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만들기, 인간답게 먹고살기의 시작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 집사람의 노래- 22

등록 2009.03.06 10:34수정 2009.03.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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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속의 매화꽃 봄이 되기 전엔 가지를 부러뜨려도 꽃은 보이지 않는다. ⓒ 정부흥


흙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흙으로부터 왔다'고 말하진 않는다.

'어디로부터 왔느냐'는 문제는 신통한 대답을 기대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이다. '흙으로 돌아간다'를 역으로 해석하여 '흙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더라도 크게 엉터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어서 되돌아 가야하고 또 우리가 왔을지도 모를 흙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394년 일본의 황실에서 태어나 선승으로 돌아간 일휴 스님이 남긴 시를 음미하다 보면 대지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인다. 

벗나무 가지를
부러뜨려봐도
그 속엔 벗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벗꽃이 피는가


흙에 관심을 집중하다 보면 그 동안 그렇게 궁금해 했던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삶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흙은 모든 가능성의 종자를 가지고 있고 모든 삶의 결과를 회수한다. 삶의 용광로라고 볼 수 있는 부패의 과정을 통해 다시 모든 가능성을 잉태한 종자로 되돌려 놓는다.

작년에 시랑헌 토목공사를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각종 과일나무와 정원수를 구입하여 심었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살아있는 나무가 절반에 못 미친다. 밭 작물도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나고 한 톨도 수확하지 못한 콩을 비롯하여 마, 생강 등도 한 뿌리도 수확하지 못하고 말았다. 처음엔 잘 자란 김장배추도 대전에서 살다가 2주일 만에 와보니 배추벌레 지상군들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렸다.

농사에 무지의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흙의 본질의 몰지각에 기인한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해결책을 찾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싶다. 250계를 받은 비구가 아닌 바에야 최소한의 병충해 방제를 인정하고 조화와 안정에 이를 수 있도록 자연과 타협하고 싶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자설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면 적어도 혼자만 살기 위한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 될 것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절대로 안 된다는 극단에 치우치는 외골수보다 시(是)와 비(非)를 초월한 삶이고 싶다.

지금 살고 있는 계룡산 자락에서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무농약, 무화학비료 텃밭 가꾸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농사가 생업인 대부분 시골에서는 무농약 작물은 곧 해충이나 바이러스균들의 집중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토목공사 때 파헤쳐 놓은 깡마른 대지에 심었던 김장용 배추는 성장에너지가 너무 약해 벌레들과 싸워볼 엄두도 못 내고 전멸했던 것 같다. 시행착오의 연속인 1년 반 동안의 시랑헌 주말 생활을 통해 자연의 냉엄한 섭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묘목과 농작물 그리고 갖가지 꽃나무에도 최고의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숙성퇴비를 듬뿍 주어 흙도 살리고 농작물이나 나무들도 병충해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할 예정이다. 다음해에는 또 다른 대안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지만 올해는 화학물질이 배제된 속성발효퇴비를 만들어 사용해 볼 생각이다.

속성발효퇴비(速成醱酵堆肥)의 유용성

일반적으로 퇴비를 얘기할 때 퇴비는 잘 썩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퇴비는 절대로 썩히는 것이 아니라 잘 띄워야 하는 것이란다. 띄운 퇴비는 썩힌 비료에 비해 식물의 에너지원이 되는 단백질 함량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속성발효퇴비는 발효하는 과정에서 탄산가스를 다량으로 발생시켜 모든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더욱 활발하게 하여 성장을 돕고 수확량을 증가시킨다. 또 퇴비의 발효 과정에서 60℃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기 때문에 해충, 병원균은 물론 잡초의 씨앗까지 대부분 사멸시킨다. 그 결과 토양 속의 유해미생물을 억제하고, 식물뿌리의 건전한 생육을 도와 병충해의 면역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이다. 

완전히 발효된 퇴비는 산도가 보통 pH 7.3∼7.8정도의 약 알칼리성을 띠기 때문에 강산성 토양일 경우에도 발효퇴비를 충분히 시비함으로써 점진적인 산도의 교정이 이루어짐과 함께 유기물함량 증대로 작물의 정상적인 생육을 위한 기반 조건을 서서히 조성해 간다는 것이다. 별다른 장해 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발효퇴비를 만들어 사용할 계획이다. 이미 이에 필요한 나무가지 분쇄기 등 몇 가지 장비들을 주문하였다.

속성발효퇴비(速成醱酵堆肥) 재료 준비

속성발효퇴비를 만들 때 고려할 사항은 탄소와 질소의 비율을 6 대 4로 맞춰주는 일이다. 또한 항생물질이나 화학적인 산란촉진제를 사용치 않은 가축의 분을 사용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나의 능력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라 우선 쇠똥의 질을 믿고 사용할 수밖에 없다.

찌모겐은 탄소질 재료의 섬유소인 리그린, 헤미셀루로스 등과 쇠똥의 성분인 단백질 등을 신속히 분해시키는 발효촉진제이다. 시중의 농약상을 여러 곳 다니면서 알아봤으나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겨우 인터넷 유기농협회 사이트에서 찾아냈으며 반가운 마음에 10봉을 구입하였다. 

탄소질 재료는 왕겨와 볏짚, 톱밥, 나무껍질을 사용하기로 하고 왕겨와 쌀겨는 구례 정미소에서 500kg, 60kg 각각 구입하였다. 질소질 재료는 쇠똥을 사용하기로 하고 축산농가에서 5톤을 구입하여 운반해왔다. 그 고약한 냄새가 나는 쇠똥을 집사람이 자가용으로 사용하는 트럭에 싣고 운반하였으니 잔류 냄새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다. 두번, 세번 세차하였으나 고약한 냄새는 여전히 없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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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을 실어 나른 집사람 자가용 한집에 자동차 3대를 운영할 수 없어 집사람은 트럭을 자가용으로 사용한다. ⓒ 정부흥


볏짚은 요즈음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어 구하기 어렵다. 대전에서 가까스로 한 트럭분을 구하여 시랑헌으로 날랐다. 톱밥이나 나무조각들은 시랑헌을 지으면서 거래했던 목재소에서 구하였다. 우리 소형 트럭으로 다섯 차례 나르고 나니 하루 해가 저문다.

속성발효퇴비 재료 야적

발효촉진제인 찌모겐 500g 한 봉을 따뜻한 물 12리터에 넣고 잘 저은 다음 쌀겨 40kg에 부어 잘 버무려 따뜻한 시랑헌 방안에 보관하여 미생물 발효촉진제가 쌀겨에 골고루 배양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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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촉진제 찌모갠을 사용하여 발효촉진제를 만드는 모습 ⓒ 정부흥


다음날 아침부터 굴착기를 이용하여 땅바닥을 지름이 4m 정도 되도록 10cm 깊이로 파고 왕겨와 짚을 깔고 전날 준비한 발효촉진제를 골고루 뿌렸다. 그 위에 쇠똥을 쌓고, 톱밥과 나무조각들을 왕겨와 섞어 뿌린 다음, 물을 퇴비의 재료들이 적시도록 뿌린다. 다시 왕겨, 쇠똥, 톱밥, 짚을 고루 번갈아 쌓고 그 위에 발효촉진제를 뿌리는 방식을 5~6차례 반복하여 퇴비더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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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장 기초 터파기 퇴비의 발효시 퇴비효과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파는 터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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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재료 쌓기 왕겨,발효촉진제, 쇠똥, 톱밥,나무껍질, 볏짚을 차례로 쌓고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물을 뿌린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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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더미 쌓기 나무껍질, 톱밥, 왕겨, 볏짚 등의 탄소질 퇴비 비료를 섞어 쌓은 더미 ⓒ 정부흥


왕릉 같이 쌓아진 퇴비더미를 비닐로 덮고 그 위에 보온을 위한 부직포를 씌우고 나니 속성발효퇴비 만들기 1단계 작업이 끝났다. 다음은 퇴비를 발효시키는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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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재료 비닐 덮기 퇴비 재료의 야적이 끝나면 비닐을 덮고 보온을 위해 그 위에 부직포를 덮는다. ⓒ 정부흥


하루 종일 5톤 분량의 젖은 쇠똥과 5톤의 톱밥, 반 톤의 왕겨, 한 차분의 짚단으로 2동의 퇴비더미를 만드는 실랑이가 끝났다. 집사람은 쇠똥이 덕지덕지 묻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날 것 같다며 힘겹게 육신을 추스른다. 곱게 자란 집사람을 데려와 너무 험하게 굴린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 없다. 나도 굴착기에서 내려왔으나 시랑헌으로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어 버렸다.

다음 주말은 지인의 아들 결혼식 참석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하니 2주 후에나 시랑헌에 올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비닐은 걷어주고 발효 중인 퇴비재료들이 골고루 발효되도록 뒤섞어 줘야 된단다. 그 다음 방문 때에는 직경 10cm, 길이 2m정도의 말뚝 끝을 뾰족하게 깎아 퇴비더미에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주고 1m간격으로 주변에서도 구멍을 더 뚫어 공기통로를 만들어 준 후 다시 거적으로 덮어주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 후 2~3주 지나 다시 한번 더 뒤집어 주고 한 달 정도 야적상태를 유지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발효퇴비가 만들어질 것이다. 숙성과정의 퇴비는 60℃ 이상의 고온에서 하루 이상 발효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재료에 함유된 병균이나 해충의 알, 잡초 씨 등이 사멸되어 이상적인 퇴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들은 작년 한해 동안 고군분투하여 살아 남은 묘목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생각이다. 또 건강하지 못한 나의 점심 도시락이 될 홍시, 고구마, 땅콩, 밤, 콩, 메밀, 호두, 블루베리 농사에도 잘 사용하여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

지금까지는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이웃 농부들의 조언을 절대 신뢰하였지만 앞으로는 속성발효퇴비 만드는 정보와 같은 유용한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유기농협회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작물정보센터의 게시 내용물도 충분히 활용할 계획이다.

슬픔이 없는 곳은 바로 슬픔이 있는 곳이며
기쁨이 없는 곳 또한 기쁨이 있는 곳이다.
고통과 슬픔을 피해 다니는 동안 세월은 그렇게 사라져 간다.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제2의 인생 설계의 기본 개념이다. 정지된 기차를 움직이기 위해선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정상 괘도에 올라 달리는 기차는 아주 적은 힘만으로 스스로 굴러간다. 나는 아직까지 기차가 움직이도록 밀어 부칠 힘이 있다고 믿으며 이 힘을 이용하여 시랑헌이 스스로 굴러갈 때까지 혼신에 힘을 다할 것이다.
#속성발효퇴비 #친환경농사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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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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