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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의 아름다운 도전

09.08.09 13:58최종업데이트09.08.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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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평생 물을 떠나지 않은 조오련씨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제는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 섬에 사는 우리 반 친구들은 비가 많이 오면 학교에 오지 못했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비 때문이라 결석을 잡지 않았다.

 

어느 날 조오련씨는 비가 왔는데도 학교에 왔다. 다른 아이들은 비가 많이 오자 모두 결석을 했는데 그 혼자만 학교에 온 것이다. 억수처럼 쏟아진 비속에 학교에 나타난 그를 보고 깜짝 놀란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고, 그는 헤엄쳐서 왔다고 답했다. 그 먼 섬에서 헤엄쳐서 학교까지 온 그를 보고 선생님은 수영을 권했고,  이후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수영에 금메달을 안겨주면서 수영선수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 터라 어린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늘 궁금해 관심을 갖고 보았다.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어린 초등학생으로 섬을 헤엄쳐 등교한 시절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그런데 며칠 전, 일간지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읽고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는 1970년 고등학교 때에는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2관왕(400m, 1500m)에 올랐고, 1974년 테헤란 아시아 경기 때에도 두 종목을 석권하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아시아의 물개'란 별명이 항상 따라다녔다.

 

1978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각 종목에서 50여 차례나 한국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1980년 사상 최초로 대한해협을 횡단해 우리를 놀라게 했고, 2년 뒤에는 도버해협을 건너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2005년에는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횡단하기도 했다. 매스컴이 업적을 이룬 그를 이야기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어린 소년이 함께 떠오르곤 했다.

 

최근에는 30년 만에 대한해협 2차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한국인의 저력과 함께 60살이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보여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조오련 자신은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이런 거대한 포부를 이루지 못하고 타계한 그를 생각하면 몹시도 안타깝다.

 

도전은 아름답다. 그의 투혼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그 나이에 이처럼 대단한 포부를 품고 도전했던 그를 보면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는 지금 포기해서는 안 되는 어려운 시점에 서있다. 그는 이런 내게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봐야겠다는 배움과 깨달음을 남겨주고 갔다. 그가 남긴 소중한 과제를 잊지 않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9.08.09 13:58 ⓒ 2009 OhmyNews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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