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젊은' 부부는 왜 우이도에서 큰 소걸음 걷나

[서평] <조용한 용기-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

등록 2009.01.16 10:51수정 2009.01.1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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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용한 용기 : 한반도 남도 끝의 고요한 변화> 겉그림. ⓒ 홍림

'팔월에 태어난 예쁜 딸'로 한평생 살아오신 윤팔월례 할머니,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섬을 마지막으로 떠나와 거기서 살아온 70여 년 세월을 날마다 바라보신다는 김민균 할아버지, 동소우이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셨고 90세를 넘겨 돌아가신 박양진 할머니. 우이도, 특히 이곳 동소우이도는 정말이지 세월도 쉬어갈 것만 같은 서쪽 바다 섬마을이다.

지는 해를 어르고 달래며 빠른 세월마저 다독이며 사실 것 같은 분들 열 분 남짓 모여 소박하게 사시는 섬, 동소우이도. 그런 이곳에 와서 막내 아닌 막내가 되신 분들이 있다. 새해 떡국만 해도 예순 번은 충분히 드셨을 텐데 말이다.


서쪽 해안에서 꽤나 멀찍이 떨어진 이 섬에 구경하려 온 것이 아니었다. 구경 온 것이 아니라 아예 살겠다고 들어와서 이제는 얼추 손으로 꼽을 만한 숫자밖에 안 되는 동네 이웃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 막내 아닌 막내들로 살지만 오히려 동네 일을 챙기는 일도 많아진 이들 부부는 여기선 '젊은이'들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 세월이 이제 몇 해 뒤로 다가왔을 만큼 차곡차곡 쌓아온 섬 생활은 그렇게 꿈 많은 책 한 권으로 지금 우리 곁에 와 있다.

우이도에 들어와 '젊은' 바람을 일으킨 한 부부의 섬 사랑 이야기

꿈 많은 '젊은' 부부가 물길 건너 바람에 실어 전해오는 우이도 소식은 지금 참 싱싱하다. 어미 섬 우이도 품 안에 있는 동소우이도와 서소우이도가 서로 200m남짓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곳 삶. 이곳 사람들은 때론 세월 위에 살고 평소엔 오히려 숨차도록 내달리는 세월을 다독이며 산다. 뜨거운 도시바람과 세찬 발걸음을 몰고 오는, 섬 바깥 뭍사람들도 아마 이곳에서는 그 거친 호흡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게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을 법한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욕심들도 함께 어울려 사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산다. 아니지, 오제신 '청년'과 아내 지정희는 자신들을 이웃으로 맞이하여 터 잡게 살게 해준 우이도를 그렇게 순박한 아름다움으로 물들이고 있다. 정년을 몇 년이나 앞두고도 과감히 '외딴 곳' 우이도를 찾아와 나무를 심으며 학교(?)까지 만든 이들 부부는 오늘도 꿈을 꾼다. 오늘 너머 미래에는 사람도 자연도 지금보다 더 풍성해지길 바라며.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30대 후반까지 해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두 아들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여전히 한 아들은 그 길을 걸어가는 배경이 있어서도 아니다. 미국에서 비영리기관(NGO) 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제구호기관 월드비전에서 일하며 배웠던 강한 개척정신이 여전해서만도 아니다. 그런 것이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해도, <조용한 용기-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홍림 펴냄, 2008)에서 '청년' 오제신이 전하는 우이도 이야기는 과거나 현재보다는 오히려 미래를 담고 있다.


"6년 전, 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특별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할아버지 수업이다. 야생화와 곤충, 새와 바닷고기와 갯가 생물과 하늘의 별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을 구분하고, 이름을 알고, 전설과 유래, 특징과 용도를 배우고 외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연 공부다. 순전히 나의 손자, 손녀를 위함이다. 또는 그들과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함이다.

'할아버지, 이게 뭐야' 하고 물을 때, 나의 어머니 같이 쉽게, 나의 할아버지 같이 유래부터 시작해서 특징과 용도까지 설명해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능하면 그것을 읊은 시와 노래도 불러주고 싶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공부, 즉 교과서에 없는, 자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손과 입을 통해서 넘겨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이며, 또한 자손을 가진 자의 절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용기-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 118)

발을 디디고 설 수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발을 디딜 곳을 찾는다는 것, 그것이 지은이 부부에겐 결코 한 번 경험하고 끝낼 짜릿한 추억이 아니었다. 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듯이 힘든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서 찾는 조용한 안식처도 아니었다. 차라리 이들이 오래 전부터 그려온 '섬 꿈'은 남은 생애 한자리를 이미 뚝심 있게 차지한 미래였고 영원히 싱싱할 오늘이었다.

'섬사랑학교'에는 언제나 '내일'이 먼저 온다

목포에서 남서쪽 방향을 향해 배로 서너 시간은 족히 가야 만날 수 있는 우이도는 서소우이도, 동소우이도, 죽도 등을 비롯한 여러 섬을 품고 있다. '우이도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2001년에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 부속 섬인 동소우이도와 죽도에 있는, 오래 전 폐교한 초등학교 분교 건물들을 경매로 사들인 이들 우이도 ‘청년 부부’는 아름다운 모래가 그득한 이곳에서 8년째 살아가고 있다.

소 귀를 닮아 우이도라 불린다는 이 섬에서 보내는 우직한 삶이 50년 넘게 뭍에서 보낸 삶보다 더 좋은가보다. 여건이 허락지 않으면 그 무엇이든 한없이 기다리고 참을 수 있는 용기와 세월마저 거스를만한 두둑한 배짱이 이들에겐 있나보다. 이제 섬이 아니면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부부다. '섬 꿈'을 품고 들어와 차곡차곡 만들고 엮어가는 '꿈섬' 소식은 그렇게 해마다 자라간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들 부부의 섬 이야기를 모은 <조용한 용기>는 '첫 번째 이야기 꿈을 팝니다'를 비롯해 모두 다섯 가지 이야기로 엮어졌다. 학교 아닌 학교가 된 '섬사랑학교'를 열고 얼렁뚱땅 '교장'과 '교감'이 된 이들 부부 사연과 더불어 시작하는 이야기가 첫 문을 연다. 무엇도 급할 것 없는, 아니 급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섬마을 이야기는 그렇게 나머지 네 이야기를 향해 큰걸음으로 쉬엄쉬엄 나아간다.

보기엔 못생겼어도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고급 요리 재료라고 말하는 보찰(거북손)과 손자, 손녀 선물로 주기 위해 준비하곤 한다는 소라 이야기, 그리고 오래 전 사람들이 풀어놓고 기르다 어느덧 산양이 다 된 방목 염소들, 비단길앞잡이 등 자연을 살피고 돌보는 이야기들이 두 번째로 이어진다.

세월도 멈출만한 느긋함으로 사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알콩달콩 만들어가는 동소우이도 이야기가 있다. 그뿐 아니다. 산달래며 취, 두릅, 고사리 캐는 장소를 무슨 보물인양 에둘러 알려주는 '쩌어~그'라는 말에 얽힌 소박한 욕심과 이웃사촌 정이 어우러진 이야기도 있다. 거기에다, '섬사랑학교'를 낳고 키워주는 우이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풀어낸 이야기가 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이 뭍에만 있지 않다. 2007년 12월 태안군 앞바다를 비롯해 남서해안 일대에 큰 충격과 상처를 준 기름유출사고는 이곳 우이도에도 한 때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 흔적은 이 책에도 조금이나마 고스란히 남아있다. 부푼 꿈에만 젖어 살 수 없는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이 이곳에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겐 사실 크지 않은 섬 이웃들과 잘 어울려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살면서 부대끼는 자잘한 신경전을 살피는 일, 글 모르고 힘이 딸리는 이웃을 도와주는 일, 주중에는 목사님을 대신해 동네 이웃들과 함께 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일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일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섬사람이 아니었던 이들 부부가 서해안에서도 적잖이 멀리 떨어진 이곳 우이도에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말했던가. 그건 바로 어미 섬 우이도와 그 가족 섬들에 미래와 꿈을 심고 가꾸는 것이다.

"20년 후 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우리들의 2세, 3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자연 무인도서를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자연으로 풍성한 무인도를 바라보면서, 그들도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함께 꿈을 나누기 위해 '섬사랑학교'에 찾아오겠다고 언제든 연락을 주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릴 것이다." (같은 책, 23)

이 책에서, '지는 해'와 같은 분들과 알싸한 정을 맺고 사는 이들 꿈 많은 '젊은' 부부는 우이도가 대한민국 서쪽 바다 어딘가에서 외로이 숨쉬는 '외딴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조금 농을 할 수 있다면, 이들 부부가 사는 이곳 우이도에서는 오히려 내일 떠오를 해가 먼저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몸이 늙어갈수록 오히려 마음과 꿈은 남몰래 더욱 쑥쑥 자라는 우이도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싱싱한 내일이 숨쉬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조용한 용기-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 오제신 지음. 홍림, 2008.12. 1만3천원.
*이 기사는 블로그(오블)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조용한 용기-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 오제신 지음. 홍림, 2008.12.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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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용기 - 삶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의 자유

오제신 지음,
홍림, 2008


#조용한 용기 #오제신 #우이도 #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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