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람이 우물에 빠진 날

등록 2009.04.29 09:59수정 2009.04.2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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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까지 돼지라는 동물이
아무 아픔도 통증도 생각도 없이
오로지 밥이나 축내고 똥이나 싸는
형편없는 종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돼지독감 뉴스를 보고 난 후 비로소 깨달았다
돼지도 아플 줄 안다는 걸
아니다 돼지도 사람처럼 아플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돼지들이 앓는 병이
자기들에게로 옮겨올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돼지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소 엉뚱할는지 모르지만 내 관심은 
독감을 앓고 난 후 저 돼지들의 지능이
갑자기 진화하면 어찌하느냐는 거다
나도 어린 시절에 열병을 앓다가 일어나면
그때마다 부쩍 성숙한 자아를 느끼곤 했으니
돼지들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어쩌면 이 돼지독감 열풍이 지나가고 나면
지능이 몰라보게 진화한 돼지들이 생겨날지 모른다 
그리되면 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돼지우리를 박차고 뛰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전혀 지능이 진화하지 않은 척 시치미 뚝 떼고
그저 사람들이 던져주는 법이나 얻어먹으며
그럭저럭 한평생을 살다 갈 것인지를
이 세상 숱한 인간들이 고민하는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는
脫 돼지적인 고민을 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어쩌면 새로운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게
독감을 극복한 똑똑한 돼지들이 당면하게 될
가장 절실한 현안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되면 우물에 빠지는 것은 돼지가 아니라
그동안 안하무인처럼 군림했던
사람이라는 영장류가 될 것이다
왜 내 이야기가 꿈 같은가
무엇이든지 가능한 이 21세기에
아직도 순진하게 내 허구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당신
부디 착각의 우물에 빠지지 않기를.
#돼지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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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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