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문학관에 걸린 <항공일에>를 보고

등록 2009.07.19 16:49수정 2009.07.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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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전라북도 고창군·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의 경계에 있는 방장산에 올랐다. 방장산은 내장산과 백양산 자녀와 동생쯤 되는 산으로 높이는 743m이다. 방장산에서 내려온 후 발길을 고창 선운사 가까이 있는 미당 서정주 선생 생가와 시문학관을 찾았다. 가는 길에 용산철거민참사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여섯 달이 지난 오늘까지 용산철거민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미당은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당 시문학관은 전북 고창 선운리 있던 폐교 선운초등학교 봉암 분교를 개조하여 지난 2001년 11월에 개관했다. 시문학관에는 미당 육필 원고와 각종 책,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초상화 따위 1만 5천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는 시문학관에서 걸어 3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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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시민학관 전경 ⓒ 김동수

미당 서정주 시민학관 전경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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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시문학관에서 바라본 미당 생가 ⓒ 김동수

미당 시문학관에서 바라본 미당 생가 ⓒ 김동수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으로 추앙받았지만 미당은 친일시 때문에 평생을 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당 시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를 평생 옥죄었던 친일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친일 작품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미당 시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친일작품은 <인보의 정신> <항공일에> <송정오장송가> <스무살된 벗에게> <보도행>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 <최체부의 군속지원> <징병적령기?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따위 시 6편, 수필 3편, 소설 2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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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시문학관에 걸린 서정주 친일작품들 ⓒ 김동수

미당 시문학관에 걸린 서정주 친일작품들 ⓒ 김동수

 

전시되어 있는 친일 작품 중 "여린 숨을 푹푹 내쉬며"로 시작되는 <항공일에>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읽어보면 이게 무슨 친일 작품인지 헷갈리지만 일본제국주의 '항공일'을 기념하여 지은 시로 <국민문학(國民文學)> 1943년 10월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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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선생 친일시 중 하나인 '항공일에' ⓒ 김동수

미당 서정주 선생 친일시 중 하나인 '항공일에' ⓒ 김동수

여린 숨을 푹푹 내쉬며

내 귓가에서 자그마한 서운녀(西雲女)가

일곱 살 서투른 고향 말씨로

아이 하늘은 서울이레야,

속삭이던 그 하늘이구나

(중략)

 

여기 있는 건 내 덧없는 몸짓과 말뿐

메아리와 파도소리와

새맑은 좁은 마당엔

꽃축제 올리는

쇠가죽 북소리만 은은해

 

아아 날고프구나 날고 싶어

부릉부릉 온몸을 울려

사라진 모든 것

파랗게 걸린 저 하늘을

힘차게 비상함은

내 진작 품어온 바램 !(<항공일에>-1943.10)

 

"아아 날고프구나 날고 싶어/부릉부릉 온몸을 울려/사리진 모든 것/파랗게 걸린 저 하늘을/힘차게 비상함은/내 진작 품어온 바람"이라는 글은 비록 일본어로 쓴 글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비행기를 묘사하면서 정말 아름다운 단어를 쓴 미당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글을 통하여 전쟁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이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음을 <항공일에>는 보여준다. 부드러움과 서정성 속에 숨겨진 친일, 미당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항공일에>를 썼을까?

 

미당 생전이 아니라 죽은 후에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시문학관에 친일작품을 전시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자신들 친일 경력이 드러나는 일을 끝까지 반대했고, 지금도 같다.

 

하지만 미당 후손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친일 작품을 전시했다. 그의 친일은 비판받아야 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고, 반추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해야 한다. 어두운 과거를 고백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있다.

 

미당 시문학관에 갔던 날이 1월 20일이었다. 아직 용산철거민참사를 일으킨 권력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에게 권력을 잠시 부여한 시민들에게 권력자들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들을 더 핍박하고 있다. 권력 남용도 이런 권력 남용이 없다. 주객이 뒤바뀌었다. 미당은 친일을 했지만 그 오욕을 전시했고, 이 정권은 더 인민을 핍박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당 시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던 <항공일에>가 다시 떠오른 이유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와 세력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2009.07.19 16:49 ⓒ 2009 OhmyNews
#미당 #서정주 #항공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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