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맞아 죽을 놈' 될 뻔한 친구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번개

등록 2009.07.17 11:38수정 2009.07.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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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예정시간보다 좀 늦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칠순의 어르신이 사오십대 주부들 몰래 내 손을 잡아 끌고 복도로 이끈다. 그리고 복도 한 모퉁이에 두었던 까만 비닐봉지를 다른 사람이 볼새라 전해주시면서 얼른 차에 갖다 두라고 하신다.

 

"선생님! 이 늙은이가 가진 것이 없어 항상 밥 하나 사주고 싶어도 못 해주다가 내가 땀 흘려 지은 것을 나눠드릴 수 있어 무척 기분이 좋아요!"

 

가지와 오이와 꽈리 및 청양고추와 상추 등 이런 저런 알콩달콩 작물이 들었다. 그리고 꽈리고추는 밀가루에 묻혀서 쪄먹으라 하고 청양고추는 다져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음식에 넣으라고 한다. 마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나누는 정을 보는 듯하다.

 

붓을 잡는 분들 중에는 아주 조그만 자투리 땅이라도 텃밭으로 해서 이런 저런 작물을 직접 일구어 먹는 분들이 많다. 땅이 없으면 슬라브 단층 옥상에 택배로 받는 큰 스치로폴같은 것을 많이 모아서 심기도 한다.

 

남자분들 중에서는 직접 고향도 아닌 산좋고 물좋은 땅을 찾아 조그만 농막을 짓고 산다고 떠난 사람도 있고 농번기에는 전원생활하는 친구집에서 한두 달 묵으면서 사시는 분들도 있다. 가진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앞으로 보고 위를 보고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것과 조금 다르게, 번잡한 삶들을 피해서 작은 것에 큰 만족을 얻는 안빈낙도를 본받아 사는 것 같다.  

 

비가 많이 오고 벼락이 많이 친 며칠 전 한 분이 소식을 전해 왔다. 충북과 인접해 있는 시골에 가 있는 분이다. 하마터면 자기가 벼락맞아 죽을 놈이 될 뻔해서 가슴이 서늘하다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시쳇말로 벼락 맞는다는 것은 천벌맞는다는 것이니 꿈에도 생각을 안해 보았다고 한다. 

 

일기예보에 비가 10밀리 정도로 작게 온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논일을 하러 가기로 했는데 마침 복날이라고 아는 사람이 불러 친구와 거나하게 먹다 보니 그 다음날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비가 그친 후 나가보니 원래 나가서 일할 예정이던 논둑에 화재가 난 것처럼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어 섬뜩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일을 되새겨 보면서 앞으로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고 붓도 좀 더 열심히 잡아 잘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 날은 나도 계룡산에 워크샵이 있어 갔다가 오는 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너무 퍼붓는 폭우 속에 벼락까지 많이 치기에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참 머물다가 자정이 넘게 간신히 주춤주춤 운전해서 집에 왔다.

 

캄캄한 도로에 폭우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물이 좀 고인 도로를 지나면 차가 어디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깜짝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중간 중간에 아이들에게서 운전 조심하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는데 사색이 다 된 표정으로 집에 온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사해서 감사하다는 느낌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폭우로 인해 그렇게 사색이 든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내리치던 벼락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벼락 앞에 인간은 참 겸손해지고, 미물에 불과한 것을 친구가 느꼈듯이 나도 예외가 아니다.

 

벼락이라는 말을 우리는 안 좋은 일로 많이 해석하지만 사실은 불교의 금강경이라는 원어를 해석하면 벼락경이란 말이 된다. 이것은 뭔가 번쩍 하고 정신적으로 깨쳐서 불성을 되찾는 좋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를 깨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벼락은 우리 주위에 항상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전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늘 깨어 있는 맑은 머리와 따스한 가슴이고 싶어서...

2009.07.17 11:38 ⓒ 2009 OhmyNews
#벼락 #자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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