피언을 자주 따냈습니다. 이름마저 피츠버그의 오랜 전통인 철강 산업을 당당히 내세워주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던 철강노동자들과 그들의 자손은 위험하고 가혹한 스포츠인 미식축구에 쉽게 동일시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피츠버그 토박이들은 한결같이 스틸러즈를 사랑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사랑합니다. 사실 도시 전체가 스틸러즈와 연애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수많은 스틸러즈 관련 웹사이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술집 등 가게들도 거의 전부 스틸러즈 표지를 붙이고 있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노선버스들도 "스틸러즈 힘내라!" 같은 응원구호를 전광판으로 써줍니다.

스틸러즈 운동복은 누구나 입는 것이고 스틸러즈 사인을 문신으로 새기고 다니는 사람들도 흔히 있습니다.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스틸러즈에 대해서 몇 시간이고 신나게 대화합니다.

스틸러즈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피츠버그 시민들은 맥주를 비축해놓고 친구들을 모아 파티를 하거나, 모여서 고기를 굽고, 몇시간 씩이나 운전을 해서 경기를 보러가지 않으면 텔레비전 앞에 딱 붙어 앉아서 지켜봅니다.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한국인들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은 4년에 한번 열리고 두세 주일이면 끝납니다. 피츠버그 시민들은 일년에 20주일을 매주 이렇게 열광하며 살아가며 막대한 돈을 미식축구에 관련하여 지출합니다.

스틸러즈의 홈경기장인 하인즈 스타디움은 5억8100만 달러($581,000,000)를 들여 2001년에 완공했습니다. 이 경기장에서 스틸러즈 팀은 일년에 보통 10게임에서 14게임 정도 경기를 한다고 합니다. 간혹 다른 행사가 열리기도 하지만 6만5050석을 갖춘 이 거대한 경기장은 거의 비어있습니다.

이 경기장에 들어간 비용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피츠버그 시의 2009년 한해 총예산이 4억3800만 달러($438,000,000)였습니다. 이는 도시 전체의 공고육, 경찰, 대중교통, 소방시설, 연금, 도로보수등 수 백 가지 항목의 예산을 전부 합친 액수입니다.

게다가 경기장은 스틸러즈 관련 산업의 일부일 뿐입니다. 실제 그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전하려면 한 사람당 입장권 값이 적게는 40달러, 많게는 250달러까지 듭니다. 한 가족 4명이 함께 경기를 보러 가려면 티켓값이 392달러에, 음식값, 주차비등에 100달러 정도를 써야합니다. 이것도 보통 시즌때 이야기이고 결승전 티켓이라면 1인당 395달러에서 1500달러 까지 내야 합니다. 그런데도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 긴 대기자 명단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눈오는 거리에 쏟아져 나와 응원하고 있는 스틸러즈 팬들. ⓒ flickr.com


피츠버그 시민들의 스포츠 사랑이 불편한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외된 저임금 노동자들인 사회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승리감과 짜릿한 흥분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하며 이웃들과 동지애까지 느끼게 해주는 스포츠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안정적으로 지속시켜주는 중요한 기제입니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출세를 하지도 영웅이 되지도 못할 것이지만 스포츠팀은 간접적으로 이를 성취하는 듯한 착각을 제공해주며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금고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현대의 프로 스포츠는 거대 기업이 운영하는 돈벌이 수단이고 동시에 사람들의 삶은 자본주의 문화 속에 흡수됩니다. 공장에서 생산노동에 종사하거나 판매직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사람들의 직업생활은 자본주의에 편입되었고, 동시에 생존을 위해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해야만 하므로 소비자로서 자본주의 체제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사람들의 여가 시간과 여흥과 열정조차 거대 기업의 이윤추구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텔레비전으로 수많은 시간 동안 경기를 시청하고, 큰 돈을 써서 스포츠 복장과 모자와 신발을 구매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자유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고 정치의식의 수준이 낮은지 궁금하셨다면, 스포츠 채널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철강 노동자로 착취당했던 이민자들의 후손인 현 피츠버그 시민들의 스포츠 사랑이 제가 보기에 영 불편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피츠버그 #스틸러즈 #미식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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