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이런 생태주차장 만들어 볼까요?

[서평]108사찰 생태기행 시리즈 3권 <산사의 숲, 초록에 젖다>

등록 2009.08.12 10:13수정 2009.08.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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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숲, 초록에 젖다> 겉그림.표지 사진은 설악산 신흥사 일부이다. ⓒ 지성사

며칠 전 남한산성 종주를 했다. 남한산성 입구에선 '남한산성 터널공사 반대 100만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국토해양부가 제2경부고속도로 남한산성 부근 전면 터널화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터널공사를 앞둔 남한산성이나 케이블카 설치로 인한 생태계 파괴 위기에 처한 지리산처럼 전국의 유명한 산들마다 걸핏하면 개발과 발전이란 명목만을 앞세운 개발지상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우리의 안타가운 현실을 어찌 이해하랴!


사찰생태연구가 김재일의 <산사의 숲, 초록에 젖다>(지성사 펴냄)는 우리의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우려, 우리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사찰 주변 숲의 생태계를 조목조족 정리한 책이다. 총 10권까지 출간될 이 책의 목적은.

"지금 우리가 다시 돌보지 않는다면 수십 수백 년 뒤 후손에게 남겨질 자연은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하게 변할 것이다. 땅이 사라지기 전에, 풀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동물들이 제 집을 잃고 우리 땅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기 전에, 선조들이 남긴 귀한 자연유산을 기록으로 남기고…이유야 어찌되었든 더 이상의 사찰 숲 환영파괴는 막아야 한다. 선조들이 맑고 넉넉한 사찰 숲을 물려주었듯이 우리에게도 후손에게 아름다운 숲을 물려주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답사·소개한 사찰들은 남양주 봉선사를 비롯하여 양평 용문사와 경북 예천 용문사, 설악산 신흥사, 동학사, 장곡사, 동화사, 범어사, 화엄사, 송광사 등 천년고찰 10곳이다. 주변의 암자나 숲과 들판, 사찰이 깃들여 있는 산까지 사찰 생태계에 포함된다.

사찰 숲은 오랜 동안 우리 산림의 지표가 되어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개발지상주의 정부와 지방자치의 세수원확보를 위한 공사의 희생양이 되어 크게 파손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만 우리의 자연환경, 즉 사찰 숲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형 불사나 불자들의 편리만을 앞세운 주차장과 같은 편의시설, 미관과 편리만 앞세운 현대식 화장실 등, 자연생태계에 대한 무지가 바탕이 된 각종 사찰 시설 등도 사찰 생태계파괴의 주요 원인들이다. 봉선사의 대형 주차장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생태계를 최대한 배려한 생태주차장 조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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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대웅전에는 정감있는 우리말 현판 '큰법당'이 걸려있다(2009.7.15) ⓒ 김현자


봉선사 진입로에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양버즘나무, 전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줄을 지어 이어진다. 왼편에 대형주차장이 생기면서 예전보다 생태경관이 나빠진 점이 안타깝다. 이 나무들이 앞으로도 병들지 않고 제대로 자라줄지 걱정이 앞선다.…(중략)…생태주차장은 아스콘이나 시멘트를 이용해 땅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블록을 틈이 생기도록 깔고 블록과 블록사이에 잔디를 심어 만든다. 주변에는 화단을 조성하고 수세미외, 차다래, 등, 호리병박, 칡과 같은 덩굴식물을 심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면 더욱 좋다. 그리고 공해에 강하고 매연을 흡수하는 식물을 심으면 생태주차장 공사는 끝난다. 거창하게 생태주차장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원리는 식물이 살아 숨 쉬고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봉선사 편에서

최근 사찰이 대형화되고 차량이 보편화되면서 사찰마다 넓은 주차장을 만든다. 멀리서 찾아오는 신자들이나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설이라지만 이제까지 우리들이 당연한 것으로 사용해 온 이 주차장은 자연환경보존 측면에서는 그다지 환영할 일만은 아닐 터, 이쯤에서 한번 짚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주차장들은 대부분 아스콘이나 시멘트를 부어 만든다. 특히 아스콘을 덮는 방식은 비용도 적게 들고 공사가 간편하고, 공사기간까지 짧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조성된 주차장 주변은 어떻게 될까? 그 공간에서 살던 식물들은 졸지에 사라지고 땅속 생물들까지 큰 영향을 받는다. 주차장 넓이만큼 땅이 죽기 때문이다.

사찰뿐이랴. 등산이나 탐방인구가 늘면서 산이나 유적지 곳곳에 대형주차장들이 조성된다. 만약 주차장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저자의 이런 생태주차장을 적극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아가 도시의 보도나 공원, 관공서의 마당과 주차장 등에 이런 생태주차장 방식을 도입한다면 우리가 숨 쉬는 공간들이 훨씬 건강해지지 않을까.

봉선사는 앞산과 뒷산 모두 국립수목원과 접해있어서 자연생태계가 비교적 튼실한 편이다. 그러나 사찰생태전문가의 눈에는 2% 부족한 봉선사다. 국립수목원-광릉-봉선사를 잇는 일대의 숲은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천연학술보존림 지역이라 봉선사의 지속적인 생태계 보전은 중요하다. 저자의 이런 제언이 부디 감로수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이처럼 각 사찰마다 그곳만의 생태적 특성을 소개, 각 사찰에 맞는 생태환경을 조성, 그 바람직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생활하수를 정화시킬 수 있는 미나리꽝 만들기, 송광사의 생태 화장실, 나비가 많은 용문사의 생태 화단 조성, 산불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내화수림 조성 등도 생태주차장과 더불어 적극 수용해 볼 만한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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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대웅전 '큰법당' 지붕(2009.7.15) ⓒ 김현자


-연못에는 여러 마리의 붉은귀거북이  물위로 올라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 녀석들이 물 위에 떠 있는 이유는 이따금 물속에서 올라와 등짝을 말리지 않으면 등짝에 이끼가 달라붙기 때문이다. -남양주 봉선사 편에서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었다. 산불이나 재해로 산의 식생이 망가졌을 때 맨 먼저 산에 오르는 선수종 나무로 생태계에 큰 몫을 해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에 바위를 자를 때 물푸레나무를 썼다고 한다. 단단한 바위를 나무 조각으로 자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지만.…바위의 결을 따라 작은 홈을 파고 그 안에 물이 잘 스며드는 물푸레나무 토막을 박고 뜨거운 물을 계속 붓는 것이다. 그러면 물푸레나무 토막이 팽창하면서 바위가 갈라진다고 한다.-설악산 신흥사 편에서

사찰생태기행은 사찰과 사찰주변에는 어떤 동식물들이 살고 있으며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묻는 발걸음이다. 저자는 사찰마다의 생태적 특성을 기록하는 틈틈이 생태 관련 해박한 지식들을 들려준다. 저자의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아가 숲길에서 자주 봤던 나무나 꽃, 나비 등에 관심을 갖게 한다.

사찰과 사찰 주변 숲의 풍경, 나무나 들꽃, 나비 등의 관련 사진 또한 풍성하다. 덕분에 요즘 산행 중에 흔하게 봤지만 잘 모르던 짚신나물과 가래나무, 산꼬리풀 등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예천 용문사는 나비가 특히 많은 절. 용문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비들과 짝짓기 후 암컷이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특수 장치를 하는 모시나비 이야기도 재밌다.

혹자들은 "왜 하필 사찰생태인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수행하던 스님들은 물론 사찰 자체적으로도 우리나라 기후 풍토에 맞는 숲을 유지하여 사찰을 지키고 우리 땅을 푸르게 하는 데 공헌했다. 그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지키고, 희귀종들을 보존하는데도 앞장서 왔다. 현재 사찰과 사찰주변에는 천연기념물 또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나무나 숲, 동물들이 많은데, 바로 이것이 우리 땅과 자연을 보호하고 유지하는데 사찰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책속에서

덧붙이자면,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고창 선운사의 송악,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줄사철나무 군락과 청실배나무, 영광 불갑사의 참식나무 숲,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 고흥 금탑사의 비자나무 숲,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숲, 정읍 내장사의 굴거리나무 숲 등이 사찰들이 보존해 온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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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세우기전 일주문 역할을 했던 봉선사 노거수(2009.7.15) ⓒ 김현자


또한, 많은 숲과 경작지들이 인간들을 위한 주거시설과 편의시설로 사라지는 등 우리의 자연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많은 산들이 여전히 개발로 인한 위험에 처해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사찰의 존재 때문에 사찰 주변 숲은 개발의 위기를 면하여 오늘날 우리 산림의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사찰 생태계들마저 근래 흔들리고 있다. 이제라도 사찰의 생태계를 기록하고 제대로 보존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찰생태를 다룬 책이지만 종교성과 상관없이 급격하게 파괴되고 있는 우리 생태계에 대한 근심과, 이제라도 우리 생태계를 어떻게든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 우리의 숲에는 어떤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가? 의 관심, 우리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지극한 애정 등으로 읽어야 하리라.

개발로 어수선한 우리시대, 지치고 멍든 산과 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소중하게 기록하려는 묵묵한 발걸음 때문일까? 이 책은 오랜 세월 언제나 그곳에 묵묵하게 서 있는, 언제나 그곳에 서 있어 그 자체만으로 왠지 믿음직스럽고 푸근한 위안을 주는 그런, 듬직한 노거수 같다는 느낌까지 갖게 한다.  법륜 스님의 추천사도 눈에 띈다.

그의 글은 화려한 수식을 배재하여 충직할 정도로 정직한 기록이다. 이 책은 그냥 읽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소장해야 할 책이다. 백 년이나 이백 년쯤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생의 누군가가 이 책을 들고 그가 밟았던(저자가 답사한, 이 책에 기록된) 산사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래서 그이가 어떤 생명이 사라지고 어떤 생명이 다시 나왔는지 알게 된다면, 그래서 이 땅의 생명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법륜 스님

산사의 숲, 초록에 젖다

김재일 지음,
지성사, 2009


#생태계 #인문교양 #08사찰생태 #우리숲 #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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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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