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북녘 그리는 치매노인을 위한 '몰래카메라'

[영화 속 장애 7] 저예산 영화 <비단구두>를 보고

09.04.27 13:54최종업데이트09.04.28 08:14
원고료로 응원
최근 저예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비가 1억도 채 되지 않는 <워낭소리>(이충렬 감독, 다큐멘터리, 한국, 2008, 78분)는 우리나라 저예산 영화의 새 역사를 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개봉한 <똥파리>(양익준 감독, 드라마, 한국, 2008, 130분)도 개봉 사흘만에 2만 명이 넘을 만큼 '제2의 워낭소리'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저예산 영화의 흥행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묵묵히 걸어 온 저예산 영화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 비단구두 포스터 ⓒ 오리영화사


이번에 소개할 영화 <비단구두>(여균동 감독, 코미디·드라마, 한국, 2005, 104분) 역시 저예산 영화로써 흥행에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장애인을 소재로 다룬 영화라 그런지 필자에게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 <비단구두> 개마고원이 고향인 배영감은 치매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고향을 가고 싶어한다. ⓒ 오리영화사


치매에 걸린 배영감(민정기 분)의 고향은 개마고원이다. 실향민이라면 누구나 고향을 가보고 싶어 할 것이다. 배영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배영감은 현재 치매에 걸린 상황.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의지가 매우 적극적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을 가겠다고 나서지만 아들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버지를 걱정하고 돌보는 아들은 잘 나가는 조직폭력배 두목이다. 조폭답지 않게 효심 많고, 마음이 따뜻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장애인에 대한 감독의 배려심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조폭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소원인 개마고원 방문을 위해 삼류영화감독 만수(최덕문 분)를 끌어들인다. 조폭 아들은 영화가 실패하여 빚더미에 올라선 영화감독에게 빚 탕감을 조건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남한을 북한인 것처럼 속이려는 조폭 아들의 아이디어인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나 협박하는 것이나 단순, 무식을 대표하는 조폭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조폭 아들은 자신의 오른팔 성철(이성민 분)로 하여금 개마고원 방문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도록 내려 보낸다. 만수는 막무가내 들이대는 조폭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 이럴 때는 조폭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 <비단구두> 북한에 온 것처럼 배영감을 속이기 위해 판문점 셋트장에서 펼쳐지는 어설픈 조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 오리영화사


이제부터 배영감을 속이기 위한 몰래카메라가 시작된다. 인공기를 단 차량을 타고, 판문점 셋트장을 가고, 북한을 연상케하는 눈덮힌 고지를 오르는 등 눈물겨운 노력에 비해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 엉성한 시나리오, 열악한 제작비 등으로 인해 영감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치매에 걸린 영감 아닌가? 영감은 별 의심없이 삼류감독의 연출에 따라 가면서 자신이 가고 싶었고, 보고 싶었던 고향과 가족을, 환상 속이지만 한 번씩 만나보고 기뻐한다.

▲ <비단구두> 배영감은 잃어버렸던 기억 속의 그리운 사람을 상상 속에서 다시 만나 맺혔던 한을 풀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있다 ⓒ 오리영화사


혹시 치매환자가 장애인 범주에 포함되는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데 아직 치매환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치매환자를 장애인으로 분류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치매를 장애로 포함하자는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치매 뿐만 아니라 당뇨나 암, AIDS, 알코올중독 같은 장애에 대해서도 장애범위를 확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영화를 선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먼저 밝혀둔다.

여균동 감독은 그 당시 제작비가 수십 수백 억이 들어가는 다른 여러 영화작품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3억이라는 저예산 영화 <비단구두>를 들고 나온 것이다. 오랜 공백기를 가진 뒤에 선보이는 작품이기에 남북문제, 영화계 내 문제, 조직폭력 문제, 노인문제 등등 하고 싶고, 보여 주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엿볼 수 있다.

감독은 치매에 걸린 노인을 핵심인물로 내세워서 그 동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영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정작 주인공은 주변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심각하다. 감독은 주변에 일어나는 예민하고 복잡한 이야기꺼리는 관객에게 던져서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 <비단구두> 치매걸린 영감을 통해 여러 가지 복잡한 정치, 사회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 오리영화사


그러고 보니 인지능력이 다소 부족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대체적으로 쉽게 다루기 어려운 내용을 장애인을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비단구두>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감독, 드라마, 한국, 2005년, 133분)을 예로 들면 지적장애인으로 나오는 여일(강혜정 분)의 역할이 치매에 걸린 배영감의 역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지적장애인인 여일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미군, 인민군이 만나는 대립적인 상황을 화합시켜 주었다면 <비단구두>에서 치매에 걸린 배영감은 20세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잘 묘사해주었다.

▲ <웰컴 투 동막골> <웰컴 투 동막골>에 등장하는 지적장애인 여일은 영화 속에서 남과 북이라는 첨예한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필름있수다


<웰컴 투 동막골>이나 <비단구두> 영화 속에 장애인이 등장해서 다루기 힘든 다양한 문제들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장애인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장애영화 비단구두 여균동 치매노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