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모래조각의 그 아쉬움이 좋다"

국내 모래조각의 개척자 김길만씨

등록 2009.03.02 14:57수정 2009.03.0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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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 날씨를 자랑했던 지난 1일. 삼일절이자 휴일을 맞은 부산 해운대 백사장 한편이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자세히 보니 물뿌리개와 삽 한 자루씩을 든 사람들이 쌓아놓은 모래 더미와 씨름을 하고 있다. 해운대구청이 마련한 모래조각 가족체험교실이 열린 것이다.


이날 체험에 참가한 가족은 모두 20가족 80여명. 저마다 모래조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국내 모래조각의 개척자라고 평가받는 김길만(50, 양산시 평산동)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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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모래조각 가족체험 교실에서 김길만(사진 가운데) 씨가 모래조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홍성현


"공들여 만든 작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잠시 동안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과 환희 때문에 다시 바다를 찾게 됩니다. 나무젓가락 하나 들고 모래 앞에 서면 저절로 자신감이 생깁니다. 모래조각이 비록 하루라는 짧은 생명으로, 다른 예술품처럼 남아있지는 않지만 해변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죠."

사람들은 그를 '하루살이 작가', '모래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모래가 있는 곳이라면 나무젓가락 하나로 모래성부터 인어상까지 모든 것을 조각한다. 모래조각의 개척자,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모래조각가라고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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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래조각의 개척자라고 평가받는 김길만 씨. ⓒ 양산시민신문


현재 김길만 씨는 국내 모래조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의 어릴적 꿈은 대중가요 가사를 쓰는 작사가였다. 실제로 작사가로 등단하고 1년 정도 활동도 했었다. 하지만 유명 작사가로 성공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김길만 씨는 결국 꿈이었던 작사가의 길을 중도에 접고 말았다.

꿈이 사라지면서 인생의 즐거움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친구와 해운대를 찾았다. 새하얀 백사장을 보며, 모래를 만지다가 인어상을 만들게 됐다. 그때가 1987년 무렵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김길만씨는 모래조각의 길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됐다.


"모래조각을 통해 돈 들이지 않고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거죠. 사실 그때까지 모래조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래조각이라고 하면 두꺼비집 만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니 어찌 보면 우리나라 모래조각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모래를 조각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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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만 씨 모래조각 작품. ⓒ 양산시민신문


김길만씨가 조금씩 모래조각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래조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혼자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조각해야 했다. 사람을 조각할 때 눈이며, 코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물기가 있어야 조각이 안 무너지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지…. 수백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연습을 하기 위해서 사람이 붐비는 해운대보다는 조금 더 한산한 송정을 작업실로 삼았다. 

처음에는 백사장에서 혼자서 하루 종일 모래와 씨름하고 있는 김길만씨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작품다운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모래조각에 여념이 없던 김길만씨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그 무리를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김길만씨의 모래 작품으로 쏠렸다. 김길만씨 주위로만 사람이 몰리면서 매출이 감소한 백사장 주변 노점상들이 김길만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도구와 신발을 감춰버려 맨발로 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모래조각 실력을 키워가던 중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에서 모래조각 대회를 열었다. 그 대회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많은 모래조각 대회가 생겨났다. 모래조각에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김길만씨는 단연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쓸게 됐다.
하지만 워낙 모래조각에 매달리다보니 주위에서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래도 스스로도 미련하다고 느낄 정도로 모래조각에 빠져드는 이유는 모래조각에 몰두한 순간에 느끼는 편안함 때문이다. 작품을 만드는 그 순간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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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활동 중인 김길만 씨. 그의 작업도구는 평범한 나무젓가락 하나가 전부다. ⓒ 양산시민신문


"일부이기는 하지만 예술 하는 사람들조차 '어차피 저녁이면 파도에 휩쓸리고 바람에 날려 사라질 것을 왜 하느냐?'라고 묻곤 하죠. 그 말이 맞긴 맞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취미이고, 또 모래조각의 매력도 바로 거기 있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보기 좋건 싫건 간에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모래조각은 오늘 보지 못하면 내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고요. 오히려 수명이 짧다는 것이 신선함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지만 모래조각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희열을 맛보기 위해 고생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루밖에 볼 수 없다는 아쉬움. 김길만 씨는 모래조각의 그 아쉬움을 사랑하는 것이다.

김길만 씨가 모래조각을 시작한 지 어언 20여년. 그동안 600여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스스로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지는 불과 5년 전부터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도 20여점이 고작이다. 도예가가 수백 개의 도자기를 깨고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얻듯, 김길만 씨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만들어 지는 날이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날은 사람들의 반응부터 다르다고 한다.

김길만 씨의 모래조각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귀신같은 솜씨에 탄성을 내지른다. '흔하디흔한 모래로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 수 있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모래로 표현하는 섬세한 표정과 묘사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단지 나무젓가락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도구가 일개 나무젓가락뿐이라는 것, 더구나 그것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모래조각을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먹다가 버린 핫도그 막대기였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드는 사람들을 조금은 어이없게 하기도 한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김길만 씨의 모래조각이 유명세를 타면서 모래조각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모래조각을 배워간 사람은 없다. 무술 고수에게 비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고된 수련을 감수해야 하듯 김길만씨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힘든 보조 일부터 시켰다고 한다. 모두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 버린 것이다.

힘든 보조 일을 시킨 것은 김길만씨가 기술을 가르쳐 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제자를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고, 앞으로 기술을 전수할 제자를 키워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될 수 있으면 끈기 있는 사람에게 기술을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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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만 씨 모래조각 작품 ⓒ 양산시민신문


"요즘에는 모래조각을 해달라는 초청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 섭외가 되면 다른 곳은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자라도 보내달라고 하는데, 제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죠. 제자가 있다면 모래조각이 더 활성화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명맥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모래조각 기법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끈기 있는 젊은 친구면 더 좋겠죠."

시간이 지나 모래조각가로서 김길만 씨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작업도구를 둘러메고 백사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저는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취미생활이기에 모래조각을 하지만 우연히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이죠.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볼거리를 선사하고 기쁨과 추억을 선물한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럴 때 보람도 느끼고요. 나만의 취미가 아닌 또 굳이 공연장이나 전시관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지나가다 우연히 접할 수 있다는 매력, 예전에는 백사장에서만 조각을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어디서나 모래만 있으면 조각이 가능하니까요,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이처럼 김길만 씨는 모래조각을 하면서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작은 추억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기쁘게 생각한다.

"한번은 크리스마스 때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래조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내년 크리스마스 때도 여기서 모래조각 하실 거예요?'라고. 그리고 한 여름 모래조각을 할 때는 '내년 여름에도 여기서 모래조각 하실 거예요?'라고 묻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바다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추억을 주고 있구나!'라는 것을 말이죠.

모래조각은 겨울 바다에서 만든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여름보다 햇살도 부드럽고, 역광에 비친 모래는 금빛으로 더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이죠."

올해도 어김없이 나무젓가락을 손에 쥐고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기위해 모래조각에 여념이 없는 김길만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 발간 '허허허 양산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 발간 '허허허 양산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모래조각 #김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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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수영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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