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되려면 목사추천서부터 제출하라고?

[보따리강사 이야기 5] 아무리 학교재량이라지만 기막힌 채용방법

등록 2009.04.03 10:19수정 2009.04.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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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7일부터 시간강사의 교원법적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개정안 상정을 위해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들이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명옥


- 교수임용지원서
- 연구실적목록(최근 3년 이내)
- 자기소개서
- 연구 및 강의계획서
- 졸업 및 성적증명서 (대학 및 대학원)
- 경력증명서
- 최근 3년 이내 연구실적물(별쇄본)
- 박사학위논문
- 최종 학위논문 지도교수 추천서

'필히 박사학위 소지자이어야 한다'는 지원 자격과 함께 교수지원에 필요한 대학의 1차 서류는 대략 10여 가지 안팎 수준. 각 대학이 제시한 교수채용 공고는 얼핏 보면 엇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 약간의 차이는 한두 가지 서류 차이일 뿐인데 그것 때문에 지원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예비교수(시간강사)들이 그렇듯이 박사학위 취득 후 필자도 교수채용 정보를 뒤져보는 게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하지만 전공에 부합되는 채용공고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설사 가뭄에 콩 나듯 전공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채용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고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재삼 깨닫게 한다.

국외박사도 아닌 국내박사, 그것도 지방대 박사학위를 가진데다 나이까지 꽉 찼다. 직장에 다니면서 40대 중반에야 박사학위를 받은 자를 쉽게 채용할리 만무하다. 가뜩이나 긴 호흡이 필요한 인문사회계열은 박사학위를 가진 예비교수(시간강사)들이 넘쳐나는 마당이다. 최근 1년 사이에 몇 곳을 응시해 보았지만 번번이 쓴 고배뿐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한 교수채용 공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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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추천서를... 교원채용 과정에서 담임목사 추천서를 서류에 포함시킨 한 지방대 채용공고. ⓒ 박주현


탈락할 줄 뻔히 알면서 능청스럽게 교수채용 정보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놓고 수시로 검색하는 건 일종의 자괴감으로부터 해방, '안 되면 될 때까지'란 허무맹랑한 구호를 강압적으로 외치곤 했던 군대문화가 아직도 몸에 배인 때문만은 아니다.

묵묵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깎이 박사를 만들어 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다. 생활전선의 최전방에 있어야 할 남편 대신 십수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남편 대신 가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가정사의 후방에 뒤처진 남편이 이제나 저제나 바통을 이어받아 주지 않을까 하는 아내의 눈치 앞에선 쉽게 주눅 들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눈치 때문에 학위를 받은 후 거의 1년 내내 교수채용 정보를 꼼꼼히 살피며 관련학과가 있는 대학에 응시를 해보았지만 늘 허탕이었다. 성적증명서, 학위증명서, 경력증명서, 연구실적 별쇄본, 학위논문 등 그 많은 서류를 작성하고 발급받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힘든 학위 과정을 마친 예비교수들의 고충이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것을. 물론 실력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수채용 과정에서 간과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은 대학 교양과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교원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고 열악한 생활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많은 시간강사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보다도 더 심각하다.

지난해 연말 모처럼 전공에 맞는 학과의 교수채용 공고를 보고 해당대학에 응시하려는 순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필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대학인데다 오랜만의 해당학과여서 채용도 되기 전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차 서류 가운데는 목사추천서 또는 세례교인증명서가 포함된 것. 결국 1차 서류접수에서 포기해야만 했다.

특정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대학이었다. 학교 측에 문의해봤지만 대학 이사장도 재단에서 파견한 사람이고 교원들도 해당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하도 기가 막혀 더는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대학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도 해당 종교를 믿고 따라야만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초중고 교사들처럼 임용시험을 치르지 않고 각 대학 재량에 맡겨진 교수채용 방법은 천차만별이었다.  

종단추천서가 학문연구에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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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추천서 제출... 교수채용 공고에서 종단추천서를 제출서류에 포함한 한 지방대. ⓒ 박주현


심지어 어떤 대학은 세례증명서와 담임목사 추천서도 모자라 종단추천서를 요구하는 대학들도 있었다. 종교대학이나 종교대학원 같으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학문연구에 주력해 온 박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수채용에 특정 종교를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부 사립대학은 최종 학위논문 지도교수 추천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추천서가 인간적 신뢰를 담보할 순 있겠지만 학문적 소양과 연구, 강의활동 등은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전적으로 작용하는 분야다. 그런데 추천서를 강제함으로써 아예 서류접수도 하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대학사회의 교수채용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박사학위를 가진 시간강사들은 교수채용 제도가 갖는 불합리성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전임교수 채용에 대한 최종 권한은 대학 총장이나 이사장에게 있지만, 대부분 해당 학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과장이나 해당학과 전임교수들이 연구실적, 강의경력, 공개강의 능력 등의 평가에서 그 권한을 상당 부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그나마 한 한기 유지하고 있는 시간강사 신분조차도 없어지게 될 게 뻔하다.   

연구 실적이 탁월하고 강의 능력이 뛰어나도 종단의 추천서나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없으면 서류조차도 낼 수 없는데다 해당 학과와의 관계성까지 중요한 게 한국의 교수채용 제도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에서 교수와 강사, 이것은 귀족과 천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즉 대학에서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정규직으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이다. 다른 한 종류는 비정규직으로 통칭 시간강사, 대학강사, 외래강사가 이에 해당한다. 비정규교수 또는 일용직 지식노동자, 파트타임 강사 등으로 불린다.

교수도 임용시험을 보든지, 시강강사제도를 없애든지 둘 중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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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추천서를? 교수 및 입학사정관 채용과정에서 목사추천서 또는 세례교인 증명서를 제출서류에 포함시킨 한 지방사립대 채용공고. ⓒ 박주현


이외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연구교수, 초빙교수, 강의전담교수, 겸임교수 등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수는 시간강사를 비롯해 외래, 겸임, 객원, 대우, 강의전담, 연구 교수 등 정년보장을 받지 못하고 한 학기 혹은 일정한 기간 동안 임용되어 임시직 강사를 말한다.

그런데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들 비정규직 교수의 공통점은 정규직 교수에 비해 임용 기간이 대개 학기단위여서 매우 짧을 뿐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보수가 열악한 특징이 있다.

그런데도 대학에서 교육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그 공백을 6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는 시간강사들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보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할 많은 젊은 학자들이 연구보다는 강의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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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별 수업시수 교과부가 국회에 제출한 교원별 수시업시수 현황 ⓒ 교과부


지난해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교과부로부터 제출받은 '대학 시간강사 기본현황(통계) 분석 보고서' 중 교원별 수업시수 현황에 따르면 2007년의 경우 총 시간수 대비 전임교원 53.5%, 시간강사 36.1%, 겸임, 초빙교원 7.8% 순으로 나타났다. 또 2008년 총 시간수 대비 전임교원 54.9%, 시간강사 33.8%,  겸임, 초입교원 8.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 시간강사 계약기간은 2007년과 2008년 모두 6개월 이하가 88.3%를 차지해 신분불안의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계약기간을 최소 1년으로 하고 교원자격을 부여한 전임강사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이 때문에 제기돼 왔다. 그러나 당국과 국회는 묵묵부답이다.

근시안적일 수도 있겠지만 당장 시급한 해결방법은 교수도 교사들처럼 공정하게 임용시험을 치르든지, 전임교원과 하늘과 땅차이인 시간강사들의 고용불안을 없애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혹시나 이 대학에서 교수로 발탁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눈치와 희망으로 기득권자들에게 볼모잡힐 이유가 없다.
#교수채용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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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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