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지 않은 대통령의 메시지

대통령 신년인사 보내기 위해 공무원 휴대전화번호 수집 법위반 논란

등록 2009.01.28 14:48수정 2009.01.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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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10시 40분에 지방자치단체 한 공무원에게 보내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 이화영

지난 25일 오전 10시 40분에 지방자치단체 한 공무원에게 보내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 이화영

"우리 사회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공무원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저와 함께 하나가 되어 나아갑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을 맞아 '공무원, 팔 걷어붙이고 위기와 맞서자'라는 내용으로 지난 25일 중앙과 지방공무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음성메시지의 일부다.

 

설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25일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공무원 김아무개씨는 '대통령실입니다 잠시 후 대통령신년인사 발송예정입니다'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 후 녹음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통령의 신년인사를 들었다.

 

김씨는 "대통령은 공무원을 믿을지 모르겠지만 공무원은 대통령을 믿지 못하겠다"며 "정규직 공무원 1만명 잘라내 그 자리를 10개월짜리 비정규직인 행정인턴으로 채우고, 마지막 생계수단인 연금 깎으려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냐"고 쏘아 붙였다.

 

김씨는 이어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위기 앞에 스스로 팔을 걷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신년인사 메시지 때문에 설 연휴가 유쾌하지 않았다"고 인상을 찡그렸다.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좋다는 동의를 했줬냐'는 질문에 김씨는 "누가 물어본 사람도 없었거니와 그런 동의를 해준 일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전공노)은 지난 22일 '행정안전부는 휴대폰 전화번호 강제제출요구 등 전근대적인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를 비판했다.

 

전공노는 성명에서 "행정안전부가 지난 21일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설맞이 메시지' 전송을 위해 중앙과 지방공무원의 휴대전화번호를 단 하루 만에 보고하도록 한데 대해 분노한다"고 날을 세웠다.

 

전공노는 "공무원노동자들이 개인정보 침해라고 반발하자 정부는 '원하지 않으면 안보내도 된다'는 입장으로 바꿨다"며 "정부는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결정된 사항이라 21일까지 전화번호를 보고토록 했다'고 궁색하게 변명 했다"고 비난했다.

 

전공노는 이어 "행정안전부는 청와대 지시를 내세워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본인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보고토록 지시 했다"고 주장했다.

 

전공노는 또한 "공무원을 머슴, 걸림돌 등의 발언을 통해 사기 저하시키다가 명절을 핑계로 개인정보보호 위반 가능성이 큰 휴대폰번호 제출을 요구한 것은 대표적인 생색내기용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나온 결과"라고 일침을 가했다.

 

전공노는 "담화문이나 기관 내부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에도 행정편의주의라는 문제가 예상됐음에도 시행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목적 달성보다 오히려 반감만 불러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인재 상지대 교수는 28일 전화통화에서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휴대전화번호나 이메일은 보호되어야 하는 신상정보"라며 "본인의 동의하에 수집되고 전달됐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본인동의 없이 진행됐다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2009.01.28 14:48 ⓒ 2009 OhmyNews
#대통령 #정보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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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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