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과 장자연, 두 죽음 뒤에 숨은 익명의 남성들

추모는 없고 야비한 풍문만 떠도는 잔혹한 죽음

등록 2009.03.30 14:51수정 2009.03.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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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뭇사람의 추모를 받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죽음도 있다. 죽음에도 삶과 마찬가지로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작년 가을 우리는 톱 탤런트 최진실의 죽음을 애도하고 한마음으로 추모해 주었다. 한 달 남짓 전인 2월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온 국민이 너나없이 애도하고 추모했다. 결과 그들의 죽음 행로는 범상한 사람들의 것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그들과 비교할 때 무명에 가까웠던 탤런트 장자연씨의 죽음은 너무 고독해 보인다.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지 거의 한 달, 그의 이름은 세인의 입에 부단히 오르내리고 있건만 거기에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는 없고 야비한 풍문만 부유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에서는 냉엄한 인간소외만 목격된다.

장자연씨를 생각하면서 39년 전에 죽은 정인숙 여인을 떠올려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자연씨는 자살했고 정인숙 여인은 살해되었다. 하지만 두 죽음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두 여인의 죽음은 한국의 권력 남성들을 예기치 않은 곤경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 남성들이 여성의 잔혹한 죽음 뒤에서 여전히 익명으로 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먼저 고인이 된 두 여성을 화제 삼는 일이 행여 그네들에게 또 하나의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근심하면서 이 글을 쓴다는 점을 밝힌다.

1970년은 박정희의 이른바 '조국근대화' 시대였다. 그해 3월 17일 꽃샘추위로 눈발이 희끗거리던 밤, 서울 마포구 강변3로에 멈춰서 있던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을 거둔 여인과, 다리에 총을 맞아 신음하고 있는 한 남자가 발견된다. 살해된 여인은 정인숙(당시 26세)이고 다친 남자는 여인의 오빠로서 매니저와 운전수를 겸하고 있던 정종욱(당시 34세)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치정 사건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인은 당대 최고급 요정 '선운각'의 호스티스였고, 3살 난 아들이 하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여인의 집에서는 권력 최고위층의 명함 26개가 나온다. 게다가 여인은 당시 국가원수급이 아니면 발급 받을 수 없는 미국 특수 복수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례적이게도 사건을 맡은 것은 검찰 공안부였다. 검찰은 일주일 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발표 내용인즉슨 범인은 다친 오빠 정종욱인데, 동생의 행실이 나빠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증거는 정종욱의 자백뿐이었다. 총상을 입은 채 한강으로 던졌다는 범행용 권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종욱은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언도받는다.

어느 누구의 이름도 기명화되지 않았다

이것뿐이다. 당시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것 이외에는 없다. 다만 많은 풍문이 떠돌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대통령 박정희입네 아니면 국무총리 정일권입네 하는 등의 풍문만 무성했다. 아울러 정 여인의 범상치 않은 행실도 덩달아 회자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추모되지 않았다.

새로운 증언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무려 19년 후인 1989년 5월, 모범수로 감형되어 석탄일에 석방된 오빠 정종욱씨에 의해서였다.

"당일 밤 11시 40분쯤 타워호텔에서 동생을 태우고 서교동 동생 집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남자 두 명이 '정 총리의 심부름'이라며 차를 세워 차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범인이 뒷좌석의 동생을 향해 권총 두 발을 쏘았습니다. 그러고는 앞뒤로 탄 범인들이 절두산 쪽으로 차를 몰라고 했어요. 절두산성지 앞 공터에 지프가 세워져 있어 직감적으로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판단, 허리춤에 대 있던 범인의 권총을 밀치고 차 문을 여는 순간 총을 쏘더군요. 범인들은 지프를 타고 달아났고요." (<경향신문> 인터뷰)

그리고 2년 후인 1991년 미국에서 온 정성일이라는 청년이 당시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하다가 돌연 취소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정일권은 사건 이후에도 국무총리를 계속하다가 민주공화당 의장서리를 거쳐 국회의장을 하기도 했다.

친자확인소송이 걸렸을 때 정일권은 정성일과 한 통화에서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모시고 있었던 분의 혈육이기 때문에 내가 침묵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성일 SBS TV 출연 발언)

그러나 정 여인의 오빠 정종욱씨는 조카의 아버지는 정일권이라고 자신 있게 증언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자기가 자백한 것은 "성일이 아버지가 뒤를 봐 줄 테니 사건을 덮자"는 자기 아버지의 회유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한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미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낸 회고록에서 당시 최고위 권력층 부지기수가 정 여인과 관계했는데 정 여인이 그것을 한국과 미국에서 소문내고 다닌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했다.

아무튼 정 여인은 억울하게 살해되었고 그를 죽인 사람은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오빠만 처벌 받았다). 처벌은커녕 그녀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어느 누구의 이름조차 발설되지 않았다. 그것은 정 여인 뒤의 권력 남성들이 철저히 익명으로 숨을 수 있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 우리는 당시 우리가 살았던 시대가 그토록 야만적이었음을 새삼 생각하게 할 따름이다.

장자연의 죽음, 정인숙의 그것과 뭐가 다른가

장자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지난 3월 7일이니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추모되지 않고 있다. 추모는커녕 이미 그녀의 행실을 문제 삼는 발언들이 공식적으로 나오는 정도가 되고 말았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논설위원은 3월 30일자 칼럼 '장자연이 박연차를 만났다면'에서 장자연을 박연차와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고인이 생전에 박 씨를 만났더라면 안타깝게 목숨을 끊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망상이 치민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빽'에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고 믿는 박 씨가 힘없고 나약한 신인 여배우 하나 못 도와줬겠는가.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장자연의 죽음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그는 장자연이 (박연차 같은) 확실한 '빽'을 잡았더라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의적으로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장자연의 자살은 연예계에서 성공하지 못해 비관한 나머지 이루어진 것이라고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장자연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 남성들의 술 접대, 성 접대 강요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죽음 뒤에 숨은 익명의 권력 남성들에 대한 문제의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작 이 글이 무서운 것은 이 글과 같은 시각이 한국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남성 다수의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 아닐까? 칼럼을 더 읽어 보자.

박 씨는 가진 자원이 돈밖에 없어 '돈질'로 권력을 움직여 사익을 취했다. 장자연 역시 자신이 지닌 유일한 자원으로 '국민의 재산'인 전파권력을 움직이는 데 동원됐을 것 같다. 여자는 박 씨 같은 정치권력의 뒷심이 없어 스스로 세상을 버렸지만 남자는 진실을 주장함으로써 끝까지 사익을 챙기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여기서 '장자연이 가진 유일한 자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녀의 육체, 적나라하게 말해 여자의 성 능력을 염두에 두고 한 말 아니겠는가? 어떻게 고인에 대해 이런 모욕적인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지 분개가 치민다. 게다가 칼럼은 장자연을 '국민의 재산인 전파권력'을 움직이는 데 동원된 공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는 애써 장자연 뒤에 익명으로 숨은 남성들, 예컨대 '유력한 신문사 사장'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는 체하고 있다. 요컨대 그는 '유력 신문사 사장'과 공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씨는 죽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받아줄 만한 여러 기획사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는 자살 당일에도 함께 제주도에 가기로 한 지인에게 갈지 말지 망설이는 태도를 비쳤다. 이로 보아 그의 죽음은 그가 진정 원한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장자연씨는 목숨을 끊기 3일 전 새벽 소속사 매니저와 한 통화에서 절박하게 두려움을 호소했다.(MBC <뉴스데스크> 29일 보도) 그녀는 "김 전 대표가 나를 죽여 버린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의 한 측근은 증언하기를 "(장씨가) 평소에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얘기했어요. 자기네 사장님(김 전 대표)은 무서운 사람이라고"라고 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요인은 기획사 대표와 권력 남성들의 횡포와 욕망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성 상납 문제는 한국 연예계의 고질적인 비리 아닌가? 경찰이 무엇을 수사해야 하는지는 벌써부터 명백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거의 한 달 동안 본질적인 수사는 하지 않고 문건 작성과 입수 경위 등의 피상적인 부분을 오히려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제야 수사를 본격화한다는데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형식상 그들을 소환하고 그들이 소환에 불응하면 약식기소 따위로 그들의 이름을 은닉하게 한다면 그것은 고인과 국민을 기만하는 짓이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사건 해결의 핵심과 관건은 그녀의 죽음 뒤에 익명으로 숨은 남성들을 기명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데에 있다. 만약 그들을 끝까지 익명으로 남도록 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정 여인 피살사건이 발생한 39년 전 그대로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터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장자연 #정인숙 #정일권 #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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