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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호도 변해야 할 때 변했건만...

영화 <추격자>와 MB정부

09.06.26 12:12최종업데이트09.06.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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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을 본 그날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특정한 우리 모두가 연쇄살인범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게다가 결국 범인도 잡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지 않았는가. 그날 밤만이 아니라 한동안 비만 오면 찜찜한 생각부터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추격자>를 본 그날도 잠을 뒤척였다. 하지만 그건 지영민(하정우 역)을 무서워하는 공포가 아니다. 아쉬움. 맞다. 망할 슈퍼마켓 아줌마의 설레발이 미웠다. 지영민을 미행하다가 지하철에 타지 못한 남자형사가 미웠다. 증거가 없다고 지영민을 풀어주는 검사도 미웠고 엄중호(김윤석 역)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삽질만 계속하는 형사들도 미웠다.

그들 때문에 김미진(서영희 역)이 죽었기 때문이다. 제발 죽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결국 죽었다. 그녀를 토막내어 어항에 놓고 이를 감상하는 지영민은 마치 나에게 "약 오르지롱~"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녀의 죽음은 아쉬웠다. 완전 '지못미'다.

그런데 영화 속 캐릭터에게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시나리오고 뭐고 김미진(서영희 역)을 왜 죽이느냐 말이다. 그래서 감독도 미웠다.

우리가 엄중호와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런데 이런 내 마음. 바로 엄중호의 마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결국 엄중호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이입되었고 그의 시각에서, 그의 마음에서 진실로 미진이가 살아있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영화 <추격자>를 보는 사람 모두가 엄중호가 되어 외친다. "김미진! 어디있냐?"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제발 죽지마!'

그런데 엄중호는 사실상 사회적 지탄 일순위의 캐릭터에 불과하다. 최근 성매매 여성과 포주와의 관계가 사뭇 민주적으로 변모하였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의 맥락일 뿐이지, 사회적 기준에서는 여자를 구조적 난관에 봉착시켜 엄청 뜯어먹는 인물이 바로 엄중호다. 사회학으로 접근하든 경제학으로 접근하든 결론은 단순. 나쁜 놈! 이러한 나쁜 놈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단다. 신기하다. 무엇 때문일까?

그건 엄중호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자가 '도망쳤다'고 믿었다. 여기서 엄중호는 나름 경제 기준으로 따져서 합리적인 진단을 한다. "나한테 갚을 돈이 얼마인데 이 여자가 사라졌다면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하지만 이건 포주 엄중호만의 단숨함이 아니다. 대다수 우리들의 단순함과 동일한 거 아닌가? 인간들의 사건 진단 99%는 결국  "그 놈의 돈이 뭐기에" 아닌가? 그래서 시작부터 엄중호는 관객들과 척척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엄중호가 이 단순함을 아주 단순하게 변환시킨다는 거다. '4885'라는 동일한 번호의 정황을 통해 도망갔다가 아닌 '팔려갔다'는 결론에 아주 '쿨'하게 이른다. 팔려갔다는 것은 '잡아야 될 사람'이 생겼다는 거다. 그래서 예전 동료형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엄중호는 지영민의 누나를 협박한다. 자네 동생이 내 돈을 등쳐먹었으니 당신이 갚아라고. 자기 스스로 법리적 해석을 통해 '잡아야 될 사람'을 넒은 의미에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엄중호는 또 변화를 쿨하게 보여준다. 지영민이 자기조카의 머리를 망치로 때린 모습을 보고 엄중호는 변한다. 이거 큰일났다. 미진이가 죽을 수도 있구나. 살려야 한다. 포주 엄중호가 불과 몇 시간만에 '사람'이 된 것이다.

여자가 도망갔다는 정황, 팔려갔다는 증거, 죽을 수 있다는 확신에 따라서 엄중호는 아주 쿨하게 변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맞다. 엄중호는 지극히 '변해야 될 시점'에서 아주 당연히 그리고 단순하게 변했고 이것으로부터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니까 무슨 뚱딴지 판타지같은 캐릭터라서 관객들이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공명'의 수준이다. 변할 때 변하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라서 말이다.

MB 정부는 왜 이렇게 단순하지 못할까?

MB정부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뭔가 변해야 될 사건들이 너무 많았다. 영화로 따지면 4885가 오천번 찍힌 거고, 조카만이 아니라 누나의 머리통에도 구멍이 난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감정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극단으로 나타나야 할 사건들이 많았다. 작년에 촛불이 그랬고 올해 노무현 서거에 대한 국민의 조문이 그랬다. 그런데도 엄중호는 외친다. "도망간 거라고!" 아니거든요. 잡혀 간 거라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들은 MB 정부의 감정의 변화를 일차적으로 원한다는 거다. 정책적 패러다임 등의 실질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치적 무관심을 어쩔 수 없는 모토로 살아가는 대다수 바쁜 서민들은 그렇게 복잡한 이슈로 골머리 앓기를 싫어한다. 다만! 국민을 대하는 감정이 변해야 될 시점에서 변하지 못하는 그가 아쉬울 뿐.

처음에는 그랬다고 치자. 우리 모두 '회사원'이 되어서 경제 대통령에게 조금 제어를 당할 필요가 있었다고 치자. MB는 그걸 지금껏 잘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 이게 영 짜증나는 일이네. 그래서 촛불도 들고 그랬다. 그러면 더 이상 국민을 대하는 '감정적 자세'를 그렇게 사단장 스타일로 추구하면 안 된다. 수평적 관계에서 한번 시도해보라는 거다. 귀를 열어 이등병의 소리도 한번 들어보라는 거다.

엄중호는 앞으로도 <보도방>을 계속 운영할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 어떤 포주보다도 자기가 고용한 여성들을 보호할 것이고 혹시 위험에 처할 상황을 미리 예방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슬퍼할 때 제대로 슬퍼하니 엄중호에게 다양한 세상이 보인다. 그런 엄중호처럼 관객들 역시 슬퍼할 때 슬퍼했을 뿐이고 아쉬워할 때 아쉬워했을 뿐이다.

지금 정부는 이게 없다. 너무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정황이 포착되어야만 여자들이 도망간 것이 아니라고 믿을까?

덧붙이는 글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추격자 이명박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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