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 묻으려 산 나무 벤 인간이 무섭소

등록 2008.12.03 20:14수정 2008.12.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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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서 낙엽들이 아우성을 치는 게 마냥 즐거웠소. 자신들의 깜냥을 다한 낙엽들이 재생의 늪에 누워 다른 세대를 꿈꾸다가 인간의 발자국을 만나 아우르는 소리 아니겠소. ⓒ 김학현

발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서 낙엽들이 아우성을 치는 게 마냥 즐거웠소. 자신들의 깜냥을 다한 낙엽들이 재생의 늪에 누워 다른 세대를 꿈꾸다가 인간의 발자국을 만나 아우르는 소리 아니겠소.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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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따로 없소. 걸으면 그게 길이고, 지나오면 그게 길이오. 나뭇가지나 넝쿨들이 엉킨 곳은 부러져 널브러진 막대기 하나 주워 휘저으면 길이 되고, 쓰러진 나무 등걸이나 몸뚱이 길게 누인 나무들은 돌아가면 길이라오. ⓒ 김학현

길이 따로 없소. 걸으면 그게 길이고, 지나오면 그게 길이오. 나뭇가지나 넝쿨들이 엉킨 곳은 부러져 널브러진 막대기 하나 주워 휘저으면 길이 되고, 쓰러진 나무 등걸이나 몸뚱이 길게 누인 나무들은 돌아가면 길이라오. ⓒ 김학현

참으로 긴 침묵이었소. 님의 침묵이 아닌 나의 침묵, 우리 집 뒷산을 향한 나의 침묵. 그간 다른 산들에 올라 그들과 연애하느라 우리 집 뒷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뭐요. 봄 지내고 여름 동안, 그리고 가을 내내 여러 산들에게서 그들의 변화무쌍한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우리 집 뒤에 산이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었소.

 

참 오랜만에 우리 집 뒷산이 궁금해졌소. 싸늘한 날씨로 인하여 다른 산 등산을 접어야 할 즈음에 우리 집 뒷산이 생각날 게 뭔지. 난 겨울은 등산을 접고 러닝머신으로 건강을 챙기는 버릇이 있다오. 근데 오늘은 날씨가 꽤나 포근한지라 뒷산에 올랐다오. 그는 거기 여전히 있었소. 변함없이, 아니 변한 모습으로.

 

낙엽들의 추억을 들으며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는 얘기가 이런 걸 두고 한 말인가 보오. 뒷산은 항상 거기 있으니 오늘도 날 그렇게 포근하고 살갑게 맞아주었소. 하지만 괜히 미안해집디다. 그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 산은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날 감싸주었소. 그 사랑의 넉넉함 때문에 신과 자연은 닮았다고 하나 보오.

 

야산에 길이 따로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 아니오. 우리 집 뒷산에도 길이 따로 없소. 걸으면 그게 길이고, 지나오면 그게 길이오. 나뭇가지나 넝쿨들이 엉킨 곳은 부러져 널브러진 막대기 하나 주워 휘저으면 길이 되고, 삶이 너무 힘겨워 쓰러진 나무 등걸이나 몸뚱이 길게 누인 나무들은 돌아가면 길이라오.

 

때가 때인지라 발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서 낙엽들이 아우성을 치는 게 마냥 즐거웠소. 자신들의 깜냥을 다한 낙엽들이 재생의 늪에 누워 다른 세대를 꿈꾸다가 인간의 발자국을 만나 아우르는 소리 아니겠소. 서걱서걱, 치륵치륵, 버럭버럭, 꾸룩꾸룩 낙엽들이 자지러지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소릴 들어 본 적 있소?

 

오늘 난 낙엽들이 늘어놓는 수다를 들으며 산을 올랐다 내려왔소. 낙엽 속에 묻힌 나의 발이 바로 그들과 화해하는 나의 몸짓의 일부였소. 그간 무심했음에, 자연에 소홀했음에,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을 무시했음에, 훼손만 했지 재생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음에 미안하여 함부로 발을 옮길 수 없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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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동물이 자기만 못한 것을 잡아 뜯고 버린 잔해, 낙엽 쌓인 오솔길에 새의 깃털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니겠소. 겨울준비는 많은 다른 생명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오. ⓒ 김학현

힘센 동물이 자기만 못한 것을 잡아 뜯고 버린 잔해, 낙엽 쌓인 오솔길에 새의 깃털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니겠소. 겨울준비는 많은 다른 생명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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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바람과 세찬 자연의 심술에 넘어져 누운 나무의 뿌리, 다음세대를 위해 자신을 내줄 준비를 하고 있소. ⓒ 김학현

모진 바람과 세찬 자연의 심술에 넘어져 누운 나무의 뿌리, 다음세대를 위해 자신을 내줄 준비를 하고 있소. ⓒ 김학현
 

약육강식 속에 은혜가

 

그러다 발견한 다른 동물의 자국, 그것은 힘센 동물이 자기만 못한 것을 잡아 뜯고 버린 잔해였소. 낙엽 쌓인 오솔길에 새의 깃털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니겠소. 나무는 옷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겨울을 준비하오. 그 겨울준비는 많은 다른 생명들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오.

 

낙엽이 구르다 흙과 동화하는 날, 그 위에 풀포기 하나, 나무 한 그루 우뚝 설 게 분명하지 않소. 그렇게 겨울을 자다 깨어 봄에게 생명을 잉태하여 선물하지 않겠소. 하지만, 새는 자신의 몸을 던져 다른 동물의 먹이로 주고 깃털만 낙엽위에 흩뿌리고 갔나 보오. 그것이 또 하나의 삶을 위한 희생이란 것조차 모른 채.

 

난 한참을 그 현장에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소. 한 마리의 새가 다른 동물을 살리고 갔다는 생각에. 그렇게 자연은 순리대로 주고받으며 역사를 써 가는가 보오.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그렇게 은혜로운 것인지 그들은 모르지만, 그렇게 은혜를 베풀며 살고 있소.

 

하지만 인간은 어떻소? ‘약육강식’이란 유식한 말을 쓰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강자임을 느끼고 살지 못하는 것 같소. 유일하게 인간만 아는 지식이지만, 그 아는 게 다른 자연과는 어울릴 수 없는 강자의 헤게모니일 뿐이라는 것을, 인간만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죽은 놈 심으려고 산 놈 죽이는 인간

 

인간이야말로 삶을 위해서만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아니란 생각을 언뜻 하고는 몸을 떨었소.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물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다른 개체를 죽이기는 하오. 하지만 유일하게 사람은 살기 위해서만 다른 개체를 죽이는 게 아님을 깨닫고 경악하고 말았소.

 

뒷산 산책을 막 마치려고 할 때, 잘 차려진 무덤을 지나야 하오. 우리 집 뒷산에 오르면 으레 그래야 하오. 하산하는 길은 예외 없이 무덤으로 통하기 때문에 말이오. 그런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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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소. ‘토지지신(土地之神)’이라고 쓰인 비석, 잘 가꾸어진 일단의 무덤군 맨 위쪽에 자리한 비석이었소. ⓒ 김학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소. ‘토지지신(土地之神)’이라고 쓰인 비석, 잘 가꾸어진 일단의 무덤군 맨 위쪽에 자리한 비석이었소.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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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신을 먼저 대접하고 조상신을 그의 품에 둔다는 토속신앙의 발로일 것이오. ⓒ 김학현

땅의 신을 먼저 대접하고 조상신을 그의 품에 둔다는 토속신앙의 발로일 것이오. ⓒ 김학현

‘토지지신(土地之神)’이라고 쓰인 비석, 잘 가꾸어진 일단의 무덤군 맨 위쪽에 자리한 비석이었소. 땅의 신을 먼저 모시고 그 아래로 조상들의 무덤을 쓴 한 가문의 시리도록 정성어린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소. ‘땅귀신’을 먼저 대접하고 조상신을 그의 품에 둔다는 토속신앙의 발로일 것이오.

 

나의 신앙인 기독교신앙과는 다르지만,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소. 하지만 무덤 주변으로 예전엔 미처 못 보던 아픈 풍경을 보고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렸는지 모른다오. 무덤 주변으로 널브러진 나무의 시체들, 그들은 왜 거기 누워 삭아가고 있을까.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추악한 욕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소.

 

죽은 자의 무덤을 쓰기 위해 산 나무를 마구 훼손한 것이오. 심하게 말하면 죽은 놈 심으려고 산 놈을 죽인 거요.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나무들은 시체가 되어 인간의 오만방자함을 노기를 띠고 지켜보고 있소. 자신이 살기 위해 살아있는 다른 개체를 죽이는 생물은 있어도, 죽은 자를 위하여 산 놈을 죽이는 개체는 인간밖에 없는 것 같소. 그들이 무섭소.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모른 채, 계속 죽은 자를 위해서도 자연을 훼손할 때, 그 끝은 무엇이겠소? 탄소 배출권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 환경오염이 어떻고, 지구 온난화가 어떻고, 빙하가 녹는 게 어떻고 하는 건 이미 자연이 인간에게 원수를 갚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죽은 자를 위해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그리 현명한 방법 같지 않소. 무슨 화장이니 수목장이니 납골당이니 하는 걸 들먹이며 장묘문화의 개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소. 다만 죽은 자를 위한 무덤 때문에 더 이상 살아있는 자연이 훼손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오. 하산 길이 오늘따라 참 무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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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주변으로 예전엔 미처 못 보던 아픈 풍경을 보고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렸는지 모른다오. 무덤 주변으로 널브러진 나무의 시체들, 그들은 왜 거기 누워 삭아가고 있을까. ⓒ 김학현

무덤 주변으로 예전엔 미처 못 보던 아픈 풍경을 보고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렸는지 모른다오. 무덤 주변으로 널브러진 나무의 시체들, 그들은 왜 거기 누워 삭아가고 있을까.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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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모른 채, 계속 죽은 자를 위해서도 자연을 훼손할 때, 그 끝은 무엇이겠소? ⓒ 김학현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모른 채, 계속 죽은 자를 위해서도 자연을 훼손할 때, 그 끝은 무엇이겠소? ⓒ 김학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갓피플, 21TV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03 20:1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갓피플, 21TV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무덤 #자연훼손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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